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6월 조선총독부는 음반 네 장에 대해 최초의 발매금지 처분을 내린다. 이때 금지 음반 목록의 첫번째가 아리랑이었다. 빼앗긴 들에 봄이 자유롭지 못할진대 어찌 노래인들 자유로웠겠는가! 조국에서 금지된 아리랑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한민족을 따라 낯선 이국땅으로 고된 여정에 오른다. 드디어는 노래를 금지한 일본으로까지 전해진다.
한민족에게 금했던 아리랑이 어떻게 일본에 전해졌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강원도 정선으로 향했다. 정선군 신동면 소재의 ‘추억의 박물관(관장 진용선)’에서는 지난 8월 15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展>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일제가 탄압하던 아리랑이 도리어 일본으로 파급되는 과정을 음반, 엽서, 책자, 문서 등 다양한 형태의 실물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추억의 박물관은 강원도 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근현대사 전문 박물관이다. 폐교된 매화분교의 교실 두 칸을 전시장으로 꾸민 터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 1천여 점의 자료를 모두 전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교실 두 칸은 근현대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추억의 자료들로 운영되고 있으며, 특별전시장은 박물관 입구와 복도 한켠에 자그맣게 마련되어 있다. 특별전 관련 전시물은 전시기간 내에도 몇 차례 교체된다고 한다. 빼곡하게 진열된 자료들과 빠르게 교체되는 전시물 덕분에 박물관이 작다는 느낌은 없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전시된 엽서가 눈에 띈다. ‘아리랑의 정서(アリランの情緖)’라고 적힌 겉표지에 8장 1세트로 구성된 이 엽서들은 1930년대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다. 조선의 풍속이나 기생들의 컬러 그림을 넣고 그 아래로 아리랑 가사가 우리말 혹은 일본어로 적혀 있다. 빨래하는 아낙네들, 노젓는 뱃사공, 널뛰는 아가씨 등 소재가 다양하다. 그 중에는 한복 입은 기생이 창가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낯선 모습도 있다. 진용선 관장에 따르면,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 엽서는 대략 8,000~10,000 장 정도라고 한다. 이들 엽서는 기생을 대상으로 한 인물엽서가 많은데, 특히 아리랑의 노랫말이 적힌 엽서에는 대부분 기생들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일제가 조선 기생관광을 장려할 의도로 제작한 것이다. 한국근대사의 아픈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리랑 엽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이 이후 일본에 전파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일본에 파급된 아리랑의 모습은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음반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연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일제시대에는 박부용, 이화자 등 우리나라 가수가 부른 아리랑 음반이 발매되는가 하면, 콜럼비아관현악단1이 연주한 아리랑과 양산도 등 민요가 수록되어 있는 조선명곡편 음반 세트가 일본 내에서 제작·판매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도 아리랑이 조선을 대표하는 노래였음을 보여준다. 1950년대 일본에서 발매된 아리랑 음반은 6ㆍ25전쟁 당시 한반도에 대량의 군수물자를 팔아 경제적 재건을 꾀했던 일본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한다. 일본을 거쳐 귀국하는 유엔군에게 팔기 위해 일본 음반회사들은 각종 아리랑 음반을 제작했다.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매한 7인치 음반에는 일본민요 2곡,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가 수록되어 있고 한복을 입은 여인을 표지로 하고 있다. 아리랑이 유명해지자 일본 레코드회사들은 발빠른 상술로 <재패니즈 페이보리츠Japanese Favorites>, <재패니즈 멜로디즈Japanese Melodies>, <재패니즈 레코즈Japanese Records> 등 각종 음반에 아리랑을 수록하여 판매했다.

조국에서는 일제에 의해 금지당하고 일본에서는 기생 관광을 유도하거나 유엔군에게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던  <아리랑>! 그 시련 속에서 서서히 일본으로 파급되어 나가던 아리랑은 최근 또 하나의 일을 겪었다. 2003년 초 레거시인터내셔널(Legacy Inter-national)에서 제작한 <일본 게이샤의 전통음악Traditional Music of the Japanese Geisha>란 음반에 <아리랑>이 수록된 것이다. 이 음반이 어떠한 경로로 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이 한류 거품에 취해 있고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지금, 주변 국가들의 문화적 침탈은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한민족에게 <아리랑>은 노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유치원 아이에서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모두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어둠 속에서 당신이 한민족임을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면 <아리랑>은 단연 첫번째일 것이다. 오랜 세월 속에 한민족의 유전자 형질이 되어 버린 <아리랑>이건만 지금은 유전자 조작도 가능한 세상임을 전시회는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