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 지식 사회의 담론을 주도한 의제가 ‘혁명’이었다면 1990년대의 한국을 들끓게 만든 화두는 명백히 ‘대중문화’였다. 혁명에서 대중문화로. 이 동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다이내믹한 파장을 일렁이며 한국 사회는 세기말을 향해 이행했다. 
왜 대중문화였는가? 여기엔 한국 사회 내부의 동력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패러다임의 이동이 개입한다. 가장 결정적인 전제는 아마도 80년대 중후반 페레스트리이카 이후 소비에트 소련의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블록은 소련이 주도하는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을 무장해제함으로써 독점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던 한국의 광범하게 확장된 진보 진영으로 하여금 일거에 무력함을 맛보게 했다.
혁명은 ‘망명정부의 지폐’가 되었다. 이른바 386 세대의 망연자실 속에 3당 합당이 이루어지며 80년대 내내 비판과 공격에 시달렸던 보수대연합은 강고한 지배 체제를 구축했으며 한때 민주화의 기수였던 김영삼은 1992년 민정당 세력의 엄호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무기력감은 빠른 속도로 전염되었고, 혁명적 담론의 열정은 92년 여름을 달군 강경대 열사 사건 이후 순식간에 식어갔다.
이와 같은 정국에서 대중문화의 시대를 연 내부적 동인은 ’88 서울올림픽과 올림픽 이후 등장한 이른바 X세대, 십대 초중반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88 세대의 등장이다. 

88 올림픽의 성공은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세계 톱10에 올려 놓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한국의 대중문화 시장을 세계 문화산업에 편입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올림픽 이전까지 한국 대중문화 시장은 철저히 일국(一國)적인 폐쇄성을 지니고 있었다. 세계 영화산업과 음반산업의 메이저들은 한국에 직접 진출하지 못하고 이른바 라이선스 방식의 간접 배급에 그치고 있었으며 세계 제2위의 막강한 생산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일본 또한 정치적 이유 때문에 아예 교류 자체가 봉쇄되어 있었다. 출판 또한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한국의 문화산업은 전형적인 영세산업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실제로 ‘중소기업 보호법’의 영역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의 개막이 다가오면서 1986년 미국 헐리우드 영화의 직접 배급을 담당하는 UIP에 의한 직접 배급의 시대가 열렸고, CBS/SONY, EMI, 그라마폰(Gramophone), 필립스 등 세계 음반 메이저들 또한 자회사 설립이나 합작 법인 설립을 통한 직접 배급 시대를 열기에 이르렀다. 이와 동시에 삼성영상사업단의 전신이 되는 삼성전자의 나이세스가 출현하면서 대기업 자본의 문화산업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대중문화계는 그 이전 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산업적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유교적 권위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대중문화는 식민지 시대부터 오락과 여흥의 산물이며 도덕적 규제의 대상이었지 결코 산업적 진흥의 대상이 아니었다. 국가권력과 지식인 담론은 엄숙하고 엄격한 눈으로 이 ‘비천한’ 근대의 서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황은 급격하게 바뀐다. 우리는 6,70년대 미국과 일본의 예에서 혁명적 열정의 좌절 이후에 그 청년 지식인 그룹의 에너지가 자유주의적인 문화 생산의 담당자로 전화하는 것을 이미 지켜본 바 있다. 한국 또한 그랬다. 현실정치투쟁에서 패배한 80년대 세대들의 일부는 자신의 전선을 마악 부상하기 시작한 대중문화로 옮겼다. 이들은 80년대의 크고 작은 극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대중문화야말로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 투쟁이 입체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간파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오랫동안 비난받아온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와 서태지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 문화의 폭발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80년대 초반 학번세대 소장 비평가들이 주축이 된 상상의 편집진들은 1920년대 이후 문화잡지를 주도해 온 문학중심주의를 넘어서 대중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용하는, 그러나 다소 아마츄어리즘의 객기가 선명한 창간호를 1993년에 내놓았다. 창비 독주 체제의 계간지 시장에서 상상 창간호는 상상을 넘어선 열띤 반응을 얻었지만 창간호 편집진은 2호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물러난다.

창간호가 좋은 반응을 얻자 이 잡지의 발행인은 당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던(그러나 동시에 표절 의혹을 강하게 받았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인화를 편집진으로 영입하고자 하였으나 기존 편집진은 편집권 침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출판사측은 베스트셀러 작가를 선택했고 창간호 편집진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잡지를 빼앗긴다. 이들이 상상에서 나와 새로운 멤버들을 추가하여 1994년에 창간한 계간지가 ‘리뷰’이다.
리뷰는 상상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보다 본격적인 대중문화 비평을 겨냥했다. 영화와 대중음악, 출판은 물론 스포츠와 패션까지 정기적인 의제로 삼고자 했다. 리뷰는 90년대 중반 한국의 대중문화 담론의 최전선이 되었지만 이 들 또한 IMF 사태가 몰고온 출판계의 극심한 불황의 파도를 넘기에는 아직 힘이 부쳤다. 리뷰는 출판사를 세 번이나 바꾸어가며 총 17호까지 분투했지만 이 잡지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독자들을 만나는 데 실패하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리뷰는 한국이 문화산업 시대로 진입하는 과도기를 장식하는 대중문화 담론의 저수지였다. 장원재 같은 축구 평론가가 이를 통해 데뷔하는가 하면 김영하 같은 이가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리뷰의 필진은 마악 확대되기 시작하던 일간지와 시사 주간지의 문화면을 광범하게 아우르면서 짧은 시간 안에 대중문화 담론의 시대를 여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또한 동시에 이들의 한계는 분명했다. 빠른 시간 안에 천민적인 대자본의 틀을 갖춘 한국의 문화산업은 더 이상 비평담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초기에 이들 프리랜서 비평가들에게 지면을 맡겼던 언론사들도 비용을 핑계로 내고로 전환함으로써 대중문화 담론은 IMF 시즌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의 유저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의 대중문화 비평 잡지의 꿈은 일막일장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