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아틀라스 시리즈’의 세번째 책으로 김병준, 박한제, 이근명, 이준갑, 김형종 다섯 명이 저자로 참여한 『아틀라스 중국사』가 나왔다. 저자들이 밝힌 것처럼 앞서 나온 『아틀라스 한국사』나 『아틀라스 세계사』와 마찬가지로 ‘시간’에만 편중되어 온 역사 서술에 공간감을 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에게 역사 여행이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일 뿐만 아니라 공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이기도 하다는 점을 환기시켰고, 이번에 나온 『아틀라스 중국사』 역시 공간 축이 강화됨으로써 역사가 얼마나 풍성해지며 더 잘 ‘실감’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전에 나왔던 중국사 개설서나 통사와 비교했을 때 풍부한 지도와 시각 자료를 싣고 있으며 역사 이해에서의 공간 요소의 중요성을 잘 부각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특징과 장점은 충분히 설명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이 책이 ‘중국’을 이루어 온 지역, 나라, 민족들의 안팎으로의 관계들을 통해 ‘중국’을 보여주며, 중층적 교류·교환의 과정으로서 중국사를 다룬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중국이 결코 균질적이며 자족적이고 우월한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는 시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어느 지역, 나라 혹은 민족의 역사도 그것만으로 서술될 수 있는 자족적인 것일 수 없지만 근대적 경계가르기의 오래된(?) 습관 속에서 우리는 종종 일국사적 관점에 매몰되곤 한다. 관계의 역사가 운위되더라도 그것으로 끝날 뿐 실감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지 못했다면, 이 책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 책을 관통하는 관계론적 시각은 저자들의 역사인식의 결과인 동시에 아틀라스적인 지식 구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바이기도 하다.
96개 주제의 첫 항목 <다원적 신석기 문명>에서부터 이러한 시각은 도드라진다. 통상 ‘황하’ 유역과 간단히 결부시켜 ‘중국’의 고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 유라시아 대륙 동편 여러 지역의 초기 문명들이 경쟁 융합해 온 결과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고대 문명이란 말로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는 제안으로서 항목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은 탁월한 안목으로 선택, 구성된 두 장의 지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부각된다. 아니, 글을 읽기 전에 이미 이 지도들은 그와 같은 제안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실, 이 책을 몇 페이지만 들추어 보면 매 항목 등장하는 지도와 시각 자료들이 결코 문자 서술의 보조 자료가 아니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게 된다. 매 면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비중이거니와, 세심히 구성된 지도들은 문자보다 먼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한 장 두 장 넘겨가며 지도와 그에 연관된 시각 자료들을 꼼꼼히 살필라 치면 우리는 그 어떤 문자 서술도 들려주지 못할 풍성한 역사를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에서 글은 지도와 그림에 대한 주석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전면으로 부각되는 지도들은 역사 인식을 풍부하게 해 주는 동시에 그 속성상 우리의 시야를 한정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자들과 편집자가 자부하는 현실감 넘치는 음영기복도 위에 그려진 경로와 경계들은 역사 인식에서의 공간감을 선명히 하는 만큼 거부할 수 없는 권위로 구축되는 것이 사실이며, 다른 경로와 경계들에 대한 상상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공간묘사에 상대적으로 어눌할 수밖에 없는 언어적 서술이 오히려 그 침묵의 행간에 다른 경로와 경계들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열어놓게 된다는 것,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한정된 시간대에 속한 특정 정보들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지도의 속성을 고려할 때, 권위적으로 경로와 경계를 제시하는 개별 지도들을 어떻게 중장기적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도록 배치하느냐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일 것이다. 많은 공이 들어간 이 책의 지도들이 상호 보다 긴밀한 연계 속에서 저자들 나름의 안목으로 파악한 중국사의 어떠한 ‘경향’(들)을 보여주는 데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확한 학문적 판단 못지않게 누구의 명의로 어떠한 경로와 경계들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하는 지도의 정치학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 속에서 차차 해결해가야 할 문제들일 것이다.
금번 성과를 바탕으로 저자들의 희구대로 우리 나름의 더 좋은 중국사 개설서, 우리 나름의 관점을 반영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보편성을 갖는 중국사 개설서가 ‘그려질’ 수 있길 기대한다. 물론 지구를 떠받치는 ‘아틀라스’의 역할을 자임한 저자들과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질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