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앞둔 초겨울의 베이징이 소란하다. 빼곡한 고층건물들 사이로 질서 없이 벌여 놓은 공사장들, 하루가 멀다하고 수술대를 오르내리는 도로들, 그리고 짜증스런 경적소리와 함께 밀려드는 자동차의 물결. 도시의 혼잡과 소음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쉼터로 다가오는 곳이 바로 중국현대문학관이다.
장엄함과 단아함 속에 청신함과 발랄함이 묻어나는 건축물에 이끌려 중국현대문학관 정원에 들어서면 50톤이 넘는 거대한 돌병풍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거기에 새겨진 “우리에게는 얼마나 풍부한 문학의 보고(寶庫)가 있는가(…)그것은 우리를 지지하고 교육하고 격려하여, 우리를 더욱 선량하고 순결하게 하며,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빠 진(巴金, 1904~2005)의 글귀는 중국현대문학관의 사명을 적절히 요약하고 있다. 중국현대문학관은 격동의 20세기를 치열하게 달려온 위대한 작가 빠 진의 마지막 꿈이었다. 문학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환한 모습에 꿈속에서도 웃었다는 빠 진은 병으로 인해 절친한 친구 삥 신(氷心, 1900~1999), 샤오 쳰(蕭乾, 1910~1999)과 함께 개관식 테이프를 끊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2005년이 되어서야 한줌의 재가 되어 이곳에 들어왔다. 빠 진은 떠나갔지만 그의 웃음, 그의 체취, 그의 글은 문학의 전당 곳곳에 살아 숨쉰다.
빠 진의 손도장이 찍힌 손잡이를 잡고 문학관에 들어서면 야릇한 흥분에 감싸인다. 중국현대문학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이 ‘세기의 작가’가 마치 악수를 청하는 것 같다.「찻집(茶館)」라오 서(老舍), 1957 『가(家)』빠 진, 1931,「축복(祝福)」루 쉰(魯迅), 1924, 『여신(女神)』궈 모뤄(郭沫若), 1921, 『백양예찬(白楊禮贊)』마오 뚠(茅盾), 1941, 「원야(原野)」차오 위(曹禺). 1957의 주인공들을 생생하게 살려낸 큰 폭의 유리벽화, 중국현대문학사에 흔적을 남긴 5,000여 명 작가들의 서명으로 특이한 운치를 자랑하는 두 개의 커다란 도자기 꽃병,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십 명의 인물들을 ‘수난자’와 ‘반항자’라는 두 개의 큰 그룹에 집결시켜 현대문학의 주제와 흐름을 예시해주는 두 폭의 대형 벽화, 젊은이들의 진솔한 대화가 담긴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제목의 편지함들.
홀에서 들뜬 기분을 은은한 커피향과 클래식 음악으로 잠깐 가라앉히고 마주하게 되는 1층 전시관은 20세기 중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7대 거장들의 자취가 오롯이 복원되어 있는 곳이다. 작고 허름한 책상 앞에서 민족혼의 정수가 담긴 『야초(野草)』(1927)를 집필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루 쉰의 눈에는 특유의 날카로움이 번뜩이고 있다. 무한한 별들의 공간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빠 진, 은행나무가 곱게 서있는 정원을 열정과 낭만이 넘치는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궈 모뤄, 30년대 상하이 풍의 서재에서 향수를 달래는 마오 뚠. 그들은 신비를 벗어버리고 평범한 존재로 다가온다. 베이징의 세태풍속이 한껏 드러난 거리와 하층민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100장의 사진들에 둘러싸인 라오 서의 미소에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배어 있다. 훗날 문화대혁명의 폭풍에 휘말려 호수에 몸을 던질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기라도 한 것일까. 작은 극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반복 상영되는 「뇌우(雷雨)」(1934), 「일출(日出)」(1936)의 장면들을 지켜보며 중국 최고의 극작가 차오 위의 작품세계에 머물다가 눈길을 돌리면 아름답고 쉬운 문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여성작가 삥 신의 인자한 모습이 들어온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글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던가.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다’는 삥 신의 말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중국현대문학 거장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2층에 올라가면 20세기 중국현대문학의 거대한 흐름이 온 몸을 감싼다. 근대초 량 치차오(梁啓超, 1873~1929)의 ‘문계혁명’(文界革命)’을 전주곡으로 하는 20세기 중국 문학은 5.4문학혁명(1917~1927), 좌익과 진보문학의 궐기(1927~1937), 문학이 인민대중 속으로(1937~1949), 사회주의 시기 17년(1949~1966), 신시기 문학의 번영(1976~1999)이라는 여섯 단계로 그려져 있었다. 이곳은 각 단계를 대표하는 420여 명 작가의 약력과 행적, 그리고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데, 혹독한 고난을 이겨온 중국현대문학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문학창작』, 『문학천지(文學天地)』, 『창조』, 『신청년(新靑年)』,『작가』등 간행물들의 표지 사진과 대형스크린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모습에서도 그것이 보인다. 어느 관람객이 중얼거렸다. “‘오늘의 문인아가씨, 내일의 무인 장군’이라며 띵 링(丁玲, 1904∼1986)을 극찬했던 마오 저동(毛澤東)은 그가 저렇게 비참해질 때 왜 아무 말이 없었을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영욕의 20세기를 살다 간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야 했던 역정이 아니었던가. 친필유고 전시 코너 바닥에 깔린 모래는 5.4신문화운동의 발원지인 베이징대학 홍루(紅樓)모래톱의 상징이요, 자유와 진보를 추구하는 문학의 길에 생명을 바친 문학도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역사는 중국현대문학사를 빛낸 작가들을 기억하고 있다.
75개의 개인 서고와 총 8만 권이 넘는 장서가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3층 작가서고전시장은 책의 바다를 방불케 한다. 그 속에 군데군데 끼어 있는 손때 묻은 유일본들은 중국문학의 전통을 이어갈 후속세대들의 성장을 바라는 책주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어 더욱 귀중하다. 커다란 뿔테안경, 보풀이 일 정도로 닳은 책, 구식 확대경, 볼품없이 낡은 책상과 의자, 허름한 옷가지들, 색 바랜 트렁크, 각양각색의 공예품과 훈장. 작가 개개인의 생활 취향과 창작 풍격(風格)이 배어 있는 유품들로 재현된 19개의 서재는 소박하면서도 독특한 멋으로 관람객과 작가의 거리를 좁혀준다. 열악한 생존환경에서도 창작의 붓을 꺾지 않고 혼신의 정열을 불태우며 달려왔던 경이로운 작가정신은 깊이 잠들어 있던 사람들의 문학적 본능을 깨운다. 7,000여 명의 대륙작가와 화교작가들의 신상?작품정보 검색시스템과 동시통역 서비스가 완비된 이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각종 학술대회와 문학행사는 여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20세기의 성과에 힘입은 21세기 중국문학은 더욱 풍부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위대한 작품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중국현대문학관의 쉼표 모양 상징석이 가지는 의미는 깊다. 이곳 문학의 전당에서 숨쉬고 있는 많은 작가들의 영혼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현대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이다.
#저자 약력
崔玉山 1970년 중국 지린(吉林)생. 중국 대외경제무역대 한국어과 교수. 논문으로 「칭포우 입은 조선선비, 베이징의 단재」, 「동아시아 한국학의 중국적 주제에 관한 관견」등. cuiweil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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