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의 인문학자인 카라타니 코오진(柄谷行人)이 쓴 한 평론이 한국 문학계에서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이름하여 「근대 문학의 종언」! 이 글은 우리 지식 저널리즘의 호들갑스런 소개에 힘입어 정말 문학의 종말이 온 것처럼 몇몇 평론가들이 그에 부화뇌동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일부 문학계간지에서는 그와 관련한 특집도 기획한 모양인데 나는 그런 모습들이 영 마뜩치 않았다. 일본의 한 평론가의 주장에 우리 지식계가 너무 요란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지식 담론에도 유행이란 게 있고 거기에 열렬히 호응하는 몸 가벼운 지식인들이란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갔지만, 오늘날 문학의 존재 방식의 변화를 보면, 그 의미를 따져 묻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문학관(文學館)이 양산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새삼 문학의 존재 방식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관의 출현을 보면서 이제 문학도 전시되는 존재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시관 안으로 들어간 문학은 문학 특유의 동시대적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과거의 유물로 굳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개운치 않다. 박물관 안의 유물들은 관람객들에게 대상화되어버린 존재들이다. 진열된 유물들은 나의 현재의 삶과는 동떨어져 저 편에 존재하는 것일 따름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 H. 카의 유명한 말을 되새겨 보면 꼭 그렇다고 우길 일만도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그것이 전시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화되는 순간, 애초의 그 본성을 잃고 전시공간이라는 맥락에서 다시 구조화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물관에 전시된 갑옷과 투구는 애초의 그 존재감을 우리에게 환기시키고 있을 뿐 그 본연의 역할은 사라진 것들이다. 문학이 박물관으로 들어가 전시되는 대상으로 전화될 때, 혹시 문학도 그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저어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양산되고 있는 문학관들이 충분한 콘텐츠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일회적인 전시물로 소비되는 것에 그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사실 문학관은 도서관과 박물관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책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도서관에 가깝지만 특별한 목적을 갖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책들을 수집해서 그것의 보존과 전시, 연구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에서는 박물관의 기능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책들을 수집해 놓았는지, 얼마나 많은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 보존되고 있는지가 문학관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다. 그러나 한번 전시되고 난 뒤에 언제 다시 교체될지 모르는 패널이나 문인들이 사용하던 유품 몇 점만이 문학관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정작 문학관에 책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임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문학관은 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학작품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가 문학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것이다. 특히 우리 근대문학은 한국근대사가 그렇듯이 격동의 세월을 거쳐 온 까닭에 작품들이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다. 식민지와 전쟁, 분단을 겪으면서 한국문학의 거장들로 평가받는 문인들도 제대로 된 전집(全集)을 갖고 있지 못할 정도로 한국문학은 자료부실의 병폐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료의 꾸준한 수집에 힘을 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문학관은 수집된 자료의 보존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950년대 이전의 책들은 대개 인쇄와 제본, 지질(紙質)이 양호하지 못해 보존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파손의 우려가 많다. 도서관과 달리 문학관은 책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수집된 자료의 정리와 분류, 연구와 보급, 자료를 활용한 다양한 기획 사업 역시 이들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문학작품들이 박물관의 유물처럼 현실과 유리되어 관람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문학이 갖고 있는 본연의 위엄과 사회적 역할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문학은 문화콘텐츠의 가장 기초적인 근원을 형성한다. 문학은 한 사회가 이룩한 문화적, 지적(知的) 성취를 보여주는 징표이다. 나아가 문학은 어느 한 시대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정서와 교양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문학은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한 영원히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우리에게 문화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수원(水源)이다.

  최근 인천에서 계획하고 있는 문학관은 문학의 그런 역할을 존중하고 더욱 살려나가는 방향에서 고민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천은 비록 외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개항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한 도시이다. 근대 문물이 이곳으로 들어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외부에 대해 개방적인 다문화적 도시 풍토가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는 곳이 인천이다. 최근 동아시아의 허브도시를 내걸면서 인천은 문화가 들고나는 문류(文流)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도시에 제대로 된 근대문학관이 들어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인천은 특정 문인 한 두 명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보다 개항도시 인천에 걸맞게 근대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문학관, 문학의 존재방식과 이유를 고민하고 문학의 가치와 위엄을 사회적으로 확산해가는 문학관, 연구자들이 모여들고 시민들이 향유하는 문학관을 꿈꾸고 있다. 물론 한국의 근대문학을 매개로 동아시아 근대문학을 연결시키는 동아시아 문학의 허브 기능도 문학관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료를 지속적이면서도 충실하게 수집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자산들을 잘 구비하는 것이 그 첫 출발이 되어야 한다. 수집된 자료에 대한 서지 사항 정리,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구축, 원문서비스 제공, 자료의 복각(復刻)과 보존 등은 자료를 충실히 갖춰놓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 자료들을 토대로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실 운영, 근대문학 관련 포럼 및 세미나 개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강좌 기획, 학술지와 교양도서 발간, 대중을 위한 복각판 발행, 자료를 활용한 각종 기획 전시 등이 인천이 만들어야 할 근대문학관에서 할 일이다.

  이런 일들을 꾸준히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와 동호인들이 인천으로 모여들고, 문화콘텐츠의 기초로서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대안 모색도 가능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오늘날 한국문학은 대학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거나 몇몇 동호인들의 비밀스런 언어로만 소통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또 세상에 대한 통찰없이 가벼운 읽을 거리와 볼 거리로 이루어진 형국이다.
문학은 그것이 연구 대상으로만 머물거나 특별한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그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학이 갖고 있는 문화적 창조력을 복원하는 일은 비단 한국 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인 경쟁력을 총체적으로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화콘텐츠도 문화산업도 문학적 자산이 풍부하게 쌓여 있을 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천이 지향하는 한국근대문학관은 문학이 사회와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이 비단 꿈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문학관을 인천이 만들어 갈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인천의 근대문학관, 아니 한국의 근대문학관을 인천에 오롯이 세우기 위해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