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하지 않으면 오물汚物도 오물이 되지 않을 수 있지 있을까. 버려졌으나 다 버려졌다고 할 수 없다는, 물론 버린 사람은 온전히 버렸으나 버려진 것들은 스스로 다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들. 쓰레기라는 말 속에는 무용無用과 더러움과 불편함 같은 것들이 스며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버려진 것들 자신의 판단이나 시각은 아니다. 여기에는 기능성의 좌초와 아름다움에 대한 포기라는 전제조건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온전한 판단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과 시간이 필요하다. 

 몇 해 전 나는 한 공공건물 뒤편의 소위 폐기물 하치장에 우연찮게 들른 적이 있다. 거기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물건들이 많았다. 신기했다. 여느 술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모양의 빈 술병들과 도예 공방에서 나온 깨진 그릇이며 접시들, 사무실에서 나온 듯한 다양한 사무용품이며 집기들이 즐비했다. 행사가 끝나 시들어 버려진 대형 화환과 용도를 잘 알 수 없는 밧줄들, 신비디움계係 서양란이 시든 채 담긴 화분 등 그 이름이나 용도조차 불분명한 물건들이 뒤엉켜 있었다. 껍데기나 포장박스만이 남은 것들도 많았다. 죽을 둥 살 둥 하는 다육식물多肉植物은 옮겨만 심으면 나 같은 문외한으로서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비록 포장 껍데기라고는 하지만 용도를 달리하면 변신이 가능한 소재들도 있었다. 처음 물건을 만들었을 때 그 기능이나 분위기가 조금만 어긋나거나 바뀌면 가차 없이 이곳 쓰레기장으로 던져지는 듯했다. 빈 중국 술병은 속을 헹궈서 매실 액을 담거나 연적硯滴 대신으로 써도 맞춤해 보였다. 술 대신 향수를 담은들 뭐 그리 추레하겠는가.

 거기에 있는 여러 버려진 사물들은 단순하게 쓰레기라고 싸잡아 말하기에는 어딘가 낯설었다. 들숨 날숨을 쉬는 숨탄것들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보이지 않는 숨결을 지니고 있어 보였다. 등받이가 넘어갔으나 앉을깨와 발통은 멀쩡한 회전의자는 어디 외딴섬 작은 별채 처마 그늘에 모셔놔도 되지 않을까. 하다못해 어느 공간 그늘에 서린 케케묵은 먼지 다발도 뭔가 쓰임이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런저런 여사여사한 이유로 버려진 물건들은 소외의 그늘에 들었다기보다는 은밀한 상상의 옆트임을 슬쩍 보여준다. 저 버려진 사물들은 분해되거나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뽑혀 써야 할 대상만은 아니었다. 전선줄에서 구리 속심을 뽑아 쓰듯이 쓸 수도 있겠지만, 버려지고 망가진 것을 좀 더 살려보자는 냅뜰성이 이 쓰레기장에 오면 갑자기 새록새록해지는 거였다. 거기에 풀들이 푸르게 기웃거렸다. 깨져 칼날 같은 거울은 위험하기는 했지만 무심하게 풀들과 벌레와 하치장의 공기를 비춰주고 있었다. 흔히 버려진 사물들끼리도 은밀한 살림을 도모하고 교유하는 듯싶었다. 

 어느 초겨울에 나는 다시 그 폐기물 하치장에 들렀다. 그리고 거기서 기능이 고장 난 듯한 작은 플라스틱 크리스마스트리를 두 개나 집으로 가져왔다. 트리엔 반짝이 전구가 휘감아져 있었다. 흰색의 트리와 진초록의 트리 모두에 장식전구가 휘감아져 있었다. 외관상 크게 망가진 데가 없었기에 장식전구만 갈면 되리라 짐작했다. 적당히 달린 액세서리들도 낡아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가져와서 장식전구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뼈대만 쓸려고 가져온 플라스틱 트리에서 순간 수십 개의 꼬마전구 불빛이 반짝이는 거였다. 왜 나를 인제 깨웠느냐는 듯이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더 놀라운 건 가져온 두 개의 트리 모두 꼬마전구 불빛이 고장 나 있지 않다는 거였다. 놀라움은 그 다음에 이어졌다. 누가 이런 멀쩡한 작은 트리를 버렸을까 하는 거였다. 수지맞은 기분도 있었지만 왠지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왔다. 누군가 발견하고 다시 쓰려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면 이 플라스틱 트리며 장식은 불구덩이에 들어가 검은 연기의 그늘만을 흘리다 갔을 것이다. 

 초겨울 언젠가는 버려진 아열대 식물 화분을 낑낑거리며 자전거 뒷좌석에 데리고 온 적도 있다. 내 어깨까지 오는 식물의 이름은 요령부득이었지만 초록의 입지를 쉽게 빼앗아버리는 것이 과연 공간을 배치하고 구성하는 사람들의 마음일까 아쉬웠다. 물론 나도 집안의 화분 식물을 잘 죽인다. 세심한 관리나 건사가 부족한 탓이다. 그러나 일부러 내다 버리는 극단만을 애써 피해왔다. 누구는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불길한 잡동사니를 집안에 들인다고 꺼리지만 사물의 입장에서 보면 섭섭한 일이다. 존재 자체를 열고 닫는 일이 그 사물의 주재主宰가 아닌 사람의 손에 놓여있다는 운명을 어떤 사물이 깨닫는 순간, 아마 속으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사물은 버려져서 눈물을 흘리는 것만 아니다. 모든 사물은 전생前生이 있다. 그 전생을 애써 희생하며 제2의 사물로 태어난 것을 기뻐할 사이도 없이 한순간의 판단에 버려지는 것에 그 단순함의 폭력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외국 양주를 담았던 둥근 나무통은 이제 붓을 담아두는 붓통이 돼 있다. 도예 공방에서 버린 운두가 한쪽 깨진 쑥 빛깔의 접시는 먹물을 풀어쓰는 데 편하다. 여름날 포도송이를 쌌던 종이는 붓글씨 연습을 하는 데 나름 요긴하다. 아직도 남아있는 포도냄새와 먹물냄새가 서로 두동지지 않고 어울릴지도 모른다. 어울림, 그래 버려진 것들은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싸잡아서 그들의 또 다른 생이 쉽게 좌절되는 것을 그 사물의 영혼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나무를 베어 나무의자를 만들고 그 나무의자가 망가지면 버리는 데 끝나는 것이 최종은 아닐 것이다. 다리가 부러진 의자가 또 다른 숨탄것들이나 그들 자신의 변모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쓰레기라는 사물은 그렇게 규정하고 버리지만 않는다면 새로이 제 변신에 기대를 거는 사물의 영혼과 만날 수도 있다. 더듬어봐라, 가만히 들여다보자, 담담하게 즐거이 다음 생을 상상해 보자. 

 정말 당장 버리거나 어떻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건들이 분명히 있고 우리가 그걸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버려지는 물건들도 우리한테는 있다. 본래의 기능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여도 그것은 고장 난 것이거나 용도 폐기의 나락으로 던져져야 할 것처럼 보는 눈들이 있다. 이웃 중국에서는 사기그릇의 이가 빠지거나 운두가 조금 깨져도 오히려 그걸 행운이라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비슷한 재질로 때우거나 심지어 금으로 보수해 쓰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혹은 그 사물이 조금 헐었을 때부터 쓰레기가 아니라 그 주인의 마음으로부터 버려졌을 때 쓰레기가 된다. 그것이 비단 외물外物에만 해당할까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라는 말이 부정적인 수식어로 상대방을 폄훼하는 말로 쓰이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쓰레기라는 개념을 좀 더 달리 느껴볼 여지를 우리가 이제 심어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변두리 공터에서 쓰레기불로 몸의 추위를 견디는 사람들의 얼굴빛을 떠올리면, 쓰레기라는 말은 원래 저주의 말이 아니라 재생을 꿈꾸는 가만하고 소박한 위로의 말에 가깝다 할 수도 있다. 쓰레기라는 말은 ‘쓰고 남은, 아직은 기운과 영혼이 남은 사물들’이라는 뜻으로 바라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