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는 문제적이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이 비밀스러운 세계로 입문하는 것은 도대체 만만치가 않다. 그들의 내면풍경이 어수룩해서가 아니다. 어른들은 그들의 세계가 거칠고 앳되다 느낄 수 있지만, 그들의 고민은 거친 만큼 진중하고 앳된 만큼 불온하다. 즉, 그들에게는 어른과 자신을 구별 짓는 10대만의 세계성(Weltlichkeit)이 있다. 그러므로 10대는, 그것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이 특별하고 문제적인 장르를 그려내기 위해 5명의 소설가와 3명의 동화작가가 한 데 모였다. 어른의 세계를 써오던 소설가와 동심을 노래하는 동화작가들이 중간 조우 지점으로 청소년문학을 택한 것이다. 소설가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이 표제작으로 되어있지만, ‘10대들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로 보건대 큰 주제는 10대의 선택인 모양이다. 10대들의 삶의 줄기들이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만큼 그들의 선택과 고민의 무늬들은 실로 다채롭게 분광한다.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은 고등학생 석진이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겪은 현실과의 부대낌을 그리고 있다. 동갑내기 윤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광주를 짓밟는 총칼의 참혹과 직면한다. 결국 사랑을 통해 현실의 엄혹함에 눈을 뜬 석진은 현실과 맞서기를 선택하면서 비극적으로 성장한다.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에서는 혈액형을 둘러싼 중학생들의 작은 소동을 통해 인물들의 다양하고 깜찍한 내면세계가 경쾌하게 표현된다. 성석제는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에서 구수한 입담으로 청소년기의 작은 선택 하나가 한 인물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대화적인 독백형식 속에서 날렵하게 드러낸다. 오수연의 「너와 함께」에서는 제목과 달리, 부모와의 불화로 내면세계에 침수해버린 ‘나홀로’ 이야기가 구술된다. 자의식을 발견하는 청소년기의 면모가 드러나 눈길을 끈다. 오진원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는 동성애 커플 사이의 자녀라는 다소 도발적인 인물설정을 통해, 주인공이 세상과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그린다. 세상에 맞서려는 그녀의 오기와 슬픔의 농도가 어지간하다. 조은이는 「헤바HEBA」에서 친척 누나를 좋아하게 된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묘사한다. 첫사랑의 실패를 겪으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배워가는 주인공의 성장이 갸륵하다. 최인석의 「쉰아홉 개의 이빨」에서는 새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 앞에서 저항하는 고등학생이 등장한다. 수록 작품들 중 가장 어두운 정서를 내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죽은 친아버지와 자신의 자아를 상상적으로 동일시하면서 세상과의 부조화를 이겨내는 인물의 강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오이디푸스(Oedipus)적 반항담이 펼쳐진다. 표명희는 자의식에 갇혀있는 두 주인공이,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세상을 향해 스스로를 열어젖히는 첫걸음을「널 위해 준비했어」에서 묘사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감내하는 고뇌의 결과 무게는 저 자신이 선택한 삶만큼이나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불안한 내면을 직시하고 세상과 일으키는 불화 속에서 한 움큼씩 성장한다. 이처럼 자기 세계의 파괴를 목도하면서 아프게 생장(生長)하는 10대는 그 자체로 문제적 개인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적 개인들의 세계성은 한시적이기도 하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시간(zeit)’이라는 이름의 잔인한 신은 너무나 빨리 이들을 어른의 세계로 내몰기 때문이다.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는 바로 이러한 한시적 세계성의 강고함과 덧없음 사이의 길항작용 속에서 빛나는 활력을 그려낸다. 그동안 우리에게 청소년문학의 역사가 일천했던 것은 장르에 대한 관심의 부족도 이유이겠지만, 이러한 아슬아슬한 세계의 생명력을 그리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라일락 피면』의 작가들은 바로 이 어려운 균형점 위에 성공적으로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10대라는 문제적 개인들이 펼치는 도발적인 향연들이 계속해서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