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토록 본연의 자기 성격이 작품에 투영될 수 있을까? 주변을 애정어린 호기심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흥미를 찾아 즐긴, 만년 어린 소년과 같은 순수함. 우리가 간과한 세밀한 것을 가리키듯 들려주며 재미있어 하는 그. 그의 작품은 그래서 솔직하다. 많은 작곡가들처럼 양식과 기법 뒤에 숨지 않는다. 숨어있음을 참지 못하는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그의 음악은 들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작곡가들이 감히 하지 않는 일을 한 작곡가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실험이나 시도는 아니었지만 선배는 물론 동료, 후배들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작곡가의 길 찾기가 전인미답의 것만이 아님을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를 진솔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작곡가들이 막연하게 큰 의미를 추구하는가? 그 강박관념에 얼마나 왜곡된 작업에 스트레스 받고 있는가?

첫 곡, 피아노를 위한 <순환>(1993)이 시작되자마자 그의 남다른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마지막 해답을 향한 스무고개처럼,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힌트와 함께 즐기는 그다운 게임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음악 어법으로 자신의 세계를 경제적이며 효과적으로 분명하게 전달하는 그의 음악적 명료함은 단순성 추구라는 세간의 정의에 대한 근거로만 보기에는 미흡하다. 명료함의 근거는 바로 풍부한 음악 경험에 의한 그의 통찰력이라는 감성의 필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경우의 수 중 가장 적절한 것을 택했으며, 그랬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외형상 분명하게 보이며 음악적 콘텍스트는 늘 자연스럽다. 애써 과장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이 피아노 작품은 목관오중주로도 들려졌다. 마치 그의 순진무구한 색연필 그림처럼 목관악기들로 그는 덧칠을 하고 있었다.

<바이올린 사중주>. 일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에게 이 곡을 지도하면서 그의 세심하다 못해 소심하면서도 결국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을 발견한 적이 있었던 작품. 악보를 읽으면서 마치 그가 단순 구조 속에 암호들을 감춘 심리극 작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10박에서 한 박씩 감해가는 음 진행의 제1바이올린, 이에 동음 반복 리듬의 유니슨(unison)으로 더해지는 제2바이올린, 그리고 2도 관계의 제3, 4바이올린의 음 진행, 미세한 고음에서의 세세한 음정과 음색의 갈등을 그는 길게 참고 또 참고 있었다. 이 단편적인 음 진행 부분에는 시작 부분을 제외하고 어떠한 아티큘레이션1도 없어 해석하기가 아주 애매하다. 블라허(Boris Blacher, 1903~1975)2식의 구조에 리게티(Gyorgy Ligeti, 1923~2006)3적 상상이 결합된 흥미 있는 전반부에 이은 알레그로 부분의 장난기는 마치 옆에서 싱거운 농을 건네는 것 같다.

김현곤이 연주하는 클라리넷의 긴 영탄, <쓸쓸한 저녁>은 그의 만년의 정서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해 지는 저녁 황혼 속에서 평화로운 듯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작곡가 내면에 교차되는 온갖 상념을 느꼈다. 작곡가의 오랜 친구, 김현곤은 그의 이 은밀한 고백을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그의 현악기에 대한 관심이 녹아있는 작품 <현을 위한 델리카토>로 음악회는 끝났다. 이날 연주된 작품 하나하나가 청중의 심중에 용해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일관된 작곡에 대한 사상과 진정성이 그의 음악에 몰두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으로 우리는 공감했다. 이날 배부된, 그의 제자들이 엮은 소책자 『오선지와 몽당연필』은 그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였다. 부인과 제자, 음악에 대한 사랑과 매사에 대한 다정한 호기심과 진지함, 열정을 느끼게 하는 귀중한 자료였다. 내 비록 그를 안다 했지만 몰랐던 것이 많았음을 깨달은, 그리하여 그의 음악이 더욱 소중히 다가온 음악회였다. 그와 그의 음악은 늘 우리의 벗으로 남아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