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대학가에는 음악다방이라는 것이 제법 성했다. 디제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엘피판을 축음기에 올려 음악을 들려주는 다방인데, 거기서 들은 노래 가운데 하나가 <부루라이또 요코하마>다. “마찌노아까리가 톳떼모 키레이네. 부루라이또 요코하마”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어두컴컴한 다방 한 구석에서 듣는 기분은 실로 묘한 것이었다. 음악다방의 레파토리 거개가 서구 팝송이었는데 그 노래는 일본 노래였고, 홀 안을 메우는 일본 여가수의 음색이 경쾌하고 밝아서 도리어 이상했었다. “부루라이또”로 들리는 일본 발음은 필시 블루 라이트일 것이었다. 그 뒤로 일본어를 대강 익혀 어쭙잖은 실력으로 일본어로 된 책을 두 권이나 번역을 하면서 예의 그 노래의 가사 첫 소절인 “마찌노아까리가 톳떼모 키레이네”는 “거리의 등불이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뜻을 알고 요코하마는 도시의 등불을 파란 색으로 켜놓은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차이나타운 현지를 둘러본다는 핑계로 일본 땅을 밟은 것은 지난 4월 중간고사로 짬이 난 무렵이다. 도쿄에서 요코하마까지 국철로 30분 거리. 도쿄 출발은 해질 녘이었다. 요코하마의 야경, ‘부루라이또’를 보기 위해서다. 동행은 셋, 열차 안에서의 화두는 역시 <부루라이또 요코하마>였다. 일본인 친구 K교수의 설명이 곁들여진다. 이시다 아유미(石田あゆみ)라는 미모의 배우 겸 여가수가 그 노래를 부른 것은 1969년. 1964년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개최했고, 1968년 오오사카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 박람회를 기념하면서 일본은 세계 최초로 고속철로인 신칸센(新幹線)을 개통했는데, 메이지유신 백주년을 기념하는 그 해에 맞춘 것이었다.

 아시아의 ‘모범생’ 일본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이른바 선진국의 대열로 진입해 들어가던 그 시절에 나온 노래가 바로 <부루라이또 요코하마>이고 보면, 그 음색이 예전 ‘엔카’의 청승과 달리 서구의 경쾌하고 달콤한 발라드풍인 것은 상승기를 타던 일본 경제의 60년대 말 바로 그 시절의 아우라를 담아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노래가 전파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 남몰래 상륙하면서 아련한 일본의 엑조틱한 정조를 심어주는 데 적잖이 기여했을 터.  
해가 지고 땅거미가 가신 시각, 요코하마에 도착하자 택시를 집어타고 야경을 둘러보면서  밤바다의 짙푸른 색을 배경으로 반사된 요코하마의 야경이 과시 “부루라이또”임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도시의 풍경과 노래가 만나 브랜드로 빚어진 셈이니, 요즘 말로 문화콘텐츠가 따로 없다. 이어서 찾은 곳은 요코하마 베이브릿지. 요코하마 만(灣) 위로 걸쳐놓은 다리다. 나는 일순 기묘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나는 왜 차이나타운에 온 것인가. 화교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왜 ‘늘그막’에 화교라는 색다른 군상에  ‘필이 꽂혀’ 이곳 요코하마로 찾아든 것인가. 택시가 다리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화교(華僑)가 화교(華橋)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1859년 일본에서 최초로 개항된 요코하마, 인구 채 몇 백 명이 안 되는 한갓진 어촌 마을이 신도시로 점차 변모했고 해안가 공터에는 서양인 상관들이 자리잡았겠다. 이들과 더불어 요코하마 외국인거주지역에 둥지를 튼 것이 바로 중국인들이었다. 아편전쟁(1840) 이후 중국의 연안도시에 세워진 개항장에서 이미 서구인들은 현지의 중국인들을 고용하고 있었으니 이들을 일컬어 매판(買辦)이라고 부른다.

그들 매판은 서구의 상인들을 위해 현지인과의 통역을 비롯하여 식료품의 구입, 서로 다른 화폐제도를 이어주는 금전의 출납, 중국인 소사(심부름꾼)의 고용 등의 일을 맡다가 서구의 상관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상인과 서양상인들 사이에는 언어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는데, 그 장벽을 필담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
흥미로운 것은 한문 필담 의사소통방식이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 1794~1858) 제독이 흑선(黑船)을 이끌고 일본의 도쿄만을 위협하던 그 시절(1853)에 이미 초보적으로 시도된 바 있었다는 점이다. 흑선 함대에는 뤄 선(羅森)이라는 중국인이 통역 겸 서기라는 직책으로 승선하고 있었다. 뤄 선은 일본 현지인들과 한자를 통한 필담으로 의사를 교환하면서 그 일기를 홍콩의 신문에 발표했는데, 그 소식이 서구 상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중국인 매판이 일본에 상륙하게 된 사연에는 바로 뤄 선이라는 인물이 감추어져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자면 한자야말로, 앞서 화교(華僑)를 화교(華橋)라고 했을 때 그 교(橋), 다리인 셈이다. 아니 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다리가 언어라면, 한자는 동북아의 다리, 아주 유서 깊은 다리가 아닐손가. 한때 낡은 것으로 치부되던, 내 ‘전공’인 루 쉰(魯迅)의 입을 빌자면, “한자가 사라지지 않으면 중국이 망할 것”이라는 극언과 저주를 받았던 그 한자의 운명이 21세기에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그것이 알파벳과 벌이게 될 한판 승부에서 과연 어느 편이 승리를 거둘 것인가.
또 다른 다리, 일본과 서양을 중개하던 중국인 매판은 요코하마 현지에서 일본과 서양의 대외무역의 중개자적 존재로 자신의 비중을 높여갔다. 매판 아래 금은감정사, 창고계, 잡용계 등의 중국인들이 추가로 업무 영역을 확대해나갔다. 문제는 이들이 서양상인으로부터 급료를 받는 신분이 아니라, 일본인과의 무역 중개에서 구전을 챙기는 식이었다는 것. 이를테면 당시 면사 따위를 수입할 때 수송의 안전을 위해 광목으로 일단 포장을 한 다음 다시 거기에 쇠로 테를 둘러 상품을 인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중국인 창고계가 물건을 인도하면서 쇠테를 떼어내어 자신의 수입으로 삼는 식이었다. 이밖에도 수출품의 포장에서 포장비를 구전으로 요구하는 등 폐해가 잇달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상인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당연하다.

이들 중국인들의 수는 서양상인들의 수를 상회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타격을 입기 전까지 이들 중국인들은 요코하마 외국인거류지역 외국인 수의 60%를 상회하는 수치를 보인다. 일본의 한 연구자는 최근 어떤 연구에서 이들 중국인 매판의 존재를 가리켜 “근대일본의 개국은 구미로부터의 충격에 대응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시아로부터의 충격에 대응하는 것이며, 특히 화교상인으로부터 상세(商勢) 만회의 과정”1 이라고 할 정도로 제법 왕성한 세를 과시했다. 일본으로서는 해외무역 분야의 과외공부를 중국인 매판으로부터 한 셈인데, 과외비 지출이 과다하자 상권만회를 벼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내를 돌다가 시계를 보니 이미 저녁 8시, 시장하고 출출하다. 술시를 넘겼다는 말이다. 스며든 곳은 물론 차이나타운. 어둠 속의 차이나타운은 불야성이라는 말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현란한 네온과 크고 작은 중국음식점들이 한 군데 몰려 있는 게다. 메뉴를 적은 입간판들에 어지럽고 낯익은 중국음식들이 빛을 발하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세트메뉴 세일을 즐기기 위해 군데군데 줄을 지어 선 고객들. 동행인 J교수의 말에 의하면 도쿄에는 중국음식점이 그리 흔치 않다는 게다. 하여 중국음식을 즐길라치면 도쿄에서 30분 거리인 이곳으로 와서 회식을 한단다.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면 다른 것이다. 서울 시내 오피스타운으로 치자면 과장을 보태 백 집 걸러 중국집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국 방방곡곡 동네마다 중국음식점이 없는 곳이 없으니 대한민국 외식 메뉴 부동의 1위인 자장면이 거기서 나온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일본인들의 상권 만회 ‘작전’으로 매판이라는 제도 혹은 존재들이 힘을 잃게 되자, 중국인들은 다른 돌파구를 마련했고, 그것이 이른바 싼바따오(三把刀), 곧 양복점 재단사의 가위, 이발소의 가위, 중국 요리집의 주방장의 칼, 이들 세 자루의 칼이다. 이 세 자루의 칼에 의지하여 화교들이 일본 땅에 터를 잡았는데 그 가운데 양복과 이발 분야는 일본인에게 넘어갔고, 요리만 특수직종이라 하여 중국인들의 ‘독점’을 허용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이 중국요리 먹자골목으로 번성하게 된 객관적 원인이 별도로 있는 셈이라고 할까. 일제 무렵, 조선 총독 사이토오(齋藤實, 1858~1936)가 청요리를 먹으러 인천을 드나든 것도 아마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청요리 먹으러 가던 그 기분을 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게다가 근자에 이르러서는 광동요리에서 산동요리, 양저우(揚州)요리 등 중국 사대요리, 팔대요리가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한 군데 몰려 있으니 요코하마 인구 350만 여에 도쿄 인구 1,000여 만이면 가위 독점적 중화요리 상권이 성립할 법한 것이다.

소략한 사오싱쥬(紹興酒) 반주(飯酒)를 곁들인 저녁 끼니를 해결하고 음식점을 나와 차이나타운 골목을 이리저리 사진기에 담으면서 옮겨가는데 뒷골목 한 구석에 낡은 간판 하나가 눈길을 잡아끈다. 휘황찬란하게 네온싸인을 밝힌 것도 아니고 음식을 진열한 쇼케이스도 그리 요란을 떨지 않았다. 이름 하여 해원각, 카이인카쿠(海員閣)란다. 예전에 이곳 요코하마 항구를 드나들던 뱃사나이들의 단골 ‘청요리집’이던가. 제법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는 집, 저녁은 바로 이 집에서 먹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해원각이라… …’고 뇌까리는 순간, 턱수염을 기른 입에 파이프를 문 선원이, 이어서 마도로스라는, 스펠링이 감이 잡히지 않는 단어(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matroos라는 네델란드어란다)가 떠오르면서는, 다시 “마도로스 수첩에는 이별도 많은데/오늘밤도 그라스에 맺은 인연은… …”이라는 콧노래로 새어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별의 인천항구>다. 항구와 밤과 마도로스, 어김없이 낭만 삼박자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K가 하는 말이 한 박자가 빠졌단다. 뱃사내들에게 항구의 여인이 없다면 그게 뭐냐는 거다. 실로 그렇다. 항구라는 항구마다 등대가 있기 마련인지라, “등대마다 님을 두고 내일은 어느 항구”로 떠돌 수가 있지 않은가. 그러는데 또 다른 곡조 하나가 귓전을 맴돌았으니 “아메리카 타국 땅에”로 시작해서 “라이라이 호궁이 운다”, “라이라이 꾸냥이 운다”라는 가사에 이어 “아아 애달픈 차이나거리”로 마감하는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이 코를 타고 흥얼거려지는 거다. 그러면서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이 왈, “인천에서 이런 노래 다시 하나 만들 수 없나”였다. 호궁(胡弓)으로 반주(伴奏)를 곁들인 차이나풍(風) 음색이라도 좋겠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