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오페라 극장과 페스티벌이 많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중적 인기 여부를 떠나 오페라야말로 서구 문화의 총화라는 사실만큼은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양권에서 오페라의 가치는 무엇인가? 물론 아시아의 고유유산은 아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잠들 때까지 온통 서구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서구 문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07년 인천세계오페라페스티벌은 송도와 영종도를 발판으로 아시아를 넘어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21세기 인천의 꿈을 반영한 것이라 믿는다.
체코 프라하의 스테트니 오페라를 초청, 상연한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카르멘> 9월 2일 공연을 보았다. 국내 제작자인 이학순은 스페인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열정적인 분위기가 아닌, 사람들을 탈진시킬 듯한 공간으로 표현하여 비극적 종말로 잘 이끌어갔다. 갈리나 이브라기모바(카르멘)는 필자가 실연으로 접한 가장 매력적인 카르멘이었다. 외모뿐 아니라 노래와 연기도 좋았지만 다만 팜므 파탈의 치명적인 매력은 다소 모자랐다. 상대역인 레오나르디 마리오(돈 호세) 역시 미남에다가 건강한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발성이 너무 정직하고 단조로웠던 것이 아쉬웠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카를로 펠리체 가극장을 초청한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의 <라 트라비아타>는 9일 공연을 관람했다. 2003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한 <투란도트>에서 류로 출연한 바 있는 일본계 혼혈소프라노 미나 타스카-야마자키는 시종 안정감 있고 연극적 표현력이 뛰어난 비올레타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알프레도 쪽에 문제가 있었다. 박세원(알프레도)은 1막 중반부터 야마자키와의 호흡이 크게 흐트러지더니 사랑을 고백하는 이중창에서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성량을 반 이하로 줄여 노래해야 했다. 결국 2막부터 예비 테너 최성수로 교체되었다. 최성수의 호연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르조 체브리안(제르몽)은 풍부한 경륜이 돋보였지만 노쇠함이 드러나 노래의 매력만으로 보면 국내 정상급 바리톤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무대는 역시 이학순이 담당했는데 너무 전통적인 방식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다만 무대 벽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 가수들의 노래가 객석에 잘 전달되도록 조치한 것은 효과가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커튼콜 중 관객들이 퇴장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박수가 이어졌다. 이는 인천 시민의 문화적 욕구를 잘 채워 주었다는 긍정적인 신호일 것이다. 그러나 페스티벌 운영면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단 두 편의 오페라 외에는 부대적인 행사도 거의 없이 페스티벌이라 명명한 것도 그렇고, 별도의 조직위원회나 사무국 대신 민간단체인 베세토 오페라가 사실상 모든 진행을 떠맡은 것은 국제적 페스티벌이라 하기에 민망한 일이다. 외국의 수준급 오페라단을 초청했다고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무대를 제외하고 연출자와 가수 몇 명만을 부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 트라비아타>의 경우, 베세토 오페라가 보유한 무대에 조명과 3막 안무, 춤을 프라하팀이 맡았는데, 과연 가수 몇 명과 연출자가 참여했다고 해서 제노바 극장 초청공연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오페라 두 편 모두 가장 유명한 작품을 전통적인 연출로 공연한 것이어서 참신한 맛이 부족했다. 적어도 하나는 국내 공연 기회가 드문 작품이거나 아니면 색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또한 국내 출연진의 선정도 일반적인 지명도나 직책보다는 외국의 젊은 성악가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지의 기준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대구오페라페스티벌이 5년차를 맞이하여 올해 50여일의 대장정을 소화해 틀을 잡아가고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으나 인천세계오페라페스티벌도 앞으로 발전을 꾀하려면 조직화와 전문화를 통해서 일단 대구에 필적할 수준으로 올라서야 할 것이다. 낡은 공연장 문제가 남아있지만 어차피 송도에 국제수준의 공연장이 들어설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의 음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얘기를 많이 접해왔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오페라를 올리기에 결정적인 문제는 없었다.
#저자 약력
劉亨鐘 1961년 서울생. 음악칼럼리스트, 무지크바음 대표.
저서로 『불멸의 목소리』 등. divin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