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에 있는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얼마 전 ‘일본영화: 표현의 힘’ 이라는 제목 하에 일본영화제가 열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과 극영화 중, 한국의 극장을 통해 일반 ‘공개’된 적이 없는 18편이 상영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필자의 눈을 끌었던 작품은 <아키라>였다. 제3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아키라>는 1988년도 작품으로 일본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무기화하려는 당국의 실험에 의해 탄생한,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아키라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아키라>에서의 초능력 아이들의 훈련장면은 헐리웃 영화 <매트릭스>에서 예언자 오라클의 집에서 미래를 위해 훈련하는 아이들 장면으로 그대로 모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그 밖의 많은 작품에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한국에서 일반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0년대 후반 <태풍소년>이란 제목으로, 그것도 홍콩제작 애니메이션으로 ‘위장’ 수입되어 극장에서 개봉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밝혀져 상영이 금지된 전력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러한 작품이 한국의 극장에 다시 걸렸고, 아무런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일종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 융성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있었다. 강연자는 일본동화(動畵)협회 이사장이자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蟲, 1928~1989) 프로덕션 사장인 마쓰타니 타카유키(松谷孝征)씨였다. 강연을 듣게 되어 기쁘기도 했지만, 이런 분이 공식적인 모임도 아니고 영화 한 편을 본 관객에게 직접 애니메이션에 대해 강연한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강연을 듣는 중 풀 수 있었다. 마쓰타니씨는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는 사회적으로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문화청이나 문부과학성보다 경제산업성과 외무성이 더욱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외화획득과 문화교류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메가박스 영화제가 문화청과 공동개최되어서 너무나 기쁘다는 말씀을 덧붙였다. 이런 발언들을 통해 이 영화제가 왜 한국의 대중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열리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마쓰타니씨는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인 <아톰>의 오프닝 장면을 1963년도판, 1980년판, 2003년도판 등 세 가지로 보여주면서 애니메이션의 변모를 설명해주었으나, 아톰이 오래전부터 한국관객에게 친숙한 캐릭터였다는 것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톰>이외에도 테즈카 오사무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차이콥스키(Pyotr Il'ich Tchaikovskii, 1840~1893)의 교향곡을 애니메이션화한 <숲의 전설(森の傳說)>과 같은 작품을 선택하여 보여준 것은, 영화제의 테마인  ‘표현의 힘’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숲의 전설>은 테즈카 오사무의 마지막 작품으로, 숲을 없애려는 공사를 막아내는 자연의 힘을 대사 없이 음악에 맞게 움직이는 영상으로만 표현하였다.

 이번 상영작 중에서 2001년 타계한 소오마이 신지(相米愼二) 감독의 데뷔작 <꿈꾸는 열다섯(翔んだカップル)>을 극장의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특별한 기회였다. 그밖에도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은 작품들이 많았다. 아쉬운 점은 작품의 선정기준이다. 만화가 원작인 일본영화와 일본애니메이션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왜 이 18편인가라는 것이다. 게다가 <못 말리는 낚시광(釣りバカ日誌) 15>(2004)는 2007년에 만들어진 최신작도 아닌데 왜  선정되었는가.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Always 三丁目の夕日)>은 왜 본편이 아니라 속편인지. <캡틴(キャプテン)>은 왜 애니메이션화된 작품과 극영화, 둘 다를 상영하였는지 설명이 필요했다. 그럴 바에는 다른 작품들도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극영화가 다 있는 경우가 있는데(예를 들어, <철인28호(鐵人28號)>), 그런 작품들을 통해 하나의 만화원작이 애니메이션과 극영화로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가를 비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더라면, 훨씬 ‘표현의 힘’이라는 제목을 살리는 영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