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에 제가 기여한 것이 있다면,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대놓고 멜로’인 영화를 각색했던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일본드라마가 원작인 작품인데, 이 영화가 다시 일본에 수출되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국가 간에 이렇게 문화콘텐츠가 복제와 복제를 거듭하는 현장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죠. 소설가인 제가 이 경험 말고는 한류와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어 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한국문학은 한류가 아니라 오히려 ‘몰려오는 일류(日流)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더 큰 문제입니다. 사실 문학계에서는 일본문학을 걱정하기 이전에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작가들을 다 상대해야 합니다. 파울로 꼬엘료(Paulo Coelho)도 오고,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도 오고,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도 오고. 그러니까 우리 문학은 이미 FTA 상황인 것이죠. 스크린 쿼터 같은 무슨 쿼터제가 있는 것도 아니죠. 게다가 외국 문학을 들여오는 일은 한국 작가를 섭외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그냥 사오면 되지 않습니까. 술을 사줄 필요도 없고, 이러쿵저러쿵 섭외해야 할 일도 없이 그냥 시장에서 거래됩니다. 이미 한국문학은 1886년 베른협약(Berne Convention)문학 및 미술 저작물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 발효된 이래로 전면적 시장개방 상태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습니다.

‘한류’, 이 ‘류(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 보면 좀 부당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요. 일단 ‘류’라는 것은 물의 흐름이죠. 대체로 ‘넘친다’, ‘흐른다’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중국 서사적 전통들이 몰려온다’, ‘일본 문학이 범람한다, 수위를 넘었다’, ‘한국드라마가 일본 열도를 평정했다’는 식의 전투적인 표현들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류’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그릇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류를 생각하면 짬짜면용 그릇처럼 세 개로 나누어진 어떤 그릇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 물이 많이 차면 그것이 한국으로 넘어오고, 한국 내에서 감당하지 못하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식의 상상이죠. 이 메타포는 상당히 간단하고 익숙한 것이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메타포가 과연 문화에 대해서도 적합한 비유인가라는 점에 대해 저는 약간의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류를 논할 때 ‘류’대신 쓸 수 있는 다른 메타포로 찾아 본 것이 ‘문화적 돌연변이 모델’입니다. 문화적 돌연변이라는 것은 국경, 국가, 문화적 전통 등과 크게 관계없이 어떤 흐름이 만나는 곳에서 출현하는데요. 자기 문화전통에 대한 애착이 희미해지는 반면 외래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가운데 소비성향은 높고, 이런 지역에서 홀연 출현하는 일종의 돌연변이입니다. 물론 많은 돌연변이들이 이런 곳에서 생겨납니다만 이 중에서 몇몇의 상당히 강력한 돌연변이들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 돌연변이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지저분한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청학동 같은 곳에서는 잘 생기지 않습니다. 홍콩이라든지 부산이라든지, 인천도 적합한 환경인 것 같아요.(웃음)

‘마카로니 웨스턴’미국 서부극을 모방해 만든 이탈리아 총잡이 영화같은 것도 그런 문화적인 돌연변이의 일종이 아닌가 싶은데요. 뭔가 이상한 것들이 만나서 만들어졌죠. 이런 영화사상 기이한 별종이 국경을 넘어 마치 물이 흘러넘치듯이 중국으로 가고, 타이완으로 가고, 난데없이 한국으로도 와서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죠. 멀리는 저 미국의 비디오방 점원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Jerome Tarantino) 같은 사람도 홍콩영화에 매료돼서 몇 십 년 후에 <킬 빌> 같은 이상한 영화를 만들게 되죠. 일본영화 같기도 하고 중국영화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미국영화 같기도 한 그런 영화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문화적 돌연변이는 단지 국경만 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비행기와 인터넷, 비디오대여점, 아메리칸 필름 마켓, 이런 것들을 통해서 좌충우돌 어딘가로 튀어갑니다.

한국드라마의 경우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드라마의 일본드라마 표절이 심각하다’, ‘한국드라마 작가들은 부산에 가서 작업을 한다, 아니다, 대마도다’ 하는 식의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일본드라마와 한국드라마는 많이 다릅니다. 일본드라마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한국드라마에서는 심하게 가깝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도 하고, 5분 간격으로 소리를 지르고, 연애인지 싸우는지 알 수 없는 그런 격렬한 관계들이 많습니다. 한국드라마는 일본드라마를 참고했지만, 기존에 남아있던 한국드라마의 전통, 우리가 봤던 미국드라마들의 성격이 섞이면서 독특한 돌연변이가 출연했습니다. 그것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한국드라마죠. 사실 내용과 배경은 아시아 각국에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인데, 정상적인 드라마 툴을 배운 나라에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과감한 설정들을 썼죠. 단순히 노스탤지어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그 용감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어떤 드라마 설정이 있단 말이죠. <하늘이시여>를 떠올려 보세요. 사랑에 빠진 오누이, 알고 보면 친아버지인 의붓아버지, 심지어 친딸을 며느리로 맞으려는 어머니 등등 파격적인 설정이 가득합니다. 농담입니다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중단위원회’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웃음) 사실 모두가 한 번쯤 다뤄보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용감함이 있죠. 

영화에서는 <왕의 남자>를 돌연변이의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사실은 조선 왕실에서는 벌어지기 힘든 세익스피어적 드라마거든요. <왕의 남자>를 잘 보면 광대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든가 궁정에서 벌어지는 극중 극과 같은 전통연희의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세익스피어적 드라마에 한국 전통 연희가 날것 그대로 들어가 있죠. 야오이 문화남성 사이의 동성애물을 창작하고 즐기는 문화. 일본어 ‘야마나시(やまなし)’, ‘오치나시(おちなし)’, ‘이미나시(いみなし)’라는 [주제 없고], [소재 없고], [의미 없다]는 세 단어의 머리글자를 딴 약어도 들어가 있죠. 이런 것들이 문화적 돌연변이의 한 유형입니다.
그렇다면, 아시아 문학 판에서 이런 돌연변이는 무엇이냐, 바로 일본의 대중문학인데요, 그 중심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습니다. 사실 하루키가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하루키는 중요할 역할을 했어요. 하루키는 항구도시 코오베에서 태어났습니다. 항구도시에서 태어났다는 건 중요하죠. 제가 알기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일본 전통 문학의 대단한 찬미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늘 일본 전통문학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는데 아들은 이것을 아주 싫어했다고 하죠. 항구도시 코오베에는 외국 선원들이 가지고 오는 펄프 픽션(pulp fiction)1920년부터 1955년 사이, 값싼 목재펄프 종이로 간행되던 통속소설들을 파는 헌책방들이 번성했습니다. 여기서 아들은 읽으라는 일본 전통문학은 읽지 않고 미국의 추리소설, 대중소설들을 읽기 시작했죠.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열광적인 미국문학 숭배잡니다,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라는 작가를 상당히 좋아했죠. 레이먼드 카버가 일본에 한번 가겠다고 하자 바로 일본에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침대는 작지 않습니까? 레이먼드 카버는 키가 190㎠ 정도 되거든요. 그래서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만을 위한 침대를 직접 주문했다고 하더군요. 결국 1988년에 레이먼드 카버는 죽고 무라카미 하루키에겐 커다란 침대만 남았죠. 약간 스토커 기질도 보였습니다. 미국 메인(Maine) 주(州)에 있는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의 집까지 차를 몰고 가서 그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대요. ‘아, 저기 스티븐 킹이 사는구나’하고 말이죠. 그런데 하루키의 소설에는 일본 사소설(私小說)의 강력한 전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기묘한 점이에요. 명백히 미국 야구를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고, 기회만 있으면 미국에 가서 사는 하루키가 쓰고 있는 소설이 철저하게 1인칭인 사소설이라는 것이죠. 이 이상한 혼종 문학이 전세계 서점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잘 써서’가 아니라 ‘이상하게 써서’ 하루키 문학은 빨리 퍼지고 쉽게 번식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한국드라마가 ‘아시아를 평정’한 것도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이상하게 만들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잘 만들어서’ 한류를 지속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소설의 세계화와 관련해서도 “한국소설은 뛰어난데 번역 때문에 알려지지 않는다” 이런 주장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물론 뛰어난 소설들이 있지만 ‘잘 썼다, 잘 번역했다’ 라고 해서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국경을 넘어가서 류(流)를 이룬 소설들은 여러 문화의 혼종을 통해 탄생한 일종의 괴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연변이의 산물,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작가가 예측하지 못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문제도 한국의 정서를 잘 살린 문학만이 아니라 이상한 것, 어지럽게 뒤섞인 것, 도저히 우리가 한국문학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한국문학의 탈을 쓰고 전 세계를 돌아다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류로 어떤 ‘류’를 원한다면, 결국 잘 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이상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순수해지길 원한다고 순수해지고, 류를 원한다고 류가 되는 것이 아니니, 어떻게 보면 상관없는 운명의 문제일 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