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는 오묘해서 역경과 고난이 행운과 복으로 변하기도 한다. 1975년 3월, 동아일보사에서 10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강제해직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정년까지 한 곳에서 일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해직된 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한 신문, 두 월간지의 창간에 참여해 일간, 주간, 월간지뿐만 아니라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활자매체의 주요 영역을 두루 거치는 행운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월간 <마당>과 <한겨레신문>으로 말미암은 행운은 각기 우리나라의 잡지사와 신문사에 남을 매체의 창간에 미력이나마 기여했다는 것이고, 복은 두 매체의 창간호에 매우 중요한 ‘사진 설명’을 쓴 것이다. <한겨레신문> 창간호의 1면 중앙에는 그 당시로는 ‘과감한’ 백두산 사진이 실렸으며, 문화부장이었던 나는 편집부 심채진 선배의 ‘지시’로 사진 설명을 쓰게 되었다.

한편 <마당> 창간호(1981. 9)의 표지사진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손이다. 마침 대하소설 『토지』 제 4부를 연재하기로 한 터라, 글쓰기, 사진 찍기, 일하기 등 온갖 작업의 도구인 손의 노고를 기려 표지로 쓰기로 한 것이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손의 값어치를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공작하는 인간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손은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에 따라 인류의 역사에 가장 큰 몫을 담당해 왔으면서도 언제나 가장 쉽게 외면당해 왔다. 창간호의 표지로 ‘손’을 선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표지사진 설명에 이어 ‘독자에게 보낸 편지’로 형식적이고 구태의연한 창간사를 대신하기로 결정하고 첫 편지「<마당>은 우리 시대 문화의 창조적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를 대표 집필한 것도 쏠쏠한 기쁨이다. 이 편지에서도 언급했지만 3호부터 목차에 실린 슬로건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아는 잡지’는 조갑제 취재부장의 강한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토지』 연재는 <중앙일보> 해직기자인 윤호미 선배와 박 선생의 친분에 힘입은 것이다. 윤 선배는 같은 시기에 해직된 허술 주간이 월간 <중앙> 기자로 일하던 때의 동료였다. 그 인연으로 줄곧 일종의 객원 편집자문 역할을 했으며, 창간호부터 르포 「해방세대의 여성들」을 연재했다.

이밖에 창간 준비 작업에 직접 관여한 사람으로 계몽사 창업주의 장남 김홍식 교수가 있고, 간접 관여한 사람으로 당시 경향신문사의 월간 <정경문화> 부장으로 일했으며 나중에 <민주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김영삼 정부에서 통치사료비서관을 지낸 윤무한씨가 있다.
‘전집 출판의 귀재’로 소문난 박정수 발행인과 김홍식 교수(당시 계몽사에서 설립한 온양민속박물관 초대 관장)의 창간 관여에서 알 수 있듯 <마당> 창간은 아동도서의 명문 계몽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은 애초에 계몽사에서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이 계획이 어긋나 박정수 사장이 맡게 된 것이다. 나 역시 당시 계몽사에 관계하고 있었으며 뒤에 계몽사 경영을 맡았던 동아투위의 동명이인 이종욱 선배의 천거로 입사한 것이다.

우리가 지향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보는 잡지’를 위해 <중앙일보> 출신으로 당시 <동아일보> 사진부에서 일하던 박상원 기자를 사진부 데스크로 스카우트했다. 물론 <중앙일보> 시절부터 특종을 자주 한 그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던 허술 주간의 설득에 의한 것이다. 역시 그의 <마당> 사진은 늠름하면서도 단순명료했다. 그가 <마당> 사진의 수준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 신출내기였던 정정현현 조선일보사 영상미디어 기자, 윤평구현 <서울경제> 사진부장 기자를 혹독하게 단련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진팀과 함께 지면에 활기와 생동감, 섬세함을 불어넣어 ‘아트디렉션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월간지’라는 일반적인 평가의 토대를 쌓은 핵심 인물은 아트디렉터 안상수현 홍익대 교수였다. 그때로서는 꽤 앞선, 그래서 어느 경우에는 아슬아슬하기까지 했던 그의 실험적 표지, 목차, 본문편집은 우리나라 잡지에 처음으로 아트디렉션 개념을 도입해 기틀을 마련한 월간 <뿌리깊은 나무>의 수준에서 일보 진전했다. 유난히 글꼴에 집착한 그는 집념과 사명감으로 ‘마당체’를 개발했고, 마침내 1985년에는 이른바 ‘안상수체’를 선보였다. 강석호씨는 창간호부터, 조의환씨는 1982년 5월호부터 안상수팀에 편입되었는데, 특히 조의환현 <조선일보> 디자인연구소장은 1999년 <조선일보> 가로짜기와 전용서체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의 아트디렉터를 지내는 등 아트디렉션 개념을 일간지까지 확대하는 데 이바지했다.
‘보는 잡지’답게 <마당>은 대담한 컬러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전면에 썼으며, 제한된 지면이었지만 양면에 펼친 사진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트레일러 운전기사의 선글라스창간호 「이웃사람」1의 목차 사진처럼 극히 미세한 부분으로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작업도 병행했다. 1982년 5월호에는 「생활 속의 한국탐험―자동차문화」의 관련 사진인 ‘자동차 헤드라이트 한쪽’을 표지로 올렸다.

최고의 잡지를 위해 우리는 ‘최우수 필자에 최고 고료’를 고수했다. 출장을 가야 하는 외부 필자에게는 따로 취재비를 지불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소설가 박태순씨가 연재한 「국토기행」과 강홍빈씨현 서울시립대 교수의 고정물 「한국의 스카이라인」이었다. MIT에서 ‘예술, 건축과 환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의 작업은 “문학적ㆍ인문적ㆍ 환경적 시각을 도시관리에 접목시키는 데에 진력해왔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물론 주명덕씨의 사진은 고급스런 그의 글을 한층 돋보이게 뒷받침했다.

허술 주간, 조갑제 취재부장<국제신문> 해직기자 아래의 유일한 취재부 기자 김도연서울대 재학중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이종욱 기획부장 밑의 유일한 기획부 기자 조학송<영남일보> 해직기자으로 구성된 편집실 창간 멤버 전원의 경력으로 말미암아 <마당> 필자에는 임재경, 윤호미, 오효진, 국흥주, 이태호 등 해직기자와 운동권 출신, 그리고 해직교수와 자유실천문인협회 소속 문인들이 자주 등장했다. 우리가 강조한 글쓰기의 원칙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어라’라는 오래된 금언이었다.
창간 1주년을 앞두고 경영과 관련된 문제로 조갑제 부장을 제외한 편집실 창간 멤버 전원과 박상원 사진부장이 사퇴하고, <마당>은 1년 가까이 조갑제 편집장 체제로 운영되었다. ‘도서출판 마당’으로 발행처 판권이 바뀌었던 월간 <마당>은 1985년 2월 계몽사에 인수되었고, 표지도 이해 8월호부터 노란색을 버리고 파란색으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월간 <마당>의 창간 이념도 서서히 퇴색한 듯해 안타깝다. 결국 <마당>은 1986년 10월 폐간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월간 <마당>의 퇴장과 더불어 이 땅에서 ‘보는 잡지’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종합교양지에서 월간 <조선>이 <신동아>를 압도하면서 일본의 <중앙공론>, <문예춘추>를 모방한 편집체제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월간 <조선>의 독주를 주도한 사람이 <마당> 창간 멤버인 허술, 조갑제씨다. 월간 <중앙>은 판형, 제호 등을 바꾸면서 몸부림쳤지만 끝내 쓴맛을 보았다.
<마당>의 가장 큰 특징은 기획 면에서도 구태의연한 기존의 잡지 형식을 크게 탈피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구색 갖추기일 뿐 잘 읽히지 않는 특집이 없다. 그 대신 주력한 것이 생생한 사람ㆍ이웃 이야기와 그들의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논문 형식의 글도 실었지만, 가급적 고급 에세이가 되도록 유도했다.
아무래도 <마당>이 한국잡지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아트디렉션 시스템을 급속히 촉진, 정착시킨 것이다. 이와 함께 다채로운 레이아웃과 글꼴의 개발 역시 안상수씨를 비롯한 디자인팀의 공로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문학평론가로 꼼꼼한 글을 써온 김도연씨가 1993년에, 일본텔레비전(NTV) 한국지사 부장으로 일한 박상원씨가 2005년에 느닷없이 이승을 떠난 것이다. 관철동 편집실에서 함께 일하던 모습, 근처 술집에서 소주 한 잔 하던 일이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