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필자의 경우,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인 것, 작은 것이 아니라 비교적 큰 것, 돌이나 나무 등을 ‘깎아서’ 만든 것, 정도의 생각이 떠오를 뿐이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필자의 이러한 즉각적인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미술전공자가 아니라면)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조각’에 대해 그렇게 배워왔던 것 같다. 미술시간엔 비누‘조각’이라는 것을 해보았고, ‘조각’공원이라는 곳이 간혹 생겨나면서 여러 가지 입체적인 조형물들을 ‘조각’의 전부인 양 감상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왔던 조각은 항상 좀 생뚱맞은 것들이었다. 남우세스럽게도 옷을 훌러덩 벗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라던가, 무슨 업적을 세웠는지조차 아리송한 장군님의 장엄한 모습 정도였다. 우리는 한 번도 ‘조각’을 ‘도시’나 ‘환경’ 등과 연결시키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 필자에게 호수를 잇는 다리 밑, 다소 어둡고 정적인 공간에서 서정적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치마저도 ‘조각작품’이라며 전시(?)하고 있는 독일 뮌스터시(münster 市)의 풍경은 낯설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2007년 6월 17일부터 9월 30일까지 열린 뮌스터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 07). 말하자면, 조각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미술행사인데 해외 유수 작가들을 초청하여 작업(혹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뮌스터라는 도시 곳곳을 탐방하게 함으로써 도시공간을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여느 미술행사와 확연히 다르다. 가히 ‘프로젝트’라 이름붙일 만하며, ‘공공미술행사’라 말할 만하다. 매우 사적인 작품을 단순히 공적인 장소(거리나 도로 등)에 내어놓은 것일 뿐, 특정 지역이나 공간과 전혀 상관없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조각 작품들과 명확하게 다른 지점이다.
이를테면 뮌스터시의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는 ‘아(Aa)호수’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덴마크 출신 작가 튜 그린포트(Tue Greenfort)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작품 이름은 <불확실한 성과Diffuse Eintraege>인데, 심각하게 오염된 아호수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뮌스터시 정부의 임시방편적인 행태를 비꼬고 있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초대된 작가가 뮌스터라는 도시공간의 컨텍스트 즉, 장소성과 역사성 등을 읽어내지 못했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던 작품인 셈이다.

또한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작품들을 철수하는 여타의 미술행사와 달리, 거리 곳곳에 설치된 작품 중 일부를 시 정부나 후원자가 구입하여 행사 뒤에도 영구 보존한다.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일상 속에서 현대미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나아가 도시 전체를 예술적으로 재편하는 중대한 자원이 된다. 현재 뮌스터시에는 1977년 출품작 4점, 1987년 출품작이 22점, 그리고 1997년 출품작 13점이 남아 있어 올해 출품된 34개 작품까지 합하면 모두 73개나 되는 작품이 작은 도시 뮌스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지도를 받아들고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관람 방식은 자전거 한 대로 도시를 맘껏 누빌 수 있는 뮌스터시의 지리적ㆍ환경적 여건과 잘 맞아떨어졌고, 작품을 생산한 예술가들 뿐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들까지도 자연스럽게 도시를 탐험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커다란 나무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로 도시를 질주하는 재미 뿐 아니라 숨어있는 작품을 찾아냈을 때의 쾌감이랄까 희열이랄까, 그 재미도 만만치 않았던 것. 그러나 반대로 도시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인 만큼, 일정 정도의 사전지식 없이는 작품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뮌스터행(行)을 결심한 순간부터, 그리고 도시를 관람하는 내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굉장히 느슨한 주기를 두고 행사가 개최된다. 여느 비엔날레처럼 2년도 아닌, 트리엔날레(triennale)1처럼 3년도 아닌, 장장 10년을 주기로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1977년에 시작되었는데도 올해가 겨우 4회째인 이유다. 이렇게나 긴 주기를 갖는 것에 대해 4회 내내 총감독을 맡아온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가 털어놓은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번째 조각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음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 주기라는 것. 마침 10년이라는 주기는 무언가를 망각하기에 좋은 시간이며, 아울러 잊혀진 자리에 새로운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시간의 단위라는 것2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의 간단한 대답 속에 이 대형 프로젝트의 중요한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와 환경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도시를 새롭게 바꾸어나가는 대규모 미술행사가 가질 수밖에 없는 ‘긴 호흡’, 어쩌면 이 자연스러운 호흡이 도시를 바꾸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예술의 속성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