바야흐로 TV사극의 시대이다. 하긴 대선이 있는 해는 사극이 유난스럽기 마련이지만 근래 수년간 TV 역사물의 영역은 초고속 확산을 거듭하고 있다. 사극이라 하면 궁중암투나 남성적 권력투쟁에 국한되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 <다모(茶母)>, <대장금> 등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영웅적 하위주체를 발견하는 계기를 이루었거니와 <상도>, <서동요> 등도 소재와 시공간의 확대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아울러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북방사를 소재로 하는 일련의 대형 대하사극은 애국심을 자극하며 관심을 모았고 정조를 다룬 <이산>, 내시 김처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과 나> 등의 작품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런 중에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 제작하고 KBS에서 방영되는 <사육신>은 최초의 남북한 TV드라마 교류라는 점에서, 100% 북한에서 제작된 드라마를 남한에서 방영한다는 점에서 환기하는 바가 적지 않다. 비록 한자릿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제작의도에서 밝혔듯 ‘놀랄 만큼 비슷한 남북한의 역사관’을 토대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작품이라면 시청률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왕위를 찬탈하고 어린 조카를 살해한 세조의 쿠데타와 이에 대한 사육신의 항거는 얼핏 선악과 시비가 분명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명분과 실리/대세라는 기준에 의거, 세조와 사육신에 대한 평가가 교차되어 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사육신의 충의에는 감복하나 대세를 모르는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다거나 왕위를 찬탈한 것은 잘못이나 치적이 그것을 넘어서고도 남는다는 어정쩡한 양시양비론이 광범위하게 공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양시양비론이란 결국 승자중심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세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형상화에 비해, 사육신을 다성적인 인물로 재축조하고자 하는 문학적 시도조차 기이하게도 전무한 판이다.

사육신의 전형적 형상은 이광수의 『단종애사』(1929)에서 시작되었다. 『단종애사』는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사적 인물의 전형을 담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적 의미를 담지하고 있고 아울러 다양한 대응과 변용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찍이 이광수를 평생의 라이벌로 생각했던 김동인은 단종과 사육신, 수양과 한명회 등을 선/악 대립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이광수의 의도가 이 작품에서 제대로 관철되지 못했던 점을 비판하고 그에 도전하는 의미에서 세조의 정당성과 위대성을 노골적으로 예찬한 『대수양』(1932)을 발표하였다. 비록 최소한의 개연성조차 결여된 과장된 인물설정과 극단적인 대립구도로 『단종애사』의 성취에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세조에 대한 이 같은 열광은 이광수에게도 일정한 자극이 되었으니 『단종애사』의 후편이라 할 수 있는 『세조대왕』은 세조의 치적을 높이 선전하는 동시에 그 인간적 고뇌를 이해하고 변명하는 데 바쳐져 있다.

『단종애사』는 소설로 읽히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극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용만의 「신숙주와 그 부인」(1933), 유치진의 「사육신」(1955), 신명순의 「전하」(1962) 등은 소재와 인물 등이 모두 이광수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놓여있다. 그리고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발표된 신명순의 「전하」(1962), 오태석의 「태」(1974), 이현화의 「카덴자」(1978) 등은 세조와 단종의 대립을 소재로 쿠데타에 대한 이의제기와 판단유보, 유신체제의 잔혹한 폭력에 대한 공포와 그에 근거한 체제승인의 과정을 대변한다. 또한 1995년 발표된 이강백의 「영월행 일기」는 여전히 건재하되 보이지 않는 통제와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탈역사적 욕망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이 시기 TV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후반 제작된 <수양대군>, <세조대왕> 등은 세조를 높여 박정희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목표에 충실한 바가 있었고 이후 방영된 <조선왕조 500년>, <한명회>, <왕과 비> 등의 TV사극의 경우는 세조 편향에서 일부 회귀하여 오히려 이광수적 균형을 회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을 허구적으로 재현하여 그 현재적 의미를 생산하는 데 역사소설 또는 역사극의 목표가 있다 할 때, 사육신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이제 겨우 시작인 셈이다. 사실 이광수의 역사관은 식민지근대주체의 패배주의적 패권추종주의에 입각해 있었고, 따라서 역사적 사실의 호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한다는 근대역사소설의 목표에는 함량 미달이다. 이는 홍명희의 『임꺽정』,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 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본령을 사유할 수 있게 되는 바, 이것이 좀더 대승적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시대 왕조의 기록과 뜨거운 대결을 거쳐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미적인 형태에서 왕실 및 지배층 중심의 기존 역사물을 넘어서는 대안적 계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중앙TV에서 제작하고 KBS에서 방영중인 <사육신>은 적시에 제기된 작품이라 할 것이다. 박인서겚窩舊?극본, 장영복 연출로 만들어지는 이 작품은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밑그림으로 깔고 북한 작가 림종상의 『사육신』의 관점을 이어받고 있다. 림종상의 『사육신』은 성삼문을 중심으로 기생 조정심과의 멜로라인, 자식들 간의 혼약, 막내딸에 대한 부성애 등을 보강하여 성삼문의 인간적 면모를 크게 강화하였고 이를 통해 충의의 결단에 부수된 인간적 고뇌와 희생의 실상을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박인서·김일중의 극본은 이러한 림종상의 의도를 계승하여 사육신의 개인적 갈등과 고통의 계기를 대폭 확대한다. 우선 성삼문의 경우, 정몽주의 서손녀 정소연을 사이에 두고 교활하고 방자한 한명회와 삼각관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의 갈등을 극대화한다. 박팽년의 경우는 누이 자혜를 수양대군의 첩실로 빼앗기면서 누이의 행복과 대의 사이에서 고뇌를 겪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유성원은 정인지의 보살핌과 이를 잊지 않는 모친의 신뢰 때문에 회의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정소연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다. 결국 기생이 된 정소연은 림종상 『사육신』의 조정심에 원형을 두고 있으면서도, 성삼문을 유혹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멜로라인에서 산출되는 극적 긴장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정소연이 포은 가문의 서손녀라는 설정은 『단종애사』에서 한명회가 정포은의 서손녀를 첩으로 맞이했다는 구절에서 비롯된 듯하지만, 여기에서 확장된 인물들은 박인서·김일중 극본의 <사육신>이 지닌 최고의 장점이다. 정소연의 한미한 신분은 다양한 평민 인물의 등장을 이끌어내는 역동적 계기이다. 이를 통해 가난하지만 인정 깊은 외가식구 라길석, 곱단이 등 평민인물의 등장이 가능해진다. 이들과의 인연에서 이어진 하천목, 무이, 무소 등의 기층민중은 한명회 도당을 오가면서 우직한 의리와 인정으로 성삼문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조력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지지와 협력을 매개로 기층민중의 지지를 받는 사육신의 형상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니 사육신의 충의는 단순히 그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했기에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역사물에서 빈번히 구사되는 바, 백성을 타자로 두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지배층의 애민정신은 도금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왕조시대의 실상도 제대로 짚지 못했으려니와 민주주의적 이상 또한 변변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가능성을 타진한다면 <허준>이나 <대장금>에서 비정치적 영역에 한정되었던 하위주체의 도전적 성취가 보다 정치적 차원, 역사적 차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니 과대평가의 위험이 적지 않지만 <사육신>이 그러한 교량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조선중앙TV의 <사육신>을 징검돌 삼아 가야할 길은 아주 멀다. 이들의 아주 진지하고 열정적인 연기는 일부 호감을 낳기도 하지만 낯선 배우, 익숙하지 않은 발성, 낡은 듯 보이는 프레임…. TV드라마에 관한 한, 최고의 수준이라 자부해도 좋을 만큼 세련된 남한의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사육신>은 역부족이다. 무턱대고 민족애에 호소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더욱이 <사육신>의 의미는 최초의 100% 조선중앙TV 제작이라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를 보는 관점에 관한 것이다. 백성들의 연대로 비로소 완성되는 ‘사육신’의 충의를 짚어내는 것은, 지배자의 기록에 투항하던 기존 작품의 오류를 개선하여 바른 역사를 열어가는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남북한이 반드시 함께해야만 하는 일, 말 그대로 ‘비슷한 역사관’을 근거로 ‘민족적 동일성’을 확인하는 작업일 것이다. <사육신> 앞으로 튼튼한 돌다리가 이어져 탄탄대로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