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작년의 일이 되었지만, 지난 해 한국 문학‘판’에 의미가 작다면 작고 제법 있다면 있다고 할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중수교15주년이라고 해서 한중 양국의 작가들이 서로 교환방문을 하면서 우의를 다진 것이다. 이름하여 ‘한중문학인대회-한강에서 장강(長江)으로 장강까지, 장강에서 한강까지’라는 이벤트였다.
  10월에는 먼저 중국 대표단 일행, 곧 중국 문련문예계연합회(文藝界聯合會)를 줄인 말로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인들의 단체 및 중국작가협회 소속 시인들과 소설가들이 통역요원과 실무진행위원을 대동하여, 도합 22명이 한국을 방문, 서울과 전주에서 발표회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12월에는 그 답방으로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중국을 방문하여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를 돌았다. 예산이 거의 정부(문화관광부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된 이 프로그램은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주관 아래 진행되었다. 이는 그동안 있어왔던 몇몇 작가들의 개별방문이나 교류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 교류로서 첫 테이프를 끊은 행사인 셈이다.  

  한국대표단의 면면을 보자면, 고은·김광규·정양·정호승·김진경·안도현 등의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김원일·황석영·은희경·신경숙·김인숙 등 한국문단을 주름잡는 소설가들이 참여했으며, 중국에서는 우리에게는 <붉은 수수밭>(장이모우, 1988)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1987)의 작가 모 옌(莫言)을 위시하여 베이징 중문과 교수이자 소설가인 차오 원쉬앤(曹文軒), 루쉰문학상 수상작가인 천 잉송(陳應松) 등 중국의 각 성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 유 모는 한국외국어대 박재우 교수와 함께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한다는 직분을 핑계로 중국작가들을 맞았으며 한국작가들의 중국방문단 명단에 이름을 보탰다.

  ‘근대문학과 나’라는 제목으로 전체 발표회가 열린 이외에 한강의 유람선과 상하이의 와이탄(外灘) 선상에서 가진 시낭송의 밤은 성황을 이루었고, 때마침 열린 전주의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들 모임에 참석하여 힘을 싣는 이외에 각종 강연과 기자회견 등등, 중국 문련의 한 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발언을 빌자면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보통 발표회 참여 강도의 일곱 배”에 해당하는 강행군을 하면서 양국의 작가들은 자신의 문학적 고뇌, 한중 양국의 신문학이 처해온 현실 그리고 21세기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넓혔다. 작년은 때마침 한국의 출판계가 중국작가들의 소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앞 다투어 번역, 소개하는 바람에 중국 소설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린 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번의 한중작가교류는 만시지탄을 면치 못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이 행사가 한류가 중국 대륙에 진출하여 성가를 올리다가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낼 시점, 이른바 ‘포스트한류’라는 새로운 진단이 고개를 드는 무렵에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근자에 중국의 한 영향력 있는 일간지에서 한류의 진앙지 몫을 톡톡히 담당했던 드라마 <대장금>을 가리켜 최악의 드라마로 지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류는 안팎으로 협공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에서는 한류를 지속할 만한 똑 부러진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며, 외부에서는 한류에 대해 노골적으로 거부반응을 조직하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그 일간지인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가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이하 공청단)이 관장하는 신문이고, 공청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권력자인 후진타오(胡錦濤)가 가장 친애하는 세력이라는 점을 헤아린다면 문제의 뿌리는 의외로 깊을 수 있다.

  대안은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하다. 일방적인 문화적 주입은 필시 문화적 자긍심과 저력을 가진 상대방이라면 거부하거나 저항하기 마련이고, 거기서 이른바 ‘안티’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장기적인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상호 호혜적인 윈윈(WIN-WIN)의 자세를 견지하려는 노력이 대안일 것이고, 그 윈윈은 시야를 넓힐 경우 일본에까지 범위를 확장하여 쓰리 윈으로 펼쳐질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자면 기존의 한류는 대중문화가 주도하는 형국이었다. 거기서 '민족의 혼'을 자처하는 시인과 작가들은 이른바 '문학의 위기' 혹은 '인문학의 위기' 국면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많은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각국의 작가나 시인들이 기존의 낡은 틀에 안주한 채 새로운 독자나 관객의 요구를 외면한 사정도 있었을 것이며, 특히 우리의 경우 민족문학이라는 깃발이 알게 모르게 강제한 이념적 지평의 부작용도 없지 않다고 본다. 문학을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결과를 빚고 만 것이다.

  하지만 거울로 삼음직한 것은 16세기 영국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1616)는 이미 덴마크 왕자인 햄릿(Hamlet)을 자기 이야기 안에 끌어들여 “죽느냐 사느냐”라는 명언을 토설하게 만들었고, 영국에서는 제법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의 도시인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Antonio)의 이야기를 다루어 대항해시대의 세계모습 독자들에게 보여주었으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북유럽의 혈통을 지닌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를 남유럽의 그리스 출신 헬레네(Helene)와 결합하는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유럽의 하나 된 밑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말하자면 국가와 민족을 지킬 땐 지켜야 할 일이되 그것이 답답한 장애가 될 때는 위로 올라가 높은 시좌에서 넓은 지평을 굽어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앞날을 예견하는 작가의 몫인 것이다.

  작가와 시인의 몫이란 뭐니뭐니해도 상상력의 힘을 발휘하는 일이다. 그것은 역사를 짚되 역사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21세기적이다.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국가간 침탈의 20세기 역사를 넘어서는 인간의 새로운 탈바꿈을 구현해 보여주는 데 역사의 몫은 제한적이다. 독도분쟁이나 동북공정 등의 사단은 사실을 따지고 들어 서로 트집을 잡고 까탈을 부리는 것만으로는 21세기를 열 수 없다는 시사점을 제공했는지 모른다. 공은 자연스럽게 문학과 예술의 손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의 모습 거기서 살 인간의 모양새를 그리는 것은 모름지기 작가와 시인 등 예술가의 몫이다. 20세기를 약 20년가량 경과하면서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이 던진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은 20세기 세계문학의 우이를 가늠하는 말이 되었듯이 21세기 어느 시점에 어떤 시인의 입으로 21세기의 운명이 점쳐질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동방의 한 시인의 예언으로 빚어지지 않겠는가.

  앞으로 이런 그림이 될 것이다. 향후 15년 뒤 한중수교30주년이 되었을 때, 한중 양국 작가 아니 한중일 삼국작가가 상호교환 방문을 하면서 우의를 다지는 시점이 되면, 우선 한반도에서는 적어도 남북간의 철도가 뚫려 사람과 물자가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며, 중국에서는 양안의 장벽이 실질적으로 무너져 사람과 정보들이 자유로이 오갈 것이다. 따라서 그때는 한중일, 대만, 북한의 작가들이 교환 방문을 하느라 일정이 제법 복잡하고 바쁠 것이다. 그때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베이징(北京)에서 저녁은 도쿄(東京)에서 먹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대폭 늘 것이며, 방학이면 인천에서 카페리를 이용해 칭다오(靑島)를 거쳐 공자(孔子)의 고향인 취푸(曲府)로 답사를 떠나는 젊은이들의 행렬이 줄을 이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한국 작가들은 중국의 독자들 염두에 두면서 작품을 쓸 것이며, 중국의 작가들은 일본의 독자를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할 것이며, 일본의 작가는, 이미 그렇게 되었지만, 한국의 출판사가 주는 인세를 헤아리면서 작품의 얼개를 짤 것이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국경을 넘어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도 많아질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남의 나라 블로그들을 넘나들며 댓글을 다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며, 사이트에서는 만화가 한중일 삼국에 동시다발로 연재될 것이며, 국경을 넘나들면서 식당을 소개하고 평을 다는 식객들의 글이 어지러이 모니터 화면을 장식할 것이다. 
그때쯤 가면, 한류나 일류나 중류가 각기 따로 노는 격이 아니라 한중일 삼류가 함께 삼각패스하면서 서방으로 동방 혹은 동북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길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배기 탈근대이고 문화와 인문이 주도하는 탈근대이며, 새로운 동북아발 르네상스가 거기 어디쯤에 똬리를 튼 채 자리 잡고 일 것이다. 내기를 걸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