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년 10월, 일본 오오사카 재일동포 사회가 주축이 된 원코리아페스티벌에 참석해 최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통일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권해효씨를 만났다. 그는 한반도 통일과 자이니치 문제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따. 우리는 이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하고 조촐한 인터뷰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

강경석(이하, 강):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가까이서는 두번째 뵙습니다. 작년 11월

오오사카(大阪) ‘원코리아페스티벌(One Korea Festival)’

(이하, 원코리아)에서 뵙고 오늘 이 자리가 두번째네요. 근황은 어떠세요?

권해효(이하, 권): 근황이야 늘 그렇죠. 드라마 <황금신부>, 시트콤 <코끼리>에 잇달아 출연하는 중이고 연극도 한 편 있어요. 사실 작년에는 연기활동 이외의 많은 시간을 일본 오가는 데 들였는데, 만 3년 걸쳐 21회나 오갔네요.

강: 일본에 자주 드나들게 된 계기가 있으실 텐데요. 작년 원코리아 때를 돌이켜볼 때 흥미로운 것이 자이니치(在日) 문제와 한반도 통일문제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계시죠?

권: 2005년에 처음 갔을 땐 한류(韓流)드라마 <겨울연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이하, 빵공장)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차여서 겨레하나운동본부를 통해 원코리아페스티벌 참가 제의가 왔어요. 기왕 갈 바에야 뜻있는 일을 해보자 싶어서 빵공장 사람들과 같이 오오사카에 갔죠. 아시겠지만 오오사카는 일본 교포사회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안에 작은 남과 북이 또 있지 않습니까? 2005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이었어요. 2002년 이후 북일수교가 정상화에 실패하고 2004~2005년에는 일본인 납치문제로 일본사회가 떠들썩했죠. 조선학교 아이들에 대한 납치 테러 등이 극에 달할 때였습니다. 승자독식처럼 어느 한쪽이 체제싸움에서 이겼다는 식으로 다른 한쪽을 짓누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여전히 통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빵공장과 같은 바람직한 사업모델을 토대로 남과 북이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오오사카지역에서 빵공장 후원금이 많이 걷히거나 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2005년 이후 일본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죠.

강: 통일운동과 자이니치 문제가 한류열풍을 타고 자연스레 연결되었다니 의미심장합니다. 원코리아 행사장에도 한류스타 관련 부스가 따로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권: 그 이전 연결고리를 굳이 찾자면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1회 ‘남북청년학생 통일대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산아시안게임 시기와 겹쳐 많이 묻혀버렸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행사였어요.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지난 수십 년간 통일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이 양측 정부의 승인 하에 금강산에 모인 거죠. 남측에서도 400여 명이 올라왔습니다.

강: 북에서는 얼마나 왔나요?

권: 한 200~300명 됐어요. 합해서 600명이 훨씬 넘었던 것 같아요. 그때 행사 끝나고 가장 많이 울고 서운해 했던 사람들은 남북의 청년들이 아니라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었죠. 자기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던 학생들이 ‘조국’ 땅에 와서 언니, 오빠들과 조선말로 이야기 하면서 보냈던 꿈같은 2박3일이 끝나는 순간, 그 아이들은 분단현실의 벽을 실감했을 겁니다. 좀 멍 할 정도로 그 학생들의 모습이 가슴에 남았어요. 비록 분단되었더라도 이 땅에 사는 나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그런 차에 한류열풍을 타고 <겨울연가> 출연진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방송에 출현하는 과정에서 2002년 당시 금강산에서 만났던 조선학교 학생들이나 일본에 거주하면서 등거리 형태로 남북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았던 그때 그 친구들을 모두 다시 만났습니다. 드라마 덕분이었죠.

강: 조선학교 학생들 얘기를 꺼내시니까 작년에 개봉되어 높은 호응을 받았던 다큐멘터리<우리 학교>(김명준 감독)가 생각나네요. 영화 보셨죠? 우리 <플랫폼>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글 쓰신 분은 굉장히 아쉬워했어요.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감상적 개념에만 호소할 뿐 자이니치 사회 내부의 이념충돌이나 참정권 논란, 조선학교 교과과정의 이데올로기 편향 같은 진짜 갈등요소들엔 철저히 눈감아버렸다는 겁니다.

권: 사람 사는 공간에 왜 갈등이 없겠습니까. <우리 학교>는 확실히 조선학교의 아름다운 면만 일방적으로 부각하죠. 그런데 그것이 그릇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따로 토론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 사회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켜왔던 아이들에 대해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들끼리 처음으로 손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데 ‘저에게는 이런 어두운 이면이 있습니다’라고 소개하지는 않잖아요. 해방이후 60여 년 동안 조선학교에서는 선생과 아이들이 친구처럼 어울려 씨름하고 연극하고 춤추고 하면서 일본식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교육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죠. 과연 학교가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경쟁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것이 이 영화의 숨은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10만에 이르는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찾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우리 학교’라는 말을 할 때는 그 뒤에 오는 말이 모두 긍정적이에요. 세상의 풍파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우리 학교’가 있는데, 도대체 저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우리 학교’라는 말 뒤에 긍정적인 말을 붙여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그래 봤어요? 우리 학교 이사장은 ○○○야, 우리 학교는 ○○같아. <우리 학교>라는 영화는 엄밀히 얘기하면 ‘착한’ 눈으로 찍은 가장 정치적인 영화예요. 아마 김명준 감독은 그런 의도였을 거예요. 남쪽에서 온 영화감독이 재일조선인 사회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봐 줬다는 데에서 그들이 받을 긍지, 이런 것까지 깊이 고려한 정치적 영화라 생각합니다.

강: 그럴수록 재일조선인 사회의 위기를 균형 있게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영화를 비판했던 분도 그런 뜻이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만.

권: 김명준 감독의 필름 속엔 사실 그런 장면들이 굉장히 많았데요. 필름이 500~600통이었다죠?

강: 그렇겠지요. 3년간 찍었다고 하니까.

권: 이제 <우리 학교> 같은 영화가 나왔으니까 다른 주제의 다양한 영화들이 나와야겠죠. 넓게 보면 김명준 감독이 이 영화를 한국에 소개함으로써 좀 더 첨예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나올 수 있도록 안전판을 만들어준 셈이에요.

강: <우리 학교>라는 영화가 재일조선인 사회에 대한 남쪽 사람들의 거부감을 어느 정도 완충해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 안전판이란 말이 굉장히 함축적이네요. 그런데 이런 안전판, 완충지대가 무엇 때문에 필요했을까. 한반도 남쪽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재일조선인 사회와 이북사회가 등치되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그렇죠. 그런데 사실 재일조선인 사회와 이북사회는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재일조선인, 특히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다른 점은 무엇이고 그들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권: 제가 <우리 학교>를 보고나서 김명준 감독한테 그랬어요. ‘<우리 학교>를 본 사람들이 조선학교 아이들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이 하루 24시간을 외부와 차단된 학교에서 생활하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만 조선어로 교육받을 뿐 집에 가서는 매일같이 일본게임하고 일본방송 보며 생활하는 아이들인데 영화에서는 그런 게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이 아이들의 생활은 일본사회 그 자체예요. 그 속에서 일반 사립고의 3배, 공립고의 7~9배에 해당하는 학비를 지불하면서 조선학교를 힘들게 다니는 겁니다. 저는 조총련계 조선학교라는 공간이 동북아평화시대의 중심 같은 느낌이 들곤 했어요. 일본어와 한국어를 알면서 남과 북 어느 쪽에 대해서도 반감이 없는 젊은 청년들. 어쩌면 동북아평화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죠. 그런 아이들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그 학교들이 사라지거나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어서도 안 되는 거지요.

강: 동북아평화시대라는 대의를 재일조선인들의 구체적 삶과 연결시킨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인천문화재단이 만들어진 맥락도 이와 널리 통합니다. 동아시아로 열린 항구도시 인천만큼 분단체제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도시도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인천문화재단의 <플랫폼>은 앞에서 말씀하신 자이니치 문제나 분단체제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근 남북간에 또 한 차례의 공동성명 채택이 있었지요? 작년 10월 4일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는데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7년만입니다. 정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몇몇 문화예술인들이 방문단에 포함되는 것을 보면 남북간 문화예술 교류라는 측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 겨레하나운동본부의 빵공장 홍보대사를 하시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감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교류 전망은 어떻습니까?

권: 남북 공동행사 유치나 공연개최가 현재로선 최대치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앞으로는 좀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행사들이 실상에선 체제 자랑의 도구로 떨어질 때가 많았거든요. 물론 현실적 한계들은 인정합니다. 우선은 서로를 어느 정도 너그럽게 봐줄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아리랑>공연에 대한 논란만 해도 그렇지요.

강: 대규모 행사를 자주 개최한다고 해서 실질적 문화예술 교류가 진전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지만 구체적이고 내실 있는 교류모델이 필요할 텐데요.

권: 그래서 저는 청소년문화교류를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세대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의 세대들이 서로 더 멀어지지 않게 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합니다. 남측 아이들이 북에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한다 해도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어, 너희들의 고민은 무엇이니?’ 하는 소통회로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거창한 명분의 남북교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 아까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신 대목이나 남북 문화교류 문제를 청소년문화의 차원해서 생각하시는 것을 보면 분단이나 이념문제에 덜 속박된 새로운 세대에게서 어떤 희망을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통일운동보다 구체적이고 자발적인 민간교류를 중시하는 관점이기도 한데요, 그렇다면 10.4남북공동성명의 내용에 대해서도 남다른 의견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오오사카에서 확인한 바지만 자이니치 사회 또한 여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권: 글쎄요. 제가 무슨 남북관계 전문가도 아니고, 어려운 문제지요. 다만 이번 정상회담이 자이니치 사회에 다행스러운 점은 조총련과 민단의 경계지대에서 중간층이 넓어지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죠. 그 중간층에 자리를 잡고 남과 북에 대해, 또는 조총련과 민단에 대해 등거리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분

들이 늘어나야 희망이 있습니다.

강: 그래서 자이니치 사회가 한반도의 동향에 대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 남기신다면?
 
권: 나는 이쪽이나 저쪽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담담히 말할 수 있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강: 앞으로도 뜻 깊은 활동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