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의 상황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마지막 남은 분단상황이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분단상황은 여러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생태의 보고(寶庫) DMZ를 거의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했다. 
DMZ가 거론될 때면 떠오르는 작가가 바로 이반이다. 이반에게 DMZ는 남북분단을 상징하며, 분단상황을 끝내고 통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상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일 이후 밀물지어 들어올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욕망과 이에 따른 훼손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자연의 보고를 상징한다. 따라서 생태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실천논리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작가의 작업이 갖는 당위성이 있다. 이반에게 생태란 곧 정치적 실천을 의미한다.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관심이 아니라 생태와 정치의 상호내포적 관계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삶의 질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DMZ를 소재로 했던 각종 프로젝트와 그 성과물들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주로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물과 사진, 각종 서류 등 아카이브(archive) 형식의 작업들이다. 퍼포먼스는 철책에 적대행위를 종식 또는 완화할 요량으로 설치된 대형 마이크의 철거를 촉구하거나, DMZ를 평화공원이 아닌 생태보존지구로 묶어 아예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백두산에서 채취해온 흙과 한라산의 흙을 버무리고, 천지의 물과 백록담의 물을 섞는 의식이 대미를 장식한다.

당대의 문제의식에 대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느껴지는 이 일련의 작업 이면에는 말할 것도 없이 생태에 대한 이반의 관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땅덩어리 자체를 정치적 논리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그 속에 생명이 내장된 인체로 보는 것이다. DMZ는 하나의 온전한 인체를 동강낸 폭력의 계기이며, 동시에 그 상처를 복원해 줄 치유의 계기이다. 이런 인식은 DMZ를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인체를 소재로 하여 우회적으로 다루고 있는 평면작업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기념비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춤사위를 연상시키는 평면작업에서 인체는 그대로 동강난 땅덩어리와 그 폭력의 흔적을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이를 치유하고 복원하는 주술적인 제스처를 암시한다. 작가는 말하자면 DMZ로 동강난 인체를 부여안고서, 이를 이어붙이는 한판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개념미술(1) 작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공공연하게 자신을 무당에 비유했는데, 이반이야말로 이러한 무당 유형의 예술가로 부를 만하다. 역사의 폭력에 의한 분단이라는 상처를 치유하고 복원하는데 이런 무당의 묘약만한 예술도 없을 듯싶다. 작가 이반에게서는 역사의 현장을 지키는 실천적 지식인, 생태론자로서의 예술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의 아픔을 존재의 아픔과 일치시키고 이를 끌어안고 위무하는 무당의 면모가 느껴진다. 이런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정체성의 결이 하나로 합체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평면작업 <팽창>시리즈에서 아예 땅덩어리 자체를 소재로 차용한다. 땅의 표면에 난 자잘하고 무수한 크랙(crack)들이 상처인 양 보이고 또 숨구멍인 양 보인다. 여기서 인체와 땅덩어리는 생명을 매개로 하나의 격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작가 이반은 생명과 생태를 화두로 한 실천논리의 가장 강력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