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8일, 동인천에 있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인천예술고등학교(이하 인천예고)가 주최하는 ‘제7회 관현악 협주곡의 밤’연주회가 열렸다. 다섯 명의 협연자와 인천예고 오케스트라는 약 1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600석의 싸리재홀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관객안내원도, 무대진행요원도 모두 말끔한 교복 차림이다. 연주회장에서 교복을 마주하면 덜컥 겁부터 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인천예고의 연주를 처음 접하는 설레임과 함께 기분 좋은 긴장이 스친다.

첫 곡은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Overture Fidelio>(op.72). 지휘자가 입장하고 짧은 침묵이 흐른다. 숨을 고르기가 무섭게 강하게 치고나오는 빠른 템포의 첫 소절. 1, 2학년생들로만 구성된 인천예고 오케스트라의 현부는 민첩한 보잉(bowing)1을 선보이며 피델리오를 깔끔하게 소화했다. 이번 연주회의 준비기간은 대략 한 달. 지휘를 맡았던 송인준 선생님은 오케스트라의 경우 연주회 레퍼토리를 수업에서 다루기 때문에 한 달 정도면 무리가 없다고 했다.
인천예술고등학교는 1997년에 설립되었다. 학교 건물은 구 인산전문대학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는데 예고의 특성이 반영된 건물이 아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한다. 구 인산전문대학의 전신인 인천간호전문학교 건물로 1979년에 지어졌으니 3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건물이다. 하지만 2012년 송도경제자유구역으로 신축 이전이 결정되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다. 인천예고는 음악과, 미술과, 무용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학생 수는 450명 가량 된다. 이중 음악과는 성악, 피아노, 작곡, 현악(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더블베이스), 관-타악(플룻, 오보에, 색소폰, 트럼펫, 혼, 타악기)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과에서는 1년에 두 번 큰 연주회 열고 있다. 1학기에는 음악과의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정기연주회가 있다. 이번 ‘관현악 협주곡의 밤’과 달리 입시준비를 위해 3학년이 빠지지 않기 때문에 정기연주회는 인천예고의 역량을 선보이는 중요한 자리다. 더욱이 올해는 개교 10주년이니 그 의미는 남달랐을 터다. 인천예고 전체 음악과 학생이 203명이니 지난 5월 인천종합문예회관 대공연장 정기연주회 무대에서 연주된 구노(C. Gounod)의 <장엄미사Messe solennelle Santa Cecilia>는 볼 만 했겠다. 협연자를 빼고는 3학년이 제외된 ‘관현악 협주곡의 밤’은 2학기의 주요한 연주회다. 그해 각 전공의 우수한 연주자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로 전공별 수준이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의미있는 연주회다.

피델리오 서곡에 이어 협연이 시작되었다. 보케리니(L. Boccherini)의 첼로협주곡 9번 3악장을 진수빈(3학년) 양이 협연하였다. 연주에 집중하려는 표정과 몸짓은 매우 적극적이었지만 긴장한 탓인지 피치(pitch)가 다소 불안했다. 무대에 서는, 그것도 꽉 찬 객석을 마주하는 것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큰 부담이다. 그 긴장과 떨림을 조절하며 음악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나만의 언어로 음악을 표현해 내는 것은 연주자가 풀어야할 숙제다. 이 무대에 서 협연자들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행운아들이니 이 자리가 분명 쓰지만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베이스 바리톤 강병재(3학년)군은 풍부한 성량과 수려한 음색으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의 <이 신성한 전당에서는In Diesen Heil’gen Hallen>을 무난히 소화해 냈다. 인천예고의 성악 전공이 좋은 평을 듣고 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피아노 이소현(2학년), 소프라노 김세원(3학년), 바이올린 고찬미(3학년) 양이 협연했는데 고찬미 양은 열정적인 연주와 무대매너로 그 기량이 돋보였다.

인천예고 1회 졸업생은 이제 26세가 되었다. 이 정도 나이면 어느 예술현장에 있거나 공부하며 예술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을 터다. 인천예고는 매 년 꾸준히 수백 명의 예비 예술가를 양성하고 있지만 이들이 ‘인천’이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은 열악하다. 음악의 경우는 더욱 상황이 좋지 않다. 매 년 60명이 넘는 음악과 졸업생들은 대부분 타지역 음대로 흩어지고 있다. 4년제 음악대학이 한 곳도 없는 인천의 현실은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필연은 아니겠으나 인천에서 순수음악 장르의 저변이 얇은 문제는 어쩌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예술중학교를 만들어 음악영재를 키우고 예술대학을 유치하여 훌륭한 음악가들을 배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천의‘장영주’, ‘장한나’를 키워내야 함도 당연하지만 절실한 것은 인천 음악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 현장에 뛰어들어 고민하는 ‘누군가’이다.

마지막 곡, 롯시니(G. Rossini)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IlBarbiere Di Siviglia> 서곡을 끝으로 정규연주가 끝났다. 마지막 곡을 연주하는 인천예고 오케스트라는 음악에 몰입했고 그 눈빛은 빛났다. 박수와 함성이 끊이지 않았고 앙코르 곡이 이어졌다. 히사이시 죠오(久石讓)가 작곡한 애니메이션 O.S.T. <하울의 움직이는 성(ハウルの動く城) 2004>의 왈츠 곡, <공중산책(空中散步)>의 피아노 선율이 시작된다. 왠지 송도벌 6,8공구에는 마법사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돌아다닐 것만 같다. 인천예고 제12회 관현악 협주곡의 밤이 열릴 2012년의 송도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