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불안정한 삶. 무언가 대단히 일궈놓은 것도 없고 번듯한 지위나 직책도 얻어내지 못했으며 거대한 사회적 공헌도 없는,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더없이 허무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더 특별할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장년의 서른일곱의 나이. 이 나이에서 과거의 풋내기 소년시절을 떠올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극단 연미의 <소년B>는 더없이 ‘나’에 분투했던 14살 소년시절을 실감나게 그려내며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14살, 신체적으로는 성인의 징후를 더없이 드러내며 스스로 어른의 대열에 진입하고픈 혹은 이미 진입했다고 뻐기기도 하지만, 가족과 사회 속에서는 개인적 독립성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어린 나이. 그래서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반항과 투쟁, 실험과 모험을 거침없이 시도하는 이른바 사춘기다.

가족 속에서는 개체적 특수성을 선언하고, 작은 사회집단인 학교에서도 자신만의 변별성을 강조한다. 스스로 자신의 실존에 집중하며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지구 인구 70억 분의 1의 특별함을 찾기 위해 끝없이 좌충우돌한다. 시야도 가족의 울타리에서 학교집단, 지역사회, 나라를 벗어나 거대한 우주까지 열리는 이른바 빅뱅의 시기다.

이런 사고의 확장은 더없는 상상으로 공상으로, 심지어 망상으로 번져가고 이런 비현실적 사고가 현실을 장악하면서 어느새 현실과 상상이 서로 교차하고 혼합되고 뒤엉키는 아노미 상태가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되는 것이다.

시바 유키오의 희곡구조는 이런 소년기의 의식흐름을 그대로 좇고 있다. 회상, 공상, 꿈이 현실과 동일한 선상에서 무대화되고 그 정체마저 계속 혼용시킨다. 더불어 집단 속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사건들을 숱하게 시험대처럼 노출시킨다.

합창단 지휘자로 추앙받는 공상, 자신이 짠 개그가 학생 전체에 먹힐 거라는 상상, 여학생에게 인정받는 허세, 급기야 테러리스트를 물리치거나 자신이 외계인일 수도 있다는 망상에서부터 불합리하게 힘을 내세워 자아를 훼손하는 친구에 대항하는 분개, 급기야 자전거 뺑소니로 인해 동물 살해의 범인으로 지목되는 도덕적 강박이라는 의식의 흐름까지, 이 모든 시험대들이 집단 속에서 불안정한 개인의 정체성 찾기로 귀결되고, 잃지 말아야 할 도덕과 윤리의 자각으로 이어지며 특별해지려는 자아가 집단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되느냐로 나아간다.

이러한 시바 유키오의 희곡구조를 ‘극단 연미’는 한국의 소년으로 번안하여 그 매력을 충분히 발산했다. 어지럽게 펼쳐놓은 무대는 소년기의 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의식의 혼돈을 수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훌러덩 벗어지거나 대충 껴입고 마는 그 시절의 옷매무새처럼 그 모든 의상전환을 무대 위에 그대로 노출한다(물론 희곡상의 제시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은 급격히 전환되고 회상, 공상, 꿈이 현실과 동일하게 그려져 관객들과 정체공방의 게임도 끈끈하게 이어간다. 마치 ‘이건 줄 알았지?’라고 놀리듯 금방 공상이었음을 실토한다. 그것이 다소 허망한 속임수이고 그 코드가 개그적인 수법이라 할지라도 소년기의 의식 흐름과 맞닿아 충분히 공감을 일으킨다. 심지어 실제적 사실 또한 무의식이나 망상으로 기억을 재구성한 것 같은 혼돈에까지 이르며, 급기야 현실과 환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그 진가를 충분히 발휘한다. 애초부터 세련되게 정제한 완결미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기에, 다소 거칠게 구성된 장면 형상이나 단순하고 돌출적인 조명과 음악의 운영, 거칠게 비정제된 연기 또한 그 그릇에 충분히 용해된다. 아마도 이 모든 게 매끈하게 가지치기되었다면 이 작품의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외계인 설로 이어지는 자아정체의 우주론적 접근이나 동물연쇄살인이나 엽기적인 행태들의 양상이, 존재적 근원에 집착하거나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에 강하게 기대고 있는 일본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어 한국적 번안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존재적 불안에 침잠된 사유체계가 충분히 사춘기스럽고 다양한 일본문화의 유입으로 우리에게 덜 어색하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단지 일본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인용되는 노래를 한국 노래로 대체한 것으로 한국화했다고 하기에는 뿌리와 가지와 잎이 접붙여진 이질감은 극복하기 힘들었다.

더불어 공연 첫 날임에도 관객 수가 지나치게 적은 것도 아쉬움이 크다. 공연관계자들은 이른바 빼빼로데이의 여파라고는 했지만, 소년이거나 소년이었던 예비 관객들에겐 더없이 흥미로운 소재·주제이며, 더구나 여전히 소년적 질문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청년이나 과도기적 장년을 공연장에 모아낼 세밀한 집객 계획은 느껴지지 않았다. 작품이 가진 혼돈의 매력이 기획의 혼돈으로 용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극단 연미는 <소년B>라는 흥미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극단의 행보가 상주공연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것도 고무적이다. 상주를 거점으로 더 활기찬 공연 실천을 이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