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들이 몰려있는 상하이의 푸저우로(福州路).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서점 상하이수청(上海書城)에 들어서면 1층 한쪽 벽면에 상하이 관련 연구서들이 즐비하게 꽂혀있다. 최근 몇 년 간 화려하게 조명받고 있는 상하이연구의 결과물들이다. 인문·사회과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과 학문들과 학제간(學際間) 연구들, 그리고 번역서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영역과 관점에서 상하이를 설명하고 해석한다.

상하이연구는 1990년 이후 푸동(浦東)지역의 경제특구지정 계획이 발표되고 곧이어 덩 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1가 시작되면서 불붙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전히 상하이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일은 부담스러웠다. 『상하이 모던-새로운 중국 도시문화의 만개, 1930~1945』의 저자 레오 어우판 리(李歐梵, Leo Ou-fan Lee) 역시 1980년대 초부터 상하이 관련 연구를 시작했지만 “감히 공공연하게 ‘도시문화’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더러 “1930년대 상하이의 백화점이나 영화관, 그리고 댄스홀을 서술할 것이라는 얘기는 차마 입에 담지도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상하이연구의 본격적인 점화는 세기전환기, 상하이시가 제10차 5개년계획을 맞이하여 도시발전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2001년) 학계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이뤄졌다. 레오 어우판 리의 저작은 마침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미국에서 출판되었고(1999년) 뒤이어 중국에도 번역 소개되면서(2001년) 인문학적 층위에서 상하이를 설명하려는 노력에서 모종의 선구적 역할을 맡았다. 저자에 따르면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이 연구가 여러 사정에 의해 순연되면서 1999년에 이르러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지만, 당시로서 이러한 성과 자체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저자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대로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그의 선택은 향촌과 도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문학과 문화, 주류와 비주류 등 여러 측면에서 대립항을 설정함으로써 (중국)학계의 현실에 도전하는 빛나는 시도였다. 레오 어우판 리의 『상하이 모던』은 그런 의미만으로도 충분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상하이의 욕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탈중입서(脫中入西)’다. 낙후한 중국을 벗어나 발전된 서양을 동일시하는 전략. 그 과정에서 중국의 다른 도시들, 예컨대 베이징이나 난징, 혹은 홍콩마저도 타자화하는 전략이다. 배제와 차별의 전략으로서 그것은 중국 안에서 상하이와 타 지역이 경쟁하는 듯한 양상을 만들어낸다. 상하이는 이렇게 다른 지역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다. 따라서 상하이를 읽는 행위는 단지 그 자체를 완결적인 텍스트로 파악하거나 혹은 중국의 축소판으로서 이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중국 나아가 아시아 네트워크의 한 지점(post)으로 상하이의 위치를 설정하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의 3부인 ‘되짚어보기’는 그런 점에서 상하이연구의 위치를 설정하는 저자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은 저작의 구성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전체 저작은 1부 ‘도시문화의 배경’과 2부 ‘근대문학적 상상력-작가와 작품’이라는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주체위치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설정하고 “상하이의 도시문화가 탁월했다는 관점으로 이 도시의 문화적 풍경을 그려내고자”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준다. 예컨대 그가‘도시문화의 배경’을 통해 1930년대 상하이를 문자로 충실히 재현·재구(再構)했을 때, 우리는 간혹 저자가 엄밀한 학술적 서술보다는 감상적 서술에 의존하고 있음을 눈치채면서도 상하이라는 도시를 읽으면서 얼마나 다양한 매(개)체들을 섭렵할 수 있는지, 혹은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됨으로 인해 그것을 양해한다. 그러나 그러한 재현·재구의 최종심급이 어디에 이르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2부 ‘근대문학적 상상력’에 이르면 도시연구라는 저자의 선언이 멋쩍어질 정도로 기존의 문학텍스트 분석 방법론을 초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당혹스럽다. 그것은 이 저작 자체가 과도(過渡/過度)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아울러 저자 자신이 이 연구를 시작할 때 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를 담보하고 있었음에도, 연구의 결과가 결국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는 설명하지 못한 데 대한 곤혹감이기도 하다. 1930년대의 충실한 재현·재구를 넘어선 해석(interpretation)의 지평은 어디로 열려 있는가?

상하이는 분명 지역·문화연구로서의 중국연구, 도시연구에 있어 매력적인 도시이자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거기에는 근대, 문화, 계층, 민족, 식민, 미디어, 성별, 대중 등 무수한 꺼리들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즉 “필자가 본서에서 행하고 있는 도시근대성의 개념에 관한 탐색은(…)전통적인 지성사의 엘리트주의적 접근 ―  단순히 개별 사상가의 기본 관점을 탐색할 뿐인 ― 과 구별된다. 필자는 문화사가의 임무란 이른바 ‘문화적 상상’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적 상상’이라는 것 자체가 집단적인 감성과 그 문화의 소산에서 비롯된 의미로 정의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동시에 반드시 이 해석 의도에 담긴 두 방향의 목표, 즉 이러한 문화적 소산의 사회적, 제도적 맥락 및 그러한 상상을 만들고 교류시키는 형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선언은 구체적인 도시·문화·지역 연구의 방법론을 획득할 때에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