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기억할 것이다. 2012년 연말, 정국을 들쑤셨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혹은 ‘실종’) 사건을. 당시 나는 야구경기장 외야석 말단에 앉은 관중처럼 이 사건의 행방을 건조한 거리에서 조망했다. 이 사태에 대해 새누리당은 ‘내용’을 문제 삼았고, 당시 민주당은 ‘유출’ 과정의 불법성에 분노했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과연 ‘가능성의 예술’다웠다. 국민들의 납득 여부와 상관없이 최종 결론은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주지하다시피,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부산 유세장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과 상당 부분 유사한 연설을 한다. 김 의원의 발언 중 8개 항목, 744글자가 대화록 원문과 거의 똑같았다는 말도 나왔다. 진보・개혁 쪽에 속하는 국민들은 김무성 의원이 대화록을 입수했다고 보았고, 그 경위에 대해 가열차게 따져 물었다. 결국 그는 검찰로부터 9시간이나 조사를 받았다. 대선 전에 회의록 전문 또는 발췌본을 입수했는지, 입수했다면 어디서, 어떻게 입수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열람한 과정이 불법은 아니었는지, 그 내용 중 일부를 선거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등이 주요 관심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검찰조사 결과는 당신도 아는 대로다. 혹 기억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언급하면, ‘찌라시’에서 본 내용을 말했다는 게 김무성 의원의 주장이었다. (그림 1)

김무성 의원은 당시에도 새누리당 차기 대선주자로 손꼽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찌라시’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이미 표면화되고 있으나 그간 간파하지 못했던 ‘문화변동’의 예각적인 한 양태를 감지했다. 그의 ‘찌라시’ 발언이 사실이든, 변명이든 해당 사건이 주는 계몽의 지점은 동일했다. 일단 정치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공론의 장에서 ‘찌라시’를 각주 삼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미디어 환경-정치-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이 특기할 만한 방식으로 공생해가기 시작했다고 판단되었다. 특히 미디어를 경험하는 대중의 습속이 변하면서 한국 사회의 존재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변화’를 선명히 공유하기 위해 2005년에 있었던 ‘유사 찌라시 사건’을 상기해도 좋을 것이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그 해엔 전혀 다른 층위의 두 ‘X파일’ 사건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첫 번째, ‘X파일’ 사건은 일명 ‘연예인 X파일’ 사건으로 통칭되곤 했다. 사실, 그 파일의 정식 명칭은 '광고 모델 DB 구축을 위한 사외 전문가 Depth Interview 결과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에 대한 가치평가나 내용에 대한 진위여부를 차치하고 그 제목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비즈니스 세계의 후광이 선연하면서도 약간의 먹물냄새도 나는, 상당히 그럴싸한 제목을 가진 문건이 아닌가. 실제로, 그 보고서는 삼성그룹 계열사로 명실상부 한국 최대의 광고기획 회사인 제일기획의 작품이었다. 잠재적 모델(연예인)에 대한 광범위한 DB를 구축하기 위해 동서리서치에 의뢰하여 만든 자료집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X파일’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공론장에서 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규율되기 시작했다. 여러 연예인들이 명예훼손을 운운하기도 했지만, 제도권의 세계가 나서서 이 파일을 불손한 정보로 분리수거했다.

두 번째, ‘X파일’ 파문은 ‘연예인 X파일’ 사건과 같은 해에 일어난 일명 ‘삼성 X파일’ 사건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MBC의 대표적인 탐사전문 기자였던 이상호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내용을 담은 90여 분짜리 테이프를 입수하여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 사이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문민정부가 불법 도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정경유착의 악순환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수사 기관 선정이나 방법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 알 권리’와 ‘삼성’과 밀착된 거대한 권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한쪽에선 언론 보도 경향을 비난하고, 다른 한쪽에선 재판 절차와 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사태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양지에서는 ‘더 이상 말해선 안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것이 당시 사법부의 판단이었고, 우리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합의했다.

 그렇게 보면, 2005년 두 ‘X파일’ 사건의 결론과 2012년 김무성 의원의 ‘찌라시’ 발언은 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을 향한 제도권의 달라진 시선과 태도를 보여준다. 전자는 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이 공론장으로 침투하는 것을 철저히 막고 무시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니까, ‘X파일’이 머물러야 할 곳은 사적이고 은밀한 음지로 규정되었고, ‘미디어 환경-정치’의 영역은 서로 결탁하여 ‘구별 짓기’의 힘을 발휘했다. ‘X파일’의 내용이 궁금해지는 세계와 정보의 위계를 만들고, 그 결과를 관리・규율・통제하는 세계 사이에는 불가침의 장벽이 놓여 있었다. (그림 2)

그런데 후자는 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이 양지의 권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러니까, 거대한 장벽에 막혀 틈입할 수 없었던 세계로 ‘찌라시’가 당당히 입성했다. 알고 싶어도 알아선 안 되는 것으로 규정되었던 세계가 이젠 힘을 얻었다. 팩트와 루머 사이, 이성적 공론 영역과 은밀한 사적 영역 사이, 사회적 양지와 개인의 음지 사이에서 ‘찌라시’가 스스로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를 미디어의 변화, 더 엄밀히 말하면 콘텐츠 접근 방식의 변화가 낳은 작은 혁명이라 생각한다. 그 변화 속엔 공론장을 통제하는 강력한 중심이 사라져간다는 증거가 있다. 단적인 예로, 1인 미디어의 첨단을 보여주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의 상징적 지위를 생각해 보자. 사실, SNS 개념을 넓게 보면, 이미 오래 전 추억의 이름이 된 아이러브스쿨, 세이클럽, 다모임, 프리챌 등을 1세대 SNS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등장한 2세대 SNS으로는 싸이월드, 네이트온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 등은 3세대 SNS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3세대 SNS가 대중의 의식을 재편해가는 지금에 이르면서 제도권의 구심력, 곧 중심의 통제력은 현저히 저하되었다. 강력한 사적 네트워크 세계 속에서 개인들의 관음증적 욕망은 이미 서로 용인하거나 때론 이용해야 할 ‘무엇’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카카오톡’에 대한 ‘사이버 검열’이란 말이 튀어나오자, 1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곧바로 ‘텔레그램’으로 이동해간 것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2005년에 등장한 ‘유사 찌라시 사건들’(‘X파일’ 사건들)은 2세대 SNS 시대의 ‘미디어 환경-정치’ 메커니즘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김무성 의원의 ‘찌라시’ 발언 사건은 3세대 SNS 시대가 열어젖힌 새로운 미디어 헤게모니를 적나라하게 표지한다고 할 수 있다. 놀이성, 오락성, 구술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사회가 본격적인 찌라시의 시대, 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이 권력으로 비약하는 시대를 불러온 것이다. (그림 3)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지도부와 예산결산특별위원들과 오찬을 나누면서 정확히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그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멘트에선, ‘찌라시’를 대하는 김무성 의원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 감지된다. 이 사건과 관련해선 새정치민주연합이 유출 문서의 ‘내용’을 문제 삼고 있고, 새누리당이 유출 과정의 불법성 여부를 지적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발언은 ‘찌라시’가 권력의 위계를 전복시키고 있는 상황에 대한 나이브한 저항처럼 들린다. 재차 강조하면, 오늘날의 개인형 미디어 생산 플랫폼(블로그, 유투브, 팟캐스트 등)과 미디어 소비도구(스마트폰, 태블릿 PC 등)는 ‘미디어 환경-정치-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의 새로운 결속방식을 낳고 있다. 따라서 ‘팩트/루머’, ‘이성적 공론 영역/은밀한 사적 영역’, ‘사회적 양지/개인의 음지’에 벽을 쌓고, 사선 좌우편의 ‘노는 물’이 다르다고 말한다면 벌써 유효하지 않은 말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우리의 관리되지 않는(‘관리될 수 없는’으로 적어도 무방하다) 관음증이 권력을 갖는 찌라시의 시대다. 이 글의 결론은 없다. 부디 우리가 가진 미디어‘들’이 융통하고 있는 콘텐츠들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욕망이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