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공영텔레비전(PTS, Public Television Service)는 지난 2007년 7월 21일부터 9월 29일까지 <더 이상 나를 외국인 신부라 부르지 마세요 (別再叫我外籍新娘)>를 매주 토요일 저녁에 방영했다. 총 21편으로 구성된 이 TV연속극은 타이완에서는 처음으로 동남아시아 출신의 신(新)이주자들이 타이완에서 겪게 되는 삶의 역경을 소개했다. 각 에피소드는 타이완 남성들과의 결혼을 목적으로 타이완으로 이주한 네 명의 베트남 여성들이 새로운 사회적 관계에 적응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연속극의 주요 등장인물이자 베트남 여성들의 파트너인 30대 중후반의 타이완 남성들은 결혼 또는 재혼을 해야 하는 서로 다른 압박에 시달려왔다. 일과를 마친 후, 이들 네 명의 타이완 남성들은 종종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들 중 한 명이 우연히 “단돈 300달러(NT)에 베트남 처녀 신부 보장”이라는 광고를 발견한다. 그리고 네 사람은 파트너를 찾기 위해 호치민시(市)로 여행을 떠난다.

서로 다른 결혼 중개인의 알선을 통해, 이들은 호텔방에서 일군의 베트남 여성들을 차례차례 만난다. 베트남 여성들에게 타이완 남성들과의 결혼이란 낭만적인 이상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만다린(mandarin)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형성된 인식인 듯하다. 결혼을 해야 하는 서로의 복잡한 이유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타이완 남성들은 파트너를 고르는 데 성공한다. 배달원 아친(阿欽)은 타이완인 소유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진후이(金惠)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가 파트너를 찾아 나선 진짜 이유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그의 형, 아꽝(阿廣)의 부인을 찾아달라는 가족들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함임이 후에 밝혀진다. 네 명의 여성 중 가장 유복한 추이화(翠華)와 결혼하게 된 전기기사 샤오난(孝男)은 타이완에서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과장함으로써 그녀를 현혹시킨다. 또한 그의 이혼 전력과 두 아이와 노망든 아버지를 돌봐 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결혼한다는 사실도 숨긴다. 한편, 경비원으로 소개되는 야오화(耀華)는 파트너 메이팡(梅芳)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충과 성적 착취의 심각성에 무지하다. 마지막으로 쩐동(振東)과 슈주(秀珠) 부부는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지만, 아기의 출생을 기다리며 행복한 신혼을 즐기던 중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남편이 총각시절 매춘부와 맺은 성관계로 인해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드라마의 전제적인 분위기는 어둡게 묘사된다. 그리고 네 명의 베트남 여성들이(이 배우들은 실제 타이완에서 거주하는 베트남 여성들이다) 남편들과의 복잡한 관계망에 진입함에 따라, 드라마는 점점 더 암울해진다.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일가친척들 앞에서 진후이는 그녀의 진짜 남편이 아꽝임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아친에 대한 욕망을 표현할 수 없음은 물론, 가족들의 철저한 속임수에 저항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진후이는, 수도원장인 시아버지와 아친이 집도하는 희한한 종교의식에 다시 한 번 위협을 느낀다. 심지어 거리낌 없는 성격의 추이화조차도 남편 샤오난의 언어폭력과 신체학대에 시달린다.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슈주인데,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HIV에 감염되고 HIV에 관한 타이완의 시대착오적 법(1)에 의해 국외추방의 위기에 놓인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타이완에서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문화적 충격, 예를 들어 무슨 음식을 만들지에 대해 시어머니와 의논해야 하는 사안은 별 어려움이 아닌 듯이 보인다. <더 이상 나를 외국인 신부라 부르지 마세요>에 등장하는 베트남 이주자들은 실질적으로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감독(2)과 PTS의 제작책임자 모두 이 작품의 제작동기를 <나를 외국인 신부라고 부르지 마세요(別叫我外籍新娘)>(3)에서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문집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인 이주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자들과 사회사업가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이 책은 시민으로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치욕적 용어인 '외국인 신부'의 사용에 항의하는 각종 행사와 활동에 참여한 이주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중립적 명명인 듯 보이지만, '외국인 신부'는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타이완에 거주하는 많은 이주자 여성들이 신부로서의 오랜 삶을 통해 타이완 생활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용어로서 '외국인 신부'가 오랫동안 '사회문제(social problem)'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사회학자이자 운동가인 샤 샤오쥐앤(夏曉鵑)은 정부보고서와 신문기사에 기록된 '외국인 신부'가 어떻게 '사회문제'와 연계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해냈다. 그에 의하면, 외국인 신부에 대한 매우 일반화된 고정관념은 남자를 우려먹는 여자다.(4) 타이완에서 '외국인 신부'는 후진성과 열등성, 그리고 탐욕을 함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각각의 고정관념들은 양극화, 지역 불평등, 가부장제,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와 같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적 현상이 타이완에서 재연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더구나 '외국인 신부'는 인종차별적인 용어다. 왜냐하면 비록 소수이지만 타이완 남성들과 결혼한 백인 외국인들은 이러한 저급한 그룹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 신부'에 대한 이해는 앞에서 살핀 TV연속극을 평가하는 데 기초가 된다. 이 프로그램이 사회 약자인 베트남 여성이주자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라고 평가하는 부류가 있는데, 이는 PTS를 옹호하는 입장과 같다. 그 사회적 파장을 우려하여 외국인신부에 관한 드라마 제작을 회피하는 사설 케이블 채널과 달리 PTS는 윤리적 공공성이 확보된 채널로 인식된다. 이러한 도덕성의 확보는 PTS 프로그램 제작국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다른 측면의 평가는 주로 동남아시아 출신의 신이민자들의 다양한 일상에 근접해 있는 이들에 의해 제기되는데 그들은 이 연속극이 편협하고 시대에 뒤처지며 지나치게 멜로적이라고 폄하한다. 예컨대, 베트남어로 발행되는 신문의 편집자 바오 본 푸옹(Bao Bon phuong)은 드라마의 극적인 흐름이 프로그램의 진보적인 잠재성을 격하시킨다고 논평했다. PTS 웹사이트에 글을 올린 어떤 사람은(자신은 그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으면서도) 방송국의 “좋은 의도”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베트남인 아내가 이 드라마를 보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드라마에 묘사된 극도의 감정 표현들이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이주자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부류의 반응은 사회문제 혹은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외국인 신부'의 현실을 읽는 다양한 독법과 관련하여 미디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다른 기대를 보여준다.

PTS가 올바른 일을 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 대신, 타이완에 거주하는 이주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재현과 '외국인 신부'에 관한 파편적 관념들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범주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 미디어가 제작되고 소비되는 환경에서 어떤 종류의 일관된 이미지 생산이 가능하며 또 불가능한가? 다시 말해, 나는 모든 무게를 짊어진 하나의 프로그램 또는 채널이 아닌 그 전체 미디어와 정보환경에 관심이 있다. 명백한 사실이지만, “사회적 책임이 있는” TV드라마는 언어와 일상, 그리고 미디어 콘텐츠에 있고 지속적으로 강화된 고정관념을 전복하지 못한다. 예컨대, 아직도 희생자 또는 사기꾼으로서 외국인 신부를 설명하는 무자비한 뉴스들이 방송되고 있다.
PTS의 “신중한” 형식과 “교육적인” 태도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채널을 고정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엘리트주의는 여전히 타이완 ‘공영’ 텔레비전의 가장 큰 딜레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TS는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5)을 자축하는 한편, 케이블 채널의 주중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되는 극적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다수 시청자들의 감성적 공감대 속으로 파고들고자 노력하는 PTS의 면모를 입증한다. '외국인 신부'에 관한 동남아시아 영화 및 다큐멘터리들과 더불어 드라마를 방영하고자 하는 PTS의 노력 또한 동남아시아에 대한 시청자들의 문화적인 경험을 확장하고자 하는 PTS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제와 다큐멘터리 상영회는 '외국인 타자들'에 관한 이야기와 이미지가 유통되는 타이완의 중요한 문화적 현장이다. 예를 들어, 타이완여성영상학회는 순회 다큐멘터리영화제인 '남풍, 타이완 향기Southern Winds, Taiwan Scent' (2007.9.21~10.26)를 개최했는데, 이 영화제에서는 타이완에 이주한 여성들의 삶을 소재로 한 10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었다. PTS는 방송국 개국 9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타이완의 북부, 중부, 남부 지역에서 이주자에 관한 60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개최했다. 독립단편영화들은 보다 깊이있는 이야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제작자와 관객 그리고 서로 다른 시민 그룹들과의 만남을 매개하는 기능을 한다. 2007년 10월 30일 일군의 동남아 이주여성들이 러셩(樂生)요양원을 방문했다. 영화 상영에 이어, 그들은 사회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곳의 거주자이자 활동가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독립영화의 느리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인정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독립영화운동이 주류 관객들의 접근 범위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독립영화보다는 접근성이 뛰어난 대중언론을 통해 외국인 이주자들의 재현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항해Voyage15840』(6)은 타이완으로 이주한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에 관한 매우 새로운 종류의 사진집이다. 이들 사진을 검토한 타이베이 지하철 사업소는 접근성이 뛰어난 공공의 지하철역 공간에서 그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그 이유는 사진 전시로 인해 도시의 이미지가 나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타이완의 신이주자들이 자신들에 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노출할 공간 확보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편의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황금신부>(SBS, 2007)와 <하노이 신부>(SBS, 2005)를 봤을 때, 나는 이 두 드라마가 연인들의 로맨스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한국의 로맨스 또는 아이돌(idol) 드라마에서는 매우 일반화된 이러한 요소들이 타이완 '외국인 신부'에 대한 대중적인 묘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더 이상 나를 외국인 신부라 부르지 마세요>를 제작한 PTS의 책임자에게 이 작품을 아이돌 드라마로 기획하자는 제안들이 있었는지 질문했을 때, 나는 내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는 것은 오락으로서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물론, 로맨스나 아이돌 형식이 이데올로기적 문제들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로맨스 결혼의  칭송은 종종 다른 일반적 결혼 방식인 중매결혼이나 정략결혼에 대한 과소평가로 이어지곤 한다. 후자의 결혼방식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의식의 세속적 감정적 환상적 측면을 자극하고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 우리는 이미지의 증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나는 동남아시아 신부를 묘사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타이완 텔레비전 제작사들이 따라야할 전형적인 모델일 뿐만 아니라, 영감의 잠재적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드라마들이 재현하고 고무한 환상들은 신이민자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 중요한 재료가 된다. '외국인 신부'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구축된 의미로서 '문제'라는 틀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들의 이미지 또한 하찮은 이야기로부터 탈주하여 개인의 욕망과 감정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아마도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이주자들의 암울한 환경을 근거로 나의 제안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재현하려 시도한 이주노동자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 제작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소외되어 곤경에 처한 인물들을 기록한 타이완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공공의 “호의(good will)”는 일종의 “응원(cheerleading)”양식이며, 이미지들의 문화정치학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사회적ㆍ문화적 분화를 확장할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외국인 신부라 부르지 마세요>는 '외국인 신부'들이 마침내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문화매체에 포함되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타이완에서 이주 여성들을 소재로 하는 마지막 텔레비전 드라마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언급한 바 있듯이,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들에 대한 대부분의 미디어 이미지들은 공식적이며 대안적인 담론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미디어 노출은 '이민자'가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가진 흥미와 결점이 소개된 무거운 이슈라는 느낌을 영속시킨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확장이 필요한데, 이 지점에서 '공공'적이고 진보적인 미디어뿐만 아니라 대중미디어의 참여가 더욱 요구된다.

앞으로 도래할 미디어의 이미지 제작환경에 기대하고 있는 나의 두 가지 바람을 표명하며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장기 방영되고 있는 타이완의 멜로드라마 시리즈들이 이주자와 그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주되, 그 방식은 다른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처럼 흥미롭고 현실감 있는 인물들로 묘사해 주길 기대한다. 다음으로, 드라마 제작현장에 있는 모든 창작자들이 아이돌 드라마와 최신 유행 드라마의 특징을 신이주자 이야기의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었으면 한다. 국경을 넘어 어디서나 보편적일 수 있는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를 제작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아이돌 드라마나 최신 유행 드라마 유형을 활용함으로써 신이주자들과 그 주변인물에게 오랫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문화적 상상력과 흥미를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반인들이 '외국인 신부'를 아름답거나 호감이 가는 인물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외국인 신부'가 주는 인상은 무엇일까? 매력적인 인물로서의 '외국인 신부'는 불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