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에서 방영된 이후 시작된 한류가 이제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코리안 웨이브, 웨이브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한 번 거쳐 지나간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한류가 아닌 다른 명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불길한 예감처럼 중국에서의 한류는 그 기세가 한풀 꺾이고 있습니다. 한국드라마나 영화의 인기가 예전 같지는 않죠. 홍콩느와르가 침체되었던 것과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드라마가 일본에서 성공하고, 한국 배우들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성공이 우리 콘텐츠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서의 한류에는 콘텐츠의 고갈, 또는 경제 악화로 인한 젊은이들의 소비 위축 등 자국 내 상황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중년 여성들의 주머니를 겨냥한 콘텐츠로 한류가 부상하게 되었다는 판단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지금 한류의 침체는 그들이 만든 서커스단 공연에서 우리가 곰돌이만 하다가, 공연이 끝난 후 찾아 온 허탈과 절망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배우 중심의 해외진출이 이루어져 왔지만 매니지먼트 회사의 장기적 비전이나 세련된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했지요. 배우를 이용해 급급하게 사업화하다보니 내용의 질이 떨어지고 내공이 쌓이지 못한 것이죠. 한류가 이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지도 1~2년은 되었습니다만,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다 보면, 이제 한국영화, 한국드라마의 재미가 약해졌다고 하더군요. 식상하다는 것이죠. 문화산업이라는 것이 항상 새로움으로 자극을 줘야 하는데, 똑같은 내용, 똑같은 형식의 작품으로는 이제 아시아일들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노력을 다해도 모자란데, 해외시장의 기호, 합작 논리 등 작품 외적 조건들까지 충족시키려면, 아무래도 작품이 부실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성공했던 이유도 사실 작품이 주는 어떤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인물과 배우에게 매료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제는 자꾸 상업적 기획의도만 앞세우다 보니 작품의 재미가 떨어집니다. 사실 이런 현상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후발주자인 중국에서도 상업적인 기획들이 난무하고 있죠. 특히 합작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 더 심합니다. 한류 스타들을 비싼 값으로 급조해 합작 드라마를 만드니 반응이 좋을 수가 없죠.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고, 비싼 값에 불러온 배우가 실패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류스타 무용론’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사화된 그런 변명들을 보고 ‘아 정말 한류가 위기상황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니, 일종의 소문의 악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한류의 특징이 희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중국드라마, 동남아드라마와 한국드라마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장면구성이나 미장센에서도 거의 구분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많이 비슷합니다. 불륜이나 이복형제 이야기는 중국에서 벌써 여러 번 나왔습니다. 한국드라마의 내공이 많이 유실된 느낌이에요.
한류는 우리가 만든 파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 한류의 지속을 운운하는 것이 적당치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디지털 시대, 월드와이드웹 시대, 또 아시안 블록이 만들어지는 이런 새로운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류는 하나의 지류에 지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를 보며 자란 저는, 나중에야 그 사람들이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을 잘 알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고 꽤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류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한국드라마와 영화, 배우들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관심이 없던 나라에서 찾아와 영화도 재미있다고 하고, 장동건, 원빈이 멋있다고 해주니 다들 기분 좋아했죠. 문제는 이 고마운 이웃들에게 ‘우리집 자랑’만 늘어놓았지 그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류에 관한 엔터테인먼트 기사가 무수히 쏟아졌지만, 그들에게 가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나도 그에게 관심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오만하게 중국과 동남아를 대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태도가 계속되면 아시아 사람들의 한국 문화콘텐츠 사랑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이제 중국은 한국드라마의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고, 한국드라마 방영을 50% 이상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일본시장을 노리고 기획된 한국의 역사드라마들이 중국 내에서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역사적ㆍ정치적 내용에 대해 중국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고대사와 중국 내 소수민족을 다루는 내용에 대해서 특히 그렇죠.  이제 ‘파상공세의 문화상품’이 아닌 ‘소통의 언어’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영화와 드라마는 당대의 언어로 당대의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스토리텔링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당대가 현재 어느 정도의 문화적 언어를 터득했는지 스스로 고민해 볼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일본 NHK가 각국의 문화를 소개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한류가 일어날 수 있었죠. 우리는 상대적으로 그런 노력이 부족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나 공영방송인 KBS 등이 나서서 아시아 다른 나라의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등 선도적인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뭐가 어디서 잘 팔린다 하면, 거기에 장사꾼들만 계속 보내고 있는 상황이죠. 국가적 차원에서 이렇게 상업 논리로만 아시아를 대해서는 안 됩니다.

자꾸 중국에 가서 한국영화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중국에서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 옆에서 기여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저도 지금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9년에 처음 중국에 갔다가 2001년에 <무사>를 촬영하고 지금은 베이징에 영화사를 설립해 운영 중입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밑바탕으로 보다 좋은 합작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설령 한류가 썰물이 된다 하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파도는 갔다가 또다시 밀려오는 것이니까요. 한류를 통해서 한국 문화콘텐츠 사업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적응능력도 생겼으니, 이런 식으로 또 한 번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