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대장금> 학술대회(Dae Jang-geum Symposium) 때 70세가 넘어 보이는 일본계 할머니 한 분이 나에게  “<불멸의 이순신>(KBS, 2004~2005)에 나오는 왕과 <대장금(大長今)>(MBC, 2003~2004) 속의 왕이 친척이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하며 ‘아, 이분들도 한국드라마를 통해 역사 공부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드라마가 하와이 주민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89~1990년에 <울밑에선 봉선화>(KBS, 1989~1990)가 방영되면서부터이다. 그전에는 하와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본계 주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영어자막이 있는 일본드라마를 즐겨보았다. 드라마 <오싱(おしん)>(NHK, 1983~1984)을 정점으로 일본드라마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울밑에선 봉선화>가 방영되었다. 영어자막도 없이 방영된 이 드라마는 주민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다음 날 걸려오는 전화에 일일이 답한 기억이 생생하다. 대부분의 전화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서 왔는데, 이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근대사를 배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울밑에선 봉선화>는 한국인 소유의 TV 방송국 KBFD1986년 3월에 설립된 미국 내 첫 한인방송국에서 방영되었다. KBFD는 처음 몇 해는 영어자막 없이 한국드라마를 방영하였는데, 90년대부터 영어자막을 넣기 시작하여 주민들이 고정적으로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러면서 저녁시간 고등학교 성인교육 프로그램에 있는 한국어반에 학생들이 넘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2001년 한 고등학교 한국어반 학생들은 한국에 여행을 갔는데, 선생님의 주선으로 그 당시 방영된 드라마의 주인공 류시원을 만났다. 이들은 돌아오자마자 류시원 팬클럽을 조직하였다. 이것은 2001년의 일이며, 아마도 한국 밖에서 외국인들이 조직한 첫 팬클럽일 것이다. 곧 이어 호놀룰루(Honolulu)에 하와이 한국드라마 팬클럽(the Hawaii K-Drama Fan Club)이 조직되었고, 지금은 2개의 한국드라마 팬클럽이 있다. 150여 명의 회원들은 드라마와 영화만 즐기는 것만 아니라, 한국의 고아원을 돕고 있고, 한국 여행도 틈틈이 한다. 2년 전 이들은 송일국을 만났다. 이들은 호놀룰루 시의회에서 송일국에게 주는 감사장과 하와이에서 열리는 철인경기 관련 기념품을 잔뜩 가져갔다. 하와이에서 한국인 팬들이 오는 줄 알고 있었던 송일국은 현지인들이 걸어주는 레이(lei)하와이에서 사용하는 화환를 받고,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 선물까지 받자 당황해했다는 후문도 있다.

  한국드라마 팬클럽 회원들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다. 드라마 주제곡을 불러 유명해진 가수가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K-드라마 팬클럽 회원들은 입장료가 100달러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2회의 공연 모두에 참석하였다. 그렇게 비싼 공연을 왜 두 회씩 갔었냐고 묻자 회원들은 “LA나 한국에 가는 것보다 쌀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많이 참석해야 다음번에 다른 가수나 연기자가 올 것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2002년 말, <겨울연가>(KBS, 2002)가 방영되자 호놀룰루 주민들 간에는 저녁 8시 이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기기도 했다. 2003년은 미주한인이민100주년인 해로 1월부터 하와이 전체에 한국 붐이 일어났고, 동양계 주민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한국드라마를 시청하였다. 2004년에 <대장금>이 영어자막 없이 방영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전화로 “장금이가 이름이냐, 그러면 앞의 대는 무엇이냐” “실존 인물이었느냐” 등을 물었고, 나는 이에 대답하느라 바빴다. 또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드라마 내용을 설명해 줘야 했다. 그 후 <노란손수건>(KBS, 2003)이 다시 하와이 주민의 감성을 흔들었다. 박정란 작가는 하와이에 와서 <노란손수건>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2004년부터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는 학기 중에 매주 한국영화를 상영하였다. 또 2005년 <대장금> 학술대회 때는 이왕이면 한국요리도 소개하자고 하여, 요리강습을 준비했다. 강습이 있기 한 달 전 교재로 쓸 영어판 요리책 100권이 매진되었다. 이에 주최측은 급히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오는 교수들에게 요리책 100권을 가지고 와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렇게 마련한 100권의 책도 당일에 모두 매진되었다. 본래 3회 강습을 하려고 했지만 2회를 추가로 해야 했고, 참가인원도 300명이 넘었다. 또 대회장은 100명의 사람들이 들어갈 정도였는데, 학술대회 참가 인원이 100명 이상이어서 로비에 스크린을 설치해야 했다.

  호놀룰루에서 일찍부터 한류가 시작된 이유는 하와이 주민들이 100년이 넘도록 한국 이민자들과 함께 살면서 한국문화를 접촉했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친척이나 친구 중에 한국계가 많기 때문에 가족들이 즐겨 볼 수 있는 한국드라마는 새롭기도 하면서 친숙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이유는 1972년 하와이대학교에 한국학연구소가 설립되어 학문적으로 뒷받침  해주었기 때문이다. 1980년 하와이대학교에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과 향원정(香遠亭) 모형의 연구소 건물들이 세워졌다. 이 건물들은 국외 대학교 내에 세워진 유일한 한국식 건축양식의 건물로 한국학의 상징이다. 
  하와이는 앞으로도 이런 요소들을 간직할 것이기 때문에 하와이의 한류가 일시적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류의 지속은 한국드라마나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이들과 한국문화를 아끼고, 알리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에 달려 있다. 세계 속의 한국문화는 고루하거나 폐쇄적이 아니어야 하고, 식상한 내용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