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라디오헤드(Radiohead)1993년 데뷔한 영국 록밴드가 신보의 음원을 무료로 홈페이지에서 공개했다. 소비자 스스로 가격을 매기게 했고, 저작권 보호장치도 없어, 누구나 듣는 것뿐만이 아니라 CD로 굽는 것까지 가능하게 했다. 팬들은 당연히 열광했다. 전 세계 수많은 음악팬들이 이들의 홈페이지를 몇 번이나 다운시키면서 음원을 받아갔다. 그러나 이 세계적인 밴드의 시도에 대한 음반산업계의 시각은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첫째는 이들의 이 시도가 ‘돈을 벌 만큼 번 슈퍼밴드의 치기어린 이벤트’라는 시각이다. ‘우리는 부자다. 그러니 원하는 음악을 가져가라’라는 이들의 홈페이지 음원공개 구호가 말해주듯 공연수입만으로도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밴드가 마치 새 시대의 사도라도 되는 양 행세하는 록밴드 특유의 기행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시각이다. 결국 자신들의 기본적 수입에 위협이 될 만한 상태가 되면 곧 중단될 일회성 시도이며, 이들은 결국 돈도 자신들의 음악의 가치도 다 놓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냉소적 시각의 또 하나는 이들의 이런 행위가 결국은 오프라인 시장에서의 상업적 이익을 향한 교묘한 홍보이벤트라는 주장이다. 어차피 온라인 음원수입보다는 오프라인의 공연수입 증대가 이들의 목표이고, 결국은 이들의 무료 제공 이벤트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홍보효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냉소의 극단은 비아냥과 두려움이다. 라디오헤드의 시도는 결국 21세기의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도둑질인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항복을 의미한다는 시선이 그것이다. 이로써 오프라인 음반시장은 붕괴할 것이며 음악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습관을 사라지게 만들어 음악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3개월이나 지난 지금, 이들의 신보 <인 레이보우스In Rainbows>는 ‘이 시대 최고의 음반’이라는 격찬 속에서 여전히 팔려나가고 있다. 이들이 음원과 함께 판매했던 82달러짜리 LP/CD 한정판은 전 세계적으로 10만 세트 이상이 팔려 나갔다. 12월부터 한국에서도 발매된 이들의 신보 CD는 이미 5천 개의 선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이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개인홈페이지, 블로그 등에서 이들의 음악이 들리고 있다. 음악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음악은 새로운 형태로 사람들에게 향유되고 있다.

라디오헤드의 시도는 새로운 유통 형태의 실험이다. 이것은 강자 논리의 해체와 소수의 열성적 향유자, 그리고 새로운 저작권의 개념으로 집약되는 소위 ‘롱테일(long tail)다품종 소량생산 문화’의 시작이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강자 논리의 해체는 거대음반사가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지속시키던 유통의 붕괴를 의미한다. 라디오헤드는 무료 음원 공개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음반을 포기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을 구매하는 열성적 향유자들을 얻은 것이다. 더구나 무료공개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듣게 해 지금까지 그들 음악의 장점을 모르던 사람들의 일부분까지도 열성적 향유자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그들 음악의 창작과 수용이 거대 음반사의 마케팅과 유통이 주도하던 고리에서 벗어나 창작자와 수용자가 직접 만나서 베스트셀러의 대중이라는 환상 속에 갇혀있던 자신들의 취향을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장은 이것이 매출의 감소로 이어지겠지만 자신의 취향을 확인한 이 소수의 열성적 향유자들은 아주 오래도록 그들의 음반과 공연을 구매할 것이다. 또한 이번 시도로 라디오헤드는 세상의 모든 불법 음원다운로드를 더 이상 불법이 아니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온라인 저작권 개념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미 저작권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의 창작물에 대해 재래 매체들과 같은 저작권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온당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이번의 파격적인 무료제공은 이런 저작권 개념의 변화에 대한 선언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라디오헤드는 소비자 스스로가 음원에 대한 값을 매겨 돈을 내게 했다. 무료로 받아간 사람도 있지만 다운을 받아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약 6달러의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음악의 온라인 소비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이번 논란은 결국 향후의 저작권 개념변화에 대한 창작자와 소비자의 합의도출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소위 ‘문화의 종말’이라고 하는 말은 비단 음악계뿐만이 아니라 출판, 영화 등 문화의 다른 분야에서도 수없이 들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말은 요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세기 초 영화가 출현하던 시기에도 사람들은 활자나 연극으로 향유되던 고급문화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했다. TV의 출현에도 컴퓨터의 출현에도 사람들은 ‘문화의 종말’을 예고했다. 그러나 문화는 여전히 살아남았고, 새로운 매체는 재래 매체와 일정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인류의 변화된 문화적 욕구들을 충족시켜 왔다. 그러니까 급격한 매체혁명의 시기에 문화시장에 나타나는 것은 종말이 아니라 변화인 것이다. 종말을 예단하는 것은 재래의 문화구조를 유지해야 이득을 얻는 사람들의 아집이거나, 변화에 적응할 의욕이 없는 사람들의 푸념일 뿐이다. 인간이 현재 수준의 청각을 갖게 된 수만 년 전부터 음악은 늘 있어왔다.  그 사이에 인간은 악기를 발명하고, 음정과 리듬을 만들고, 화성학과 대위법을 발전시켜 왔다. 음악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향유ㆍ유통방식만이 부족의 축제에서 귀족들의 정원으로, 극장으로, 축음기로, 라디오로, 뮤직비디오로, 엠피쓰리(MP3)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단지 그 하나의 변화를 겪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