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전주의 2007아시아아프리카문학페스티벌(11.7～11.14)에 참가한 길에 최명희문학관전주시 완산구과 혼불문학관남원시 사매면을 둘러보았다. 『혼불』 그리고 그것을 쓴 작가의 기념관이 인접한 두 곳에 매우 큰 규모로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러나 최근까지 생존했던 작가 최명희의 집이나 생활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안타까웠다.
  최근 몇 년간 일본,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의 문학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문학관 혹은 기념문학관이란 말 대신 ‘작가의 집’ 혹은 ‘아무개 박물관’이란 말을 주로 썼다. 작가의 생가나 집필 장소를 확장해 당시의 흔적을 온전히 보존 공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낡고 좁은 계단, 삐걱거리는 마루, 낡은 장갑 등 생전의 모든 흔적이 가치 있는 문화유적이고 어디에서든 그 작가의 삶을 추억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박물관이었던 것이다.

  우리네 현실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우리나라 작가들의 생가나 생활터전,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은 여러 번의 전란과 산업화 과정의 개발에 의해 대부분 소실되어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 흔적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수 있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앞 다투어 문학관을 건립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작가의 작은 흔적이라도 잘 보존하려는 의지보다는 우선 대규모 전시관부터 지어 문화명소를 만들자는 발상에서 급조하다 보니 정작 소중히 다뤄져야 할 것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특히 아직 검증 되지 않은 작가?시인들의 과대 미화나 우상화로 문학사에 가치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든 지방분권시대 문화인프라 중에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각 지역의 문학관들이다. 2007년 11월 현재 한국문학관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전국의 문학관 수는 32군데(서울 6, 강원 4, 경기 2, 경상 9, 전라 7, 충청 4)에 이른다. 그밖에도 혼불문학관, 김삿갓문학관, 김달진문학관, 지용문학관은 물론 현재 건립 중에 있는 황순원, 박인환문학관까지 합하면 40여 곳에 문인을 기리는 공간이 있다.
  이것은 도쿄에만 해도 500여 개 문학관이 있는 일본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이 방면의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에서 문학관 붐은 괄목할 만한 현상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지역문학관 건립이 문화의 중앙집중화를 극복하여 지방의 고유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문학관일수록 그 지역 문화인프라로서 합당한 역할을 하리란 기대를 낳게 한다. 즉 문학관이 그 지역 문화?예술의 활동 거점이며 문화향수의 전통적 가치를 창출하는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학관 운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자금조달과 운영주체, 혹은 그 전문성 문제이다. 설립취지에 걸맞은 운영방식과 프로그램 개발이 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문학관은 문학사적 가치를 가진 작가?시인의 유품과 각종 자료를 보존하고 상설전과 기획전을 통해 그 작가의 문학적 위상을 정립?선양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문학관의 또 다른 역할과 기능은 그 공간이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지역문화예술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해당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벌이는 각종 전시와 공연무대를 제공한다면 문학관 본래의 기능이 한층 살아날 것이다.

  문학관 운영에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할 점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립한 문학관이 재정적 뒷받침의 부족이나 운영상의 미숙으로 지역 문화인프라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다. 실제로 어떤 문학 독자는 모지역의 문학관을 돌아보고 난 뒤 그 작가와 문학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깨지게 됐다는, 문학관 운영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문학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그때까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한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종합적이면서도 새로운 각도의 이해를 바란다. 문학관을 찾아 자료들을 살펴보고 각종 행사에 참여함으로서 지금까지 몰랐던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문학사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관은 운영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운영의 체계와 방법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우선 문화예술 전문가가 아닌, 수시로 교체되는 문화행정가의 안목에서는 건립취지에 맞는 운영 철학은 물론 지속적인 발전 전략이 나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역문학관의 경우 그 지역주민들의 참여의식이 문학관 운영의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이것은 지역문학관 운영이 그 지역 주민들의 소득증대와도 연계되어야 한다는, 문화산업 차원의 발전전략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고향 평창 봉평에는 「메밀꽃 필 무렵」(1936)의 메밀꽃을 보기 위해 한 해 연인원 200만 이상이 찾아오고 있다. 황색 국화로 뒤덮인 전북 고창군 질마재 일대는 「국화 옆에서」의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문학관과 묘가 있다. 춘천 실레 마을은 봄이면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이 피운 ‘동백꽃(생강나무꽃)’이 마을 전체를 뒤덮고 그의 생가가 있는 실레마을 신남역은 철도역사상 처음으로 사람 이름이 들어간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김유정로춘천, 청마거리통영, 토지문학공원원주, 만해마을인제 등 작가 이름을 딴 길 이름이나 지명은 문학관의 이미지 홍보에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문학관은 정보화 사회에 걸맞은 정보 마인드를 작동하여 문학콘텐츠 확보에 주력하여야 한다. 각 문학관 간의 네트워크에 의한 데이터베이스의 확충이 바로 디지털시대의 바람직한 문학관 운영방식일 것이다. 아울러 지역의 각 문학관은 지역 단위든가 테마별 연계 관광코스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의 문학관은 그 지역의 유적지나 다른 문화예술 관련 명소를 한데 묶어 문화관광 코스로 관람객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김유정문학촌의 기념문학전시관에는 작가의 유품이 단 한 점도 없다. 그러나 김유정의 소설 31편 중 12편이 춘천 금병산(金屛山) 자락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지명은 마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실재의 인물을 모델로 쓴 것들이다. 이렇게 되면 실레마을은 작가의 고향인 동시에 작품의 산실이다. 문학촌이란 명칭을 붙인 것도 실레마을 전체가 그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뜻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김유정문학촌은 단순 자료 전시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좀 더 역동적인 작품 이해의 마당을 지향해왔다. 김유정 작품에 묘사된 30년대 우리 농촌의 피폐한 삶의 모습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하는 가운데 작품의 특성으로 드러난 해학이나 만무방, 따라지 캐릭터를 이해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졌다. 작품 속 삶의 내용을 체험하며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김유정 소설의 격조 높은 문학성과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기대인 것이다.

  김유정문학촌 행사는 참 촌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작품과 관련된 30년대식 그 ‘촌스러운’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유정 작품을 새로이 찾아 읽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꼭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말을 덕담으로 놓고 가기도 한다. 다시 찾아올 그네들을 위해 비록 시설은 보잘것없더라도 그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좋은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