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천문화재단이 인천시민의 문화의식을 높이기 위해 <문화의 窓, 총서> 가운데 네 번째 출판물이다. 인천은 문화예술의 인걸, 특히 미술사학의 태두 고유섭, 미술평론의 1세대 이경성, 그리고 서예계의 거봉 유희강을 배출한 문화의 고장이다.
이 책은 <검여선생문집>도. 또한 <검여평전>도, <검여서화집>도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세 가지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어, 검여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살피기에 족한 자료집이다. 문집은 일반적으로 시문, 서한문, 잡저, 행장, 년보 등이 실린다. 이 모두가 인간이 성정을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사에 관한 기록 유산인 것이다.
물론 한국 근현대의 격변기에 한평생을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는데 모든 역량을 바친 검여선생의 일생을 조명하기에는 문헌 자료의 결핍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서거 30주년 기념 전람회와 아울러 개최한 생애와 예술세계를 탐색하고 정리하기 위한 학술회의의 성과물을 중심으로 이 책을 꾸릴 수밖에 없는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의도를 감안하면 그나마 성공을 거둔 사업이라 할 것이다. 다만 화보를 여러 글들의 해당 면지에 배열하고, 작품 중심의 연보식 해설과 평가를 중점으로 편집하였다면 서예가로서의 일생을 생생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여선생은 서예가로서 특이한 면을 지니고 있다. 한국과 중국 전통 서화의 필법을 익히고, 서양화의 화법에서 입체화를 시도하고, 좌우서를 두루 구사하여 이른바 서체의 입체미학을 수립한 것이다. 우리가 가로쓰기의 평면적인 문화 속에서도 서법이 세로쓰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입체미학을 표현하는 전통을 계승하려는 것이다.

한자의 자체는 상형(象形)과 지사(指事)와 같이 무늬를 뜻하는 문(文)과 형성(形聲), 회의(會意)와 같이 불어난 글자와 가차(假借), 전주(轉注)하여 쓰이는 글자를 가리키는 字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문'과 '자', 모두가 고대로부터 세로로 써 온 것이다. 개(槪), 군(羣) 등이 보기 좋은 예이다. 이러한 세로문화는 인간 중심의 문화이다. 인간은 직립보행하는 유일한 동물이어서 바로 입체적 존재인 것이다.
동양 특유의 에술 가운데 하나인 서화예술은 선가닥, 선조(線條)의 미학이다. 선을 세우는 것은 평면적으로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쓴다고 말한다. 또한 그려낸다 하여 사작(寫作)하고, 사의(寫意)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서체의 입체감은 선가닥이 불거지고, 도톰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그것은 선가닥을 쓸어내듯 쓰고, 물기를 손에서 털어내듯 발묵(潑墨)하는 필법의 이른바 역입평출(逆入平出)로 가능해진다. 그러한 필법이 손에 익어야 고졸(古拙)함이 깃든 선획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서법의 선조가 갖추고 있는 속성은 질량감, 역감(力感), 동감(動感), 강유성(剛柔性), 생명성(生命性), 입체성(立體性), 절주성(節奏性), 추상성(抽象性) 등이다.

서법은 자유로운 운동의 선가닥으로 정감을 표현해 내는 예술이다. 그 물질적 수단인 필묵을 통하여 자유롭게 운용하는 형식미의 규율에 따라 인간의 정감을 표현하여 기질적으로 개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기(技)와 예(藝)는 구별된다. 소위 기란 운필(運筆), 간가(間架), 결구(結構) 등 서법의 구상(具象)적 기교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모름지기 추상적 유예(游藝)정신이다.    

소완재주인(蘇阮齋主人)검여의 또 다른 호은 <좌수서도고행기>에서 “병전의 오른손 글씨에서 보여준 강인함과 예리함이 훨씬 부드러워진 대신 고졸하면서도 온화한 선미(線美)가 한결 은미하다 하였고, 혹은 그 전의 준엄, 정한(精悍)한 필력이 천진, 소탈하게 바뀌었다고 하였다. 이는 모두 내가 절망 속에서 발견한 허무의 관조, 그 인내와 무욕의 자세를 높이 산 것이라 생각된다”고 술회하고 있다. 
바로 검여선생은 좌서가 보여주는 분명한 오지제력(五指齊力)으로 우서의 필력을 입증해 준 것이다. 그는 골법(骨法), 필법에 충실했다. 좌수의 고행을 통해 “서도는 가장 구상적인 형태적 제약 속에서 가장 추상적인 정신의 표현을 집약하는 방법”이라 말하듯이, 선획, 결구, 장법 등 모든 방면에서 기운생동하는 입체미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