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설 읽는 재미를 다시 붙인 참이라, 특집으로 다뤄진 ‘한국소설 시장 속의 외국문학’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소설의 일류(日流)를 읽는다’를 눈여겨보게 됐는데, 이는 아마도 최근 독서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온갖 포털사이트와 인터넷서점의 마케팅 공세를 견디지 못해 동거인이 구입한 『공중그네』와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컨닝소녀』,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읽었으나 튀는 소재와 발랄한 문체를 제외하고는 허망함만을 안겨준 독서경험이었던 터였다. 처음 본 일본소설은 90년대를 주름잡던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선배에게 선물받았던 『상실의 시대』는 그때까지 읽었던 ‘입시용’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그 어질어질한 느낌에 포획된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키보다 더 ‘쎈’ 작가로 소개받았던 무라카미 류 역시 ‘강력한’ 작품들로 독자를 열광시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의 인기는 지금의 ‘일류’를 위한 사전포석의 성격을 지녔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이것 또한 사회적 현상일 것이다. 일류가 ‘동시대적 감수성을 적절하게 포착하고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읽힌다’는 정이현의 분석은 적절하다. 결국 이 말은 국내에서도 동시대와 적절하게 호흡할 수 있는 작가군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물론 국내에 좋은 작가들이 없는 게 아니지만, 어쩐지 대자본이 투입된 와이드릴리즈 방식의 배급과 작은 웰메이드 영화간의 대결을 보는 듯 하다 할까. 어쩌면 문학이 사소해질 대로 사소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이로서 감내해야 할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씁쓸하게 입안을 맴돈다.

『해리 포터』를 읽은 세대가 토머스 핀천 대신 스티븐 킹을 선택할 것이라는, 성은애가 인용한 헤롤드 블룸의 말이 쨍, 하고 아프게 날아와 박힌다. 그러나 당장 국내에서 토머스 핀천의 소설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최근 민음사에서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가 나왔지만,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브이를 찾아서』는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든 ‘레어 아이템’이다). 결국 뻔한 투덜거림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출판행태는 과자에 트랜스지방과 설탕을 아낌없이 투여해 왔던 제과업체의 패착과 썩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류를 분석하면서 일류 저 안쪽의 광맥들을 함께 언급해주지 않은 점이다. 일류라고 불리는 현상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아쿠타카와 류우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엔도오 슈우사쿠, 나쓰메 소오세키 등 인간존재에 대해 성찰하면서도 소설적 긴장(재미)을 놓치지 않는 작가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던가. 한국소설 시장 속의 외국문학이라는 전체 타이틀 속에서라면 일류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핀천이나 곰브로비치, 브라우티건, 푸엔테스나 까사레스, 함순 등 까뮈나 마르께스, 보르헤스나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읽히는’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해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플랫폼>을 챙겨보는 독자라면, 아니 그렇지 않다면 더욱 본격문학에 접근하는 계기가 허약하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차후 별도 지면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