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모시기 힘든 분들을 오늘 모셨습니다. 우선 ‘포스트한류시대, 아시아문화교류의 전망’이라는 제목에 대해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오랜만에 김지하 시인을 만났습니다. 건강도 좋아지셔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 포스트한류시대라는 말을 듣고 이 용어는 잘 다듬어 볼 만하겠다 생각했습니다. 포스트한류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한류가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이 때, 이 말에 대해 토의하고 논의를 다듬어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심포지엄에 포스트한류시대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포스트한류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포스트한류를 후기한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처음에 후기근대, 후기현대로 번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은 모더니즘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스트한류를 후기 한류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는 한류가 끝났다는 의미보다는 새로운 국면에서 한류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관점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포스트한류를 탈(脫)한류로 번역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한류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는 의미로, 과거 한류와는 비연속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 포스트한류를 후기한류와 탈한류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존 한류와 어떤 점에서 연속적이고 어떤 점에서 비연속인지, 지금은 연속을 강조해야 하는지 아니면 비연속을 강조해야 할 때인지 등 여러 가지에 대해 토의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포스트한류가 후기한류이든 탈한류이든 기존 한류가 어떠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은 일본소설이 한국소설 시장을 장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 한류(韓流)가 움직이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일류(日流)가 드세게 밀려온 형편이지요. 이전까지는 화류(華流)와 일류의 투쟁이 주된 흐름이었지 한국은 발신자가 아니었어요. 중국이 발신자였을 때 한국은 중개자였고, 일본이 중개자였을 때는 주로 수신자였습니다. 근대 이전은 화류가 동아시아를 지배했죠. 근대 이후는 서양문화의 앞잡이로서 일류가 동아시아를 지배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중화체제가 동아시아를 지배하든가 아니면 그에 일본이 도전하든가, 이 두 가지였습니다. 한류는 화류와 일류에 대한 패자(覇者)적 대항이라기보다는 이를 매개하는 역할이었습니다. 한류를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도구로 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그렇게 봐서는 안 됩니다. 한류가 일류와 화류를 매개하여 비로소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를 독자적인 단위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 포스트한류의 핵심이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동아시아에서는 문화의 일방향성이 폐지되고 있습니다. 요즘 일본에 가면 한국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어요. 니이가타(新潟)에 간 적이 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한국말로 “맛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저 아주머니는 분명히 욘사마 팬일거라고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도 중국도 한국을 인지하는 시선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문화의 쌍방향성, 문화의 혼종성을 실현하는 아주 흥미로운 도구가 한류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한류는 주류문화에 대한 거절입니다. 일본 아주머니들의 열광은 지금껏 일본 주류문화를 만들어 온 남성문화에 대한 거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의 한류도 그렇습니다. 또한 한국에서의 일류소설 흥행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한국문학에 대한 부정이며, 새로운 문학, 문화를 꿈꾸는 대안이 일류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ㆍ중ㆍ일 모두 지금까지 자신의 나라를 이끌어왔던 대중문화에 대한 반발이 한류, 일류, 화류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어쩌면 지금 각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혼종적 흐름들이 이어져, 나라의 경계를 넘는 동아시아문화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류는 한물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한류가 꺾였다고 하는 이 지점이 포스트한류시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한류는 지나갔다고 해도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한국 문화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도 스며들어 있기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면에서는 모두 연접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한류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어떻게 새로운 동아시아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 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방면에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스트한류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발표해주시고 토의를 전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