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일 인천종합문예회관 소공연장에서는 인천에서 보기드문 연주회가 열렸다. 작곡가 김중석(1940~)의 연가곡집 발표회와 바리톤 조병욱(1955~)의 독창회를 겸하는 자리였다. 김중석은 인천시립교향악단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원로 작곡가이고 조병욱은 30회의 독창회를 가진 풍부한 연륜의 성악가였다. 이들 음악가의 공통점은 뛰어난 음악성과 화려한 경력일 터다. 하지만 이 연주회에는 그것 못지않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연주회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연가곡 <겨울나그네Winterreise>(1827) 중 12곡이, 2부에서는 김중석의 연가곡 <사계절의 노래> 12곡이 연주되었다. 모두 24곡을 감상해야하는 관객으로서는, 더욱이 옷깃 스치는 소리마저 연주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고요한 공연장의 분위기 속에서는 조금은 버거운 공연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관객은 두 베테랑의 음악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듯 연신 빠져들었고, 앙코르 2곡이 끝날 때까지 열정적으로 호응했다.

바리톤 조병욱은 서른번째 독창회 레퍼토리로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택했다. 더욱이 고향에서 30회 독창회를 갖는 감회는 남달랐을 터다. 보통 <겨울나그네>하면 풍부한 성량과 공명으로 포근하게 감싸는 정교한 호흡과 딕션(diction)(1)의 저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바리톤 조병욱의 음색은 이러한 일반적인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어딘지 메마른듯하고 날카로운 첫인상이었으나 이내 짙은 호소력과 풍부한 감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곡이 거듭될수록 모든 감각을 집중해 몰입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실연의 상처를 달래며 방황하는 시(詩) 속 화자를 연상시킨다.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Der Leirmann>에서는 이러한 감정이입이 절정에 이른다.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 1794~1827)(2)의 시에는 그러한 암울함과 우울함이 녹아있다. 30회 가까이 독창회를 거듭하며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불렀을 <겨울나그네> 한곡 한곡을 바리톤 조병욱은 음하나, 셈여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조병욱표 독일 가곡의 맛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작곡가 김중석은 12곡의 연가곡을 발표했다. 사계절의 느낌을 살려 선택한 시(詩)와 노(老) 작곡가의 농후한 음악적 테크닉이 알맞게 어우러져 있다. 펜타토닉 음계(pentatonic scale)(3)가 특징적으로 보이는 <진달래꽃(김소월)>을 비롯해 조성의 기능을 교묘하게 허무는 화성의 진행과 복조(複調)(4)가 전반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시(윤동주)>는 극단적인 무조성(無調聲)과 조성(調聲)의 대비를 통해 시와 음악의 조화를 절묘하게 풀어냈다.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가을의 기도(김현승)>는 귀에 익은 선율과 연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편 너무 많은 음악 어법이 12곡에 빼곡하게 들어찬 것은 아닌지, 그것이 오히려 12곡이 갖는 연결고리, 시(詩)와 음악의 타당한 어울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이번 연주회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두 연륜있는 음악가의 만남에 머물지 않는다. 인천에서는 접하기 힘든 성악 독주회라는 점, 창작곡의 초연이라는 점, 또 인천 출신 음악인들이 함께 했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인천에는 대규모 음악회가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사업비가 들어간 음악 페스티벌, 오페라 페스티벌 등. 뭘 해도 크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이러한 대규모 음악행사를 통해 얻는 감동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소규모 실내악 연주회, 독주회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작지만 색다른 감동도 놓쳐서는 안된다. 어쩌면 우리 눈과 귀는 거대한 음악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연주가의 숨소리를, 내 눈앞에서 호흡하며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그 눈빛을 듣고 본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값진 예술경험일 터다. 그 교감을 맛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매우 불행한 것이다. 성악가 조병욱과 작곡가 김중석, 이 두 음악가는 잔잔하게 그 맛을 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화려한 경력의 이 베테랑 음악가들은 조용하게 그것이 바로 음악의 참 맛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번 연주회가 특별한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