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 오늘 심포지엄에서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보다는 실사구시적인, 그리고 현장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를 때로는 직설적인 리포트 형식으로, 르뽀 형식으로, 또 때로는 절묘한 비유를 통한 허무주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들을 놓고 주제별, 지역별, 혹은 오늘 제기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태웅 : 이기원씨의 발표를 듣고 일본 영화 <라쇼몽Rashomon>, <7인의 사무라이>, <하얀거탑>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말한 세 작품은 모두 유명한 각본가인 하시모토 시노부(橋本忍)가 각색을 맡았습니다. 하시모토 시노부는 “난도질을 해서 가져오는 것이 진짜 각색이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발표를 들어보니 <하얀거탑>도 그런 피투성이가 되는 작업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오늘 발표자들의 공통된 지적은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드라마든, 한국은 원작의 시장 자체가 일본에 비해 매우 협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주간 만화잡지 하나가 매주 2백만 부 이상 팔리고 백만 부 이상 팔리는 소설이 속출하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상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일본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아 왔고 사실 표절도 많이 했었죠.
언론에서는 한국 문화가 마치 아시아 문화를 정복한 승리의 역사처럼 한류를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한류를 제국주의화하는 모습은 참 안타깝습니다. 아시아인에게 문화선택지 하나가 더 늘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류라는 용어 자체가 사실은 없어져야겠지만, 국경을 뛰어넘어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상효 : 저는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최근 많은 대학에 문화콘텐츠학과가 개설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인문적ㆍ지적 개념들을 산업화하는 것이 문화콘텐츠학이라고 할 수 있죠. 따라서 한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문화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지요. 거칠게는 배용준이 벌어들인 수익을 자동차 몇 대 수출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런 견해는 일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다소 불필요한 문화적 쇼비니즘, 문화적 애국주의, 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류에 대해서는 사회ㆍ문화적 분석이 있어야 합니다. 한류가 문화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의는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김성수씨가 이야기하신 것처럼 한류는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를 전파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안는, 보다 활발하고 보다 목적의식적인 문화교류의 형태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김영하씨가 ‘류’를 말씀하셨는데, 문화 역시 경제적 수준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경제적 수준이 그 사회의 사회적 수준, 자유주의의 척도 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에 있는 삶에 대한 선망들이 문화를 바라보는 데 많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죠. 어릴 때 미국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적인 삶의 하드웨어와 미국사람들의 개인주의를 선망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늘 윽박지르는 우리 아버지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자식이 한 말에 상처받는 미국 아버지들을 부러워하면서 미국드라마를 본 것 같아요. 일종의 사회학적 판타지 같은 역할을 했었다고 봅니다. 거꾸로 노동력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국경이라는 경계로 포획된 한 나라의 문화력과 상대의 노동력은 서로 역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죠. 베트남에 한국드라마가 흘러가는 반면, 베트남의 노동력은 역으로 한국으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는 왜 한류가 없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궁극적으로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로 전파할 에너지가 없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이기원씨가 <하얀거탑>의 경험을 생생하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 자리를 통해 그런 경험을 개념화하고 계량화하여, 앞을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영하씨의 ‘문화적 돌연변이’ 개념은 문화창작 시장의 활성화, 총체적 에너지의 창출과 같은 측면에서 해석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세종 :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요,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다양하더군요. 문화민족주의 관점, 산업론적 관점, 신자유주의적 관점 등 여러 관점이 많습니다. 저도 한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사람 중 하나인데, 어떻게 긍정적인 한류를 만들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었지, 포스트한류시대, 한류 이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습니다.
질문을 드리자면, 이기원씨의 시청자들에 대한 시각과 한국드라마의 전형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 주변의 교수들도 생각 외로 드라마를 많이 보고, 또 열심히 봅니다. 재미있어서도 보고, 학생들 때문에도 보고,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도 봅니다. 돈 없고, 할 일 없고, 애인 없는 사람만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웃음). 교수들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방송 관계자들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청자에 대한 시각변화도 필요하지만 드라마 장르도 더 세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멜로, 가족극, 사극과 같은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그 내부도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사극은 조선시대만 다뤄왔습니다. 최근 들어 <주몽>, <태왕사신기> 등이 고대를 다루고는 있지만, 왜 이승만은 사극으로 만들지 못하는지. 중국의 경우는 워낙 회고(回顧)문학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인물 하나만 골라도 작품화가 가능합니다. 모두 대박을 터트리려 하다 보니 오히려 수많은 문화자원들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경학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 발굴에서의 인문학적 중요성에 적극 동감합니다. <뮬란>의 원작은 2,000여 년 동안 중국 설화로 내려 온 오언시(五言詩) <목란사(木蘭史)>입니다. 단 한 페이지의 오언시를 가지고 그렇게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들이 중국에만 차고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문학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헐리우드가 중국에서 뮬란을 데려온 것처럼 다른 문학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갇힌 구조를 타파해 나가는 속에서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김성수씨는 한류의 거품이 빠진 자리에서 오는 반성과 함께 소통의 필요성을 얘기해 주셨는데요, 그 소통에 관해 상대 나라에 대한 문화심리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인기를 끈 것은 어쩌면 1980년대까지 이어져 온 혁명의 피로감, 이데올로기의 상처, 개혁개방의 어지러움, 철저한 봉건적 가부장문화 질서 속에서, 가족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런 분석들을 통해 이야기거리를 전략적으로 발굴해 내야 하겠지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갇혀 있던 시각도 중앙아시아를 포함해 그 공간개념을 더 넓혀야 합니다. 김영하씨는 한류를 운명론적으로 ‘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일류가 다시 뜨는 이유는 엄청난 인프라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절대적으로 ‘운’때문인 것은 아니죠. 지금처럼 한류의 썰물이 빠져나갈 때 인프라를 탄탄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일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는 없어요. 국가나 지원기관, 대기업 등의 지원과 연구ㆍ개발이 필요합니다.
 
김홍준 : 네, 말씀하신 대로 현장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제언할 만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럼 이기원씨부터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이기원 : 우선 아까 제가 드라마에는 사극, 주부생활, 노처녀 일기장만 있다고 한 것은, 드라마 작가들이 갖고 있는 냉소적 패배주의를 농담처럼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아주 부인하기도 힘든 현실이죠. 드라마는 항상 시청률 30%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학교 2학년 정도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도 <사육신>, <얼렁뚱땅 흥신소>처럼 시청률이 1~4% 정도 나오는 드라마도 많습니다. 화면조정시간의 시청률이 4%니까 이런 드라마는 아무도 안 본다고 할 수 있겠죠(웃음). 고급예술은 보는 사람에 따라 나름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대중예술은 백 명이 보면 그 백 명이 똑같은 정서적 감정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대박 드라마가 나오는 것이죠. 일본은 보통 시청률 10% 정도를 목표로 드라마를 만듭니다. 그러면 소재가 많이 다양해질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의 방송국 시스템으로는 이런 시도를 하기 힘듭니다. 드라마 판도를 바꾸겠다던 작가들도 막상 결정권자가 되면, 진급 등의 이유로 결정을 못 내리게 됩니다. 저는 이 점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세종씨께서 <뮬란>을 말씀하셨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모두 신화적인 구조에서 이야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디즈니의 크리스토퍼 보글러(Christoper Vogler)가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이라는 신화학자의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는 책을 보고 신화적 구조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죠. 대표적인 것이 영웅스토리인데, 이에 입각해 만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모두 성공했습니다. 캠벨의 핵심은 서양 신화와 동양 신화의 구조가 다 비슷하며, 결국 신화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개량되어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는 그 원형이 있습니다. 그 원형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있어야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죠. 이야기의 원형을 드라마로 구체화시키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취재입니다. 보통 우리 드라마 작가들이 가장 게을리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네이버에서 취재를 하거나 다른 드라마를 보면서 취재를 하죠. 일주일에 보통 원고지 500매씩 써나가야 하는 작가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500매, 타이프만 쳐도 어깨가 성치 않습니다. 그럴 때 다른 드라마에 쓰인 식상한 장면들을 베끼고 싶은 유혹이 생기죠. 주인공이 확 뛰쳐나가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대체 나다운 게 뭔데!”같은 대사 말이죠(웃음).

미국드라마도 사실 똑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1980년대 말, 사랑이야기만 만들다가 배우도 작가도 감독도 다 떠났습니다. 그 불황을 타계했던 드라마가 바로 <ER>과 <NYPD(New York Police Department)>입니다. 의사가 봐도 의사이야기 같고 경찰이 봐도 진짜 경찰이야기 같은 현실감 있는 드라마가 장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화두는 리얼리티입니다. 이런 흐름에 따르려면 취재가 더욱 필요하죠. 우리 드라마에는 없는 ‘논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논리력은 작가에게 기본기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릭 칸토나(Eric Cantona)나 웨인 루니(Wayne Mark Rooney)는 기본기 연습을 죽도록 합니다. 그러다보면 공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 와도 발에 딱 붙게 되요. 기본기가 탄탄할 때 이런 동물적인 플레이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드라마 작가들에겐 이런 기본기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김홍준 : 10년 전만 하더라도 ‘문화콘텐츠’라는 용어는 없었습니다. 그 때는 ‘영상산업’만 있었지요. 국민의 정부 이후 문화콘텐츠, 문화산업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유행어 내지 급조된 용어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빠르고 다이나믹하게 변하고 있는 문화산업 시장이나 수요를 볼 때 오히려 십 년 혹은 이십 년 늦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유세종씨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기원씨는 취재와 기본기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요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과 장르간 융합의 문제입니다. 단순히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겠죠. 영화는 영화대로 뮤지컬은 뮤지컬대로 문학은 문학대로 따로 나가서는 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없습니다. 산업적으로 보면 결국 장르간 융합이 중요하단 거죠.

김영하 :  저는 ‘문화가 어떻게 생산되느냐’에 대해 언론이나 학계에서 잘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로는 쉽게 ‘이런 것도 좀 만들어 보고, 저런 것도 좀 해보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이런 것 저런 것에 창작자들의 인생 2~3년이 날아갑니다. 그래서 한 작품을 시작할 때는 여기에 인생의 몇 분의 일을 쓸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죠.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들은 회사의 운명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드라마가 방송될 수 있는지, 시청률이 화면조정시간보다 높을 수 있는지, 내 운명과 생계는 어떻게 될지,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하다 결국에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전한 선택이란 이전에 인기를 얻었던 양식을 따라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드라마의 성공, 한류의 성공 원인에 대해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분석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향후 예측이 없는 사후 분석’에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3년 후 어떤 작품이 유행할지 누가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제가 가장 설득력 있게 본 분석은 바라바시(Albert-Laszlo Barabsi)가 『링크-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에서 밝힌 미국 공항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뉴욕 공항처럼 수천 개의 노드(node)노선연결의 접속점를 가진 공항과 아이오와 공항처럼 노드가 하나밖에 없는 공항이 있는데, 왜 노드가 이렇게 한 공항으로 집중되는지를 연구한 것이죠. 중간 정도 양의 노드를 가진 공항이 없이 아주 많은 공항과 아주 적은 공항만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그러냐. 공항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시장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영화는 관객 수 천만을 넘기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는 아주 바닥을 기어요. 드라마의 경우도 안 되는 드라마 10개, 잘 되는 드라마 10개, 중간 정도 되는 드라마 80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잘 되는 한 편이 모두 독식합니다. 바라바시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역함수를 그린다고 합니다. 표본이 많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양극화가 아니라 자연히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콘텐츠, 즉 잘나가는 콘텐츠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죠. 김훈씨의 소설, 공지영씨의 소설이 천만 부씩 팔리고,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1~2만 부, 2~3천 부에 포진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반적으로 시장이 이렇게 냉혹한 질서를 보인다는 것이죠. 사후 분석은 가능하지만, 예측이 안 되는 문화시장에서 이런 냉혹함은 문화생산자들을 더욱 답답하게 합니다.

김홍준 : 김영하씨의 논리는 비유적으로 받아들여야겠지만, 한국 영화시장을 보면 그런 일극 독식체제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관객 천 만 이상의 한국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전체 시장의 수익률은 계속 악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영화계 내에서도 내부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블록버스터를 키우자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는데요, 감독이자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신 김성수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성수 :  김영하씨의 이야기는 ‘너무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사실 한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분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류가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승엽이 정말 홈런왕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삼진만 당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오히려 한류를 지속시키는 방법은 한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다른 생각 안 하고 하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오히려 한류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아시아 사람들이 다 한국 영화만 보고, 한국 드라마만 보고, 한국에만 관광을 오게 된다면, 그것이 정말 우리가 바라던 상황일까요? 한국 영화와 드라마 방영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 상황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조정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경학 :  유세종씨가 말씀하신 문화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도 ‘쪽박 아니면 대박’ 밖에 없는 현 상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80대 20의 법칙, 블록버스터의 논리이죠. 최근에 백만 장 이상 팔린 음반 얘기를 들어본 적 있으세요? 예전엔 그런 음반이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런 음반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롱테일(long tail) 경제학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주장, 디지털 시대의 등장으로 수요곡선의 꼬리부분에서 수익을 창출해내는 현상으로 설명해 볼 수 있겠는데요. 디지털시대에는 선택의 장애가 되는 요소들, 예를 들어 상품의 진열 장소, 물류비용, 히트 상품 띄우기 등이 없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소량이더라도 다양한 상품들이 지속적으로 판매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문화다양성이 커질 수 있겠죠. 공중파TV, 영화뿐만 아니라 케이블TV, IPTV 등으로 게이트웨이가 다양해지면 지금보다 다양한 생산과 선택이 가능하리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렇게 채널이 늘어나고 미디어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생산비용을 줄일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비용의 제약  없이 더 다양한 콘텐츠들을 생산해 낼 수 있겠지요.

강태웅 :  한류가 왜 성공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느 면에서 성공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문화가 아시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지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다림(심은하 분)은 정원(한석규 분)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른 채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끝납니다. 이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죠. 그런데 일본판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정원이 죽기 전에 편지를 남기고 다림은 ‘아, 이렇게 나쁜 병에 걸려서 죽었구나. 그리고 나를 사랑했구나’ 라고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끝납니다.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의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그 모호함이었겠지요. 이런 반응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상업적 이익을 따지기 전에 우리 문화가 어떻게 전달되고 또 어떻게 번안되어 가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아시아문화교류를 위해서라면 양방향적인 분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김홍준 :  여담이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국판과 일본판의 차이는, 한국판에서는 주인공이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일본에서는 쓰고 탔다는 것이 아닐까요? 역시 일본 사람답다는 생각을 했었지요(웃음). 

육상효 : 제가 볼 때는 오늘 논의 중 실제 창작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작업을 한류라는 사회학적 구분, 경제적 개념으로 묶어버린 데 대한 거부감 같은 것들이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예술가들의 창작행위와 그것에 투자하고 이익을 내야 하는 산업의 요구가 늘 부딪치죠. 독창성을 원하는 예술과 경제적 이윤 및 안정성을 원하는 산업간의 대립을 통해 문화산업이 발전하고, 한류에도 여전히 그런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포스트한류시대라면, 그런 접점 속에서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홍준 : 포스트한류라는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첨단의 첨예한 지점에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이제 독립된 시장이 아니고,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 등도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죠.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오히려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례를 참조하죠. 예를 들어 휴대폰이나 IT 분야에서는 한국이 테스트마켓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콘텐츠산업도 비슷합니다. 한국영화 시장의 불황요인 중 하나가 불법 다운로드 문제인데, 인터넷 망이 우리보다 못한 미국이나 프랑스에는 아직 이런 문제가 없거든요. 이제 중심과 변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나 다 중심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되었던 <겨울연가>, <대장금> 후에 올 한류를 포스트한류라고 한다면, 김성수씨가 그 바탕을 만드는 가장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신 것 같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바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네요.     

김성수 : 사실 예전에는 서양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선망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중국이 아주 좋습니다. 제가 마치 한류의 첨병이 되어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되는데, 사실은 반대입니다. 중국이 좋아서, 아시아가 좋아서 사업을 하다 보니 한류라는 용어로 설명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아시아가 더 큰 문화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이 중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아시아의 정신적 자산의 상당부분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데요,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것 내 것이 아니라 제 안에도 이제 도려낼 수 없는 중국적인 요소, 일본적인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데는 7억 5천만 원 정도가 듭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보통 제작비가 25억에서 30억 정도 되요. 그런 7억 5천만 원짜리 영화를 하면서 한국자본과 중국자본을 섞으니까 또 반으로 나눠지잖아요. 중국시장이 아직 건실하진 않지만 리스크가 적은데 이제 한국식으로만 만들지 말고 중국식으로 한 번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된 것이죠. 대신 한국식 연출방식의 양념을 좀 쳐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입니다. 우리 양념을 친 음식이 만약에 맛이 없다면 그 사람들이 안 좋아할 것이고, 우리 양념이 들어간 것이 맛있다면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조미료 아지모노토(味の元)가 ‘미원’으로 우리 식생활에 파고들었듯이 중국사람들도 우리식 양념이 들어간 영화를 중국영화로 알고 즐기겠지요.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스며드는 문화교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홍준 : 중국이 좋아서 중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김성수씨의 말이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한류도 우리 입장에서 봐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이 바깥에서 보면 간단한 것일 수 있어요. 한국이 좋아서 한국드라마를 좋아하거나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현상이라고 한류를 본다면, 의외로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심포지엄은 ‘포스트한류’라는 새로운 고민, 그러나 현시점에서 꼭 필요한 논의를 솔직하고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한류를 되짚어보며 앞으로의 방향과 과제들을 모색하는 이런 자리를 통해, 앞으로 아시아간 건강한 문화교류에 대한 논의의 발전적인 전개를 기대하며 오늘 심포지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