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이어(イオ)>의 2007년 1월호에서 재일조선인 2세 서승(徐勝)은 “고향을 빼앗기고 방황하는 세계사 속의 많은 민족들에게 고향이란 실제 자기가 태어난 곳이라기보다 자기를 소외하고 억압하는 현상에 대한 안티테제, 회복되어야 하는 권리, 이상향으로서 마음 속 깊이 가라앉은 공동의 기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3세인 나에게 ‘고향’은 그렇게 감회 깊은 말이 아니다. 나에게 ‘고향'에 대한 기억은 조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어릴 때에 귀에 익힌 경상도 사투리가 전부다. 그것은 도쿄(東京)에 살면서 태어나서 자랐던 교오토(京都)의 말이 그리운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1세, 2세, 3세 등 각 세대마다 다른 것 같다.

  8.15해방 이후  60여 년이 지난 현재 재일조선인사회는 3세를 중심으로 1세부터 5세로 이루어져, 그 세대의 폭이 넓다.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 대부분은 혹독한 민족차별 하에서 같은 고향출신끼리 조선인부락을 이루어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일본경제의 고도성장과 재인조선인사회의 1세에서 2세로의 세대교체로, 1960년대 이후 재일조선인사회는 다양화가 촉진되어왔다. 재일조선인의 80%이상이 일본인과 결혼한다는 오늘날 국적이나 이름은 이제 더는 재일조선인의 징표일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민족차별은 여전하다. 정부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의 역사를 왜곡하고, 북한의 일본인납치사건 발각 후 일상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본의 교육체계에서 조선말을 배우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역사도 배우지 못하는 대다수의 재일조선인들이 열등감 때문에 출신을 숨기고 사는 현실만은 21세기인 지금도 다름없다.

  그러한 현실에서도 차별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학교재일조선인 민족학교와 민족단체에서 민족교육을 받은 이들은 조선말과 자신의 역사를 특히 중요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정보의 발신지가 되려고 분투하는 잡지, 그것이 앞에서 소개한 월간 <이어>이다. '이어'는 ‘세대를 이어서’ 라는 뜻으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산하단체인 조선신보사(朝鮮新報社)가 96년에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재일조선인의 생활정보지로, 특히 2000년 6.15공동선언발표 이후 냉전의 색채를 없애고, 매호 한국인 사진가의 사진을 게재하는 등 다양한 기사를 싣고 있다. 예를 들어, 서승의 고향에 관한 에서이가 게재된 호의 특집은 ‘요즘 30대의 미혼사정’이다. 특집은 “전에 사귀던 사람보다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결혼 때문에 지금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 “연애를 하고 싶지만 만남의 기회가 없다” “20대 때 상대는 재일조선인이라고 생각했지만 30대가 되면서 일본사람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는 역시 가치관이 맞는 재일조선인이라야” 등 30대 미혼 남녀의 솔직한 심정을 소개하였다. 또 “동포끼리 결혼은 17%, 일본인과의 결혼은 81%” “2005년에 아이를 낳은 여성의 평균연령은 32살” 등 조선적과 한국국적 소지자의 결혼과 관련된 통계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또한 '부탁이에요, 가족을 보게 해주세요'라는  기사에서는 일본당국이 만경봉호-92의 입항을 재개하고 북한에 귀국한 가족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운동이 청년들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소개하고 있다.

  최신호인 2008년 2월호는 조선학교의 우리말 교육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조선학교에서 조선말이 국어이고 학교생활 전반은 조선말로 진행된다.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2,3,4세라 어려움이 많지만, 조선말은 영어 등 외국어와 달리 정체성 형성의 주된 요소의 하나인 만큼 특별히 중요시되고 있다. 조선학교에서 조선말 교육은 어릴 때는 일상회화를 중심으로 하고 고학년이 될수록 독해력을 키워가는 식으로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연령적 특성에 맞게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은 한국드라마가 좋아서 더 열심히 배우겠다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실지로 초급학교부터 조선학교를 다닌 재일조선인의 조선말 실력은 대단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일본학교에 다닌 뒤 고급학교부터 조선학교를 다닌 나는 어릴 때부터 민족교육을 받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같은 재일조선인으로서 자신의 조선말 실력이 부끄럽다. 그 외 2월호는 연말연초에 있었던 전국선수권대회에서 활약한 오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 소식, 북한의 신년공동사설과 남한의 대통령선거의 해설, 한국인 사진가가 찍은 지리산 사진 등 재일조선인사회뿐 아니라 북한과 남한의 소식들로 가득 차있다. 또 연극을 통해서 처음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역사를 알았다는 배우 후나쓰 모토이(船津基)의 인터뷰, 재일조선인이 혼자서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조선말 번역가가 되었다는 전 ‘아사히신문’기자 요네즈 토쿠야(米津篤八)의 에세이 등 일본인 기사도 있다.

  작년에 나도 이 잡지에 연재기사를 썼다. 2005년2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서울에 있는  한 대학원에서 유학하면서 느낀 것들을 쓴 '서울에 와서 생각했다'라는 에세이다. 서울에서 유학하기 전까지 나는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등학교시기부터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1989년부터 1997년까지는 조선신보사에서 한국담당기자를 했다. 한국의 친척들을 만나는 기회도 많았다. 그러나 실제 생활해보니 놀라운 일들이 하루에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편의점이나, 지하철, 식당 등에서 양국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때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되새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연재했다.

  내가 연재한 기사를 보면, 대표적으로 종교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외양은 비슷하지만, 그 정신세계는 크게 다르다. 종교에 대한 태도는 그런 차이를 뚜렷이 나타낸다. 많은 일본인은 태어났을 때는 신사(神社)를, 결혼할 때는 교회를, 죽어서는 절을 찾는다. 나무, 풀, 돌 등 모든 것을 신으로 모시는 일본의 토착종교 때문이란 설도 있고, 봉건시대부터 역대권력자들이 종교가 통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종교를 열심히 믿는 것을 경시하는 정서를 의도적으로 조성해왔기 때문이란 설도 있다. 사실 일본에서는 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일본인에게 종교는 의례이지 정신적으로 의지할 것은 아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종교활동이 활발하고, 믿음이 독실하다. 식민지, 해방, 분단, 화해를 거치면서 바쁘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변함없는 가치관을 찾아서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기초였던 ‘집’문화의 붕괴로 새로 의지할 것을 찾아서인가. 이외에 나는 교수가 제자인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등 한국사회의 호칭에서 느껴지는 어색함, 징병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의 모습, ‘이상은 결혼보다 동거’ 라는 젊은 사람들, 기러기아빠 현상을 통한 영어교육에 대한 높은 열의 등을 6번에 걸쳐 연재했다.

  이 기사를 읽었던 사람들의 감상은 “여행이나 드라마로는 보지 못하는 한국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많았다. 재일조선인 사회는 아직 봉건적인 측면이 많다. 그래서인지 무엇보다 인상적인 반응은 유학한 내 자신에 대한 경탄이다. 내 남편이 일 때문에 만난 동포가 “요즘은 여성들이 활발하다. 이런 여성이 있다니 정말 놀랍소”라면서 내 기사를 꺼냈다고 한다. 어떻게 답할까 잠깐 망설이다가 “우리 집입니다”라고 말하니까 “당신도 대단하다”고 칭찬받았다고 한다. 친구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여성은 내 동창생이 "<이어>에 서울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니까 “정말 있었어요?”라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경력이 믿어지지 않아서 “혹시 가상이 아닌가”하고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총련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40대 후반의 여성이 남편을 혼자 두고 서울에서 유학하는 일은 동포사회에서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덕분에 내 남편에 대한 여성들의 평가는 훨씬 높아졌다.

  젊은 세대들에게 ‘고향’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어떤 20대 여성은 “일본은 싫지만 태어나서 자란 오오사카는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실 3세들이 부모도 가보지 못한 고향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많은 3세들은 한반도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 노력이 작품보급과 통역, 번역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한류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대교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과도기에 있는 재일조선인사회이지만, 탈냉전 시대에 그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크게 뛰려면 튼튼한 발판이 필요하듯이 활약하는 무대가 넓어질수록, 다양해질수록 음침한 민족차별에 시달리지 않는 힘이 필요하고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재일조선인사회는 지역에 한정된 커뮤니티가 아니다. 때문에 월간 <이어>와 같은 정보지의 역할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