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시아의 도시들이 서구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근대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은 인류 도시 역사에 가장 급격하고 폭력적인 변화를 동반했다. 근대 시민사회의 성장은 도시의 발달에 다름아니다. 서구 제국주의의 진출이 플랜테이션(plantation)1 단계를 벗어나 직접적인 정치겚본瑛?지배 단계로 접어들면서 침략의 목표가 도시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신대륙과 달리 아시아는 이미 서구와의 접촉 이전에 고도로 발달한 중세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도시 역시 고대의 격자도시 단계를 거쳐 중세의 유기적 고밀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15세기 대항해 시기에 개발된 동서무역 항로에서 비껴나 있었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서구와 접촉한‘가장 늦게 발견된’문명국가였고, 그만큼 그 충격이 컸다.

서구 식민주의자들에 의한 도시개발은 크게 신도시 개발과 구도시 개조의 두 가지 방향을 갖는다. 대개 신도시개발이 범선과 기선의 정박을 위한 항구도시의 건설로 나타난다면, 구도시의 개조는 도시구조 변화를 동반한 중세적 상징파괴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다시, 구도심부의 외곽에 신도심을 건설하는 일과 구도심 자체를 개변하는 것으로 나뉜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서울 침탈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서대문 밖 영천지역으로부터 시작해 남산 자락으로 확대된 초기 진출에 이어, 마침내 인천연락선이 닿는 용산을 개발하는 것이 1910년 이전의 일이었고 병탄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궁궐과 구황실 관련 국유지를 개발했다. 경복궁 전면을 가로막는 총독부 신청사를 완공하고 덕수궁 앞에 재판소와 경성부청을 신축, 이전했으며,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시선축에는 조선신궁으로 오르는 거대한 참배로를 건설하여 역사도시의 상징체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는데 이들은 모두 1926년 이전에 완료되었다.

일제에 의한 상징파괴를 논외로 하고 순수한 물리적 변화에 주목한다면, 서울이 근대 산업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에 두 번의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1936년 관할구역을 확대하면서 영등포를 공업지구로 개발하여 한강 이남지역을 행정구역 내에 최초로 편입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기간 중 궁궐들이 위치한 청계천 북쪽을 피해 청계천 이남에 폭격이 집중된 것이다. 이를 전후로 일련의 사건이 겹치면서 서울에는 청계천을 경계로 하는 북촌과 남촌, 한강을 경계로 하는 강북과 강남의 이중적 남북차가 고착된다. 남촌이 개발된 것은 러일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인이 대거 남산 자락에 진출하면서부터이지만, 해방 이후에도 남촌이 거듭 개발된 것은 폭격에 따른 복구사업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강남지역의 급성장은 1970년대 영등포의 동쪽 즉, 영동지역 개발에 의한 결과이지만, 서울의 성장축을 남쪽으로 잡은 것은 항구도시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선 때문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는 수도 서울의 역사적 상징체계를 회복하면서도, 경제성장의 중심지로 기개발지를 집중 개발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가졌다. 하지만 고가도로 건설을 위해 사적으로 지정된 독립문의 위치를 옮긴 것(1979)에서 볼 수 있듯 교통, 주택 등 도시문제 해결이 역사성 회복보다 늘 우선시되었다. 개발과 보존으로 간단히 구분되는 이 두 가지 태도는 대체로 1988년 올림픽을 통한 본격적인 대외교류와 1995년 지방자치제의 부활에 따른 주민의사 표출의 활성화로 새로운 균형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1990년대에는 서울의 수평적 성장이 한계상황에 이르러 그린벨트를 뛰어넘는 월경지 개발과 초고층, 지하공간을 향하는 수직적 확산이 활발해졌고, 서울의 산업구조 역시 금융과 엔터테인먼트 등 고효율 구조로 재편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긴 1990년대 도시보존 사업의 변화는 아직 이념의 변화를 동반한 것이라기보다는 규모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이전까지의 도시보존 사업이 문화재 보존사업 차원에서 개별적인 건물 혹은 건축군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제부터는 지역을 포괄하는  단위로 확대되었고, 당연히 소요되는 예산의 규모가 커졌으며 이에 따라 정부 내의 소관부처 역시 차관급의 독립청으로 승격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역사도시 회복사업이 창경궁을 시작으로 한 경희궁, 경복궁, 창덕궁, 그리고 덕수궁 등의 궁궐 복원사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대규모 궁궐복원 작업이 서울의 강남개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창경궁의 복원은 경내에 자리했던 동물원과 식물원을 과천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비롯된 일이고, 경희궁의 복원 역시 강남지역 진흥을 위한 서울고등학교 강남 이전으로부터 발생한 일이다. 경복궁 복원 또한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던 구 총독부청사의 철거에서 비롯된 일이니 이들 궁궐의 복원은 모두 일제가 설치한 근대적 시설의 철거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분단과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민족’과 ‘전통’은 불가침의 권위를 부여받게 되었고, 근대성은 식민지 시기와 겹치면서 간단히 무시되었다. 다시 말하면, 1990년대의 대표적인 역사도시 보존사업인 궁궐 복원은 여전히 이념적이며, 가까운 과거를 부정하고 먼 과거를 회복하는 ‘시계 되돌리기’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보존의 대상과 목표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다. 서울의 경우 대표적인 사업으로 북촌가꾸기 사업과 청계천복원사업을 들 수 있다. 북촌가꾸기 사업의 경우 전통적인 문화재의 개념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상적 생활 경관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북촌의 한옥군은 1920년대 후반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그것은 오래도록 청산대상으로만 존재하던 식민지 시기를 복원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전통 혹은 민족에 집착하는 이념과잉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청계천복원사업의 경우, 광교(廣橋)나 수표교(水標橋) 등의 발굴에서 보듯 전래의 역사복원을 표면에 두었으나, 교통문제 등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목표였음을 곧 알게 되었다. 이후 사업의 중기부터는 역사라는 이슈를 내리고 생태환경 복원을 표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보존 관심대상이 한층 확대되었다. 이 사업의 극복대상이 일제에 의한 식민시설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상징물이었던 삼일고가도로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결국은 이 모든 작업이 유효소비층의 세대교체에 맞추어, 새로운 중년들의 유년 기억을 자극하는 회고취미에 기대고 있다고 단순히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개발을 위한 보존’이라는 후기자본주의적 경제개념과 공공장소의 개발을 선거 이슈로 삼는 정치공학을 소개한 점은 한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한편, 알려진 것처럼 북촌이나 청계천 사업은 ‘뉴타운개발’로 대표되는 강북지역의 철거재개발사업과 쌍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식민시기의 남촌과 북촌, 개발시기의 강남과 강북개발이 각각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경계를 갖고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진행된 일인데 반하여, 최근의 도시개발사업은 동시다발적이고 공간적 경계없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복합적이고 더욱 교묘하다. 또, 작은 필지로 분할되어 있고, 차량통행에 적합하지 않은 도로망을 가진 구도심의 저개발 문제는 모든 도시들이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이다. 이 때문에 역사문화도시의 조성은 낙후된 구도심 활성화의 유일한 대안으로 각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혼성모방되고 있다. 실제로 경주, 전주, 수원은 한옥마을을, 부산과 목포, 인천은 개항장과 차이나타운을 각각 구도심개발의 주요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수원은 화성 성곽내의 모든 토지를 매입하여 한옥도시를 조성한다는 거대 계획을 내놓기까지 하였다.

북촌과 청계천 사업이 갖는 성과와 한계를 세심하게 살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두 지역은 이미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생활경관 혹은 생태환경의 회복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개인주택이 들어서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지가가 형성되어 북촌은 이미 소규모 상업시설과 고급빌라, 유한자들의 별장형 한옥들로 채워져 가고 있고, 청계천 주변 역시 고층의 빌딩군과 전광판으로 둘러싸인 유원지로 바뀌고 있다. 주민들의 일상이 파괴되어가는 것과 함께, 주말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방문자들의 앞에 놓인 팍팍한 일상의 너저분한 환경은 그들이 느끼는 괴리감을 더욱 크게 할 뿐이다. 어느 쪽도 살 만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도시보존의 이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도심내 명소에 열광하는 사이 우리 주변의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둘러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서울의 예를 들어서 생각해본다면, 북촌과 청계천 복원사업에 들인 예산을 나누어 시내의 곳곳에 작은 문화관이나 쉼터를 만들었으면, 두드러지는 정치·경제적 성과는 없을지라도 일상의 삶이 훨씬 더 윤택해졌을 것이다.

정도 600년을 넘은 오랜 역사도시 서울의 도시보존사업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에 들어서 있다. 짧은 경험이지만, 그간의 경과에서도 도시보존사업은 역사보존에서 환경보존으로, 이념적 상징 중심에서 일상생활 환경 중심으로 이동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참여의 주체 역시 전문가, 정부 중심에서 시민사회단체로 나아가고 있다. 도시보존의 최종적인 목표가 살 만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때, 사업의 주체와 목표대상 역시 더욱 작은 지역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모든 시민이 자신의 꿈과 추억을 묻어두고 안식을 느끼는 자신만의 장소를 가지게 될 때 우리의 도시는 진정 살 만한 도시가 될 것이다. 복원의 절대성에 매몰되지 않고, 타자의 시선에 구속되지 않고, 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하는 도시보존이 될 때 도시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