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탈 때, 잠시나마 밀폐된 공간 속에서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될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자주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적절히 몸 둘 곳을 찾거나, 전철 안에서 맞은편 사람과 분명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적당한 무관심으로 시선을 피할 줄 아는 에티켓은 그런 난감함을 처리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권순학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이처럼 좁게 한정되어 격리된 공간이다. 일시적이지만 외부와 격리된 공간 속에서 우리는 하이퍼스페이스를 체험한다. 지하철에서 그다지 절박하지 않은 신문이나 광고물에 시선을 잡아두는 습관은 그러한 어색함을 해소하려는 일련의 훈련된 노력인 셈이다. 요즘은 그런 불안정한 시공간의 체험을 핸드폰의 디지털 화면을 통해서 해소하려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권순학은 비교적 한적한 인천공항 전철 속에서 그런 시공간의 체험을 디지털 사진 이미지와 정교한 봉합과정을 통해 재음미하고 있다.
권순학이 이런 공간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가 창작 수단으로 삼는 사진이 현실의 공간을 프레이밍하여 이미지로 정착시킨다면, 엘리베이터와 지하철 객실은 도시를 이동하는 우리의 시공간을 프레이밍한다. 사진이 현실 그대로의 기록이 아님은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다. 오히려 현대사진은 사진이 현실의 사실적인 기록이라는 그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권순학은 카메라를 이용하여 밀폐된 공간을 일정한 분할 섹션으로 연속 촬영한다. 그렇게 채집한 현실의 기록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다시 하나의 조합된 실체로 재구성하여 대형 출력물로 완성한다.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분명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순간순간의 상념을 통해 그 제한된 공간을 넘어 지상의 저 밖 어딘가를 떠돌아 가상의 시공간과 지속적으로 접속을 시도한다. 파편화된 잔상으로 남은 지하철 광고화면의 이미지, 핸드폰의 디지털 영상, 스쳐지나가는 전철역 사인, 기차가 지상으로 나왔을 때 일시적으로 마주하는 차창 밖의 실제 환경 이미지들. 이러한 것들이 부분적으로 중첩되고 병합되면서, 도시 공간 속을 이동하는 우리의 시각적 체험은 하이퍼스페이스와 하이퍼타임의 매트릭스 어딘가를 지속적으로 넘나든다.

이처럼 이질적인 부분의 집합으로 체험되는 우리의 시공간은 스타트렉(Star Trek)의 첨단 공간이동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현실과 가상, 존재와 허상,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넘나든다. 하나의 단일체처럼 매끈하게 제시되는 권순학의 사진 이미지는 그 속에 태생적 근원을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기에 다시 한 번 우리를 당혹케 한다.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무수한 균열과 봉합의 흔적들이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그의 완성된 사진은 분명 하나의 실체이면서 결코 있을 수 없는 허구의 경계선상에 위치한다. 그런 시각적, 개념적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 그는 화면 속에 불일치의 흔적들을 남겨놓거나 의도적으로 끼워넣기도 한다. 빈 객차 창가에 비친 승객의 모습, 차창마다 다르게 반사되는 외부 공간, 동일한 사람의 반복적인 등장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장면들이 연출되거나 연장되기도 한다.

당연스레 사실의 기록이기를 기대하지만, 사진 이미지는 디지털몽타주 기법으로 공들여 메운 무수한 부분들의 결합이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복제와 반복, 삭제, 왜곡의 흔적들을 노출할 때, 우리는 그의 사진 이미지 속에서 실제와 가상, 현실과 허상에 대한 판단 기준을 상실하고 유령 같은 초현실을 체험한다. 지하철에서의 우리의 체험이 하이퍼스페이스의 그것이었듯, 그의 사진은 눈앞에 보이는 분명한 실체이지만 결코 믿을 수 없고, 눈으로 보면서도 본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사진은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않고 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도시생활의 공간 체험에 대한 매우 긴밀한 사진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포토몽타주 기법을 통해 흥미로운 시각적 해체와 봉합의  단초를 발견한 그의 발언이 현실과 가상의 예리한 줄타기를 지속적으로 증식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