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가 그간 기행한 백두대간에서 제주도에 이르는 긴 여정을 담은 기행첩(紀行帖)을 공개했다. 여기에서 그는 생각을 글로 나타내고 그림으로 여정을 확인시킴으로써 관객들이 쉽게 동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기행보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느낌이나 생각의 표현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건 잘 알려진 풍경이건 간에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독특한 견해나 감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이종구는 선조들의 얼이 깃들고 우리가 삶을 영위하며 자손들이 일구어갈 이 땅과 이에 기탁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애정으로 관조한다. 과거 캔버스는 물론 쌀자루, 헌옷, 밥상 등을 지지대로 삼아 리얼리즘 미술이 지닌 형식적 한계를 극복했듯이 이번에는 백두대간과 그곳에 서린 인간적 체취를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함으로써 단조로운 서정에 그칠 수 있는 기행문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조망한 <강산>이나 <천지> 등은 광활한 태백준령의 웅혼(雄渾)한 면면을 표현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에서 일탈하는 추상회화 고유의 분방함을 드러내는 이종구만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고란사>나 <지리산 법계사> 등 소경풍경에서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하여 그 땅의 의미와 역사를 반추케 한다. <태백산 정암사>의 경우 암자와 탑, 보름달을 수직으로 배치하여 캄캄한 한밤중 열린 문 사이로 드러나는 암자의 찬연한 금빛벽면을 찬미하고 있다. 작가는 부처님을 대신한 암자의 금빛벽면을 탑색과 달빛에 견주면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도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의 순수한 표현의지에 감동할 뿐 아니라 이 땅에 서린 역사의 향취와 함께 극락과 사바의 경계선상을 배회하던 수많은 선승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숨가쁜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관심도 여전함을 느낄 수 있다. 그중 수년 전 두만강변을 여행하면서 만난 중국동포를 그린 <북으로 가는 길>이 눈에 띤다. 여기서 작가는 정기적으로 북한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북한주민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지표로, 북한으로 가져가는 보퉁이를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투먼(圖們)의 두만강변 국경대기소에서 북한으로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이모와 조카 사이라는 이 중국동포들은 쌀, 잡곡, 옷, 텔레비전 등을 꾸린 다섯 개의 보퉁이를 내려놓고 하루에 한 번 북한으로 가는 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척들에게 선물할 물건과 장사할 물건들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북한을 오간다고 했다. 불과 100여 미터 정도의 다리를 건너면 곧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인 것이다.-중국, 투먼에서”

  이러한 접근방식은 ‘민족적 현실과 민중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며 꾸준히 주변의 삶과 땅의 역사 그리고 민족적 현실에 대 통찰하고 문제를 제기해 온, 그의 지난 20년간의 작업과 부합한다. 주지하다시피 이종구는 피폐해져가는 고향의 농촌적 삶을 동시대 역사의 흔적들과 대비시키거나, 고향사람들의 모습을 초상화 형식을 빌어 재현해냄으로써 ‘존재와 부재’사이에서 좌표를 잃고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들추어오지 않았던가? 결국 이종구의 여정은 이 땅과 역사의 의미, 그리고 그곳의 삶에 대한 되물음을 통해 현실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고향인 서산 ‘오지리’충남 서산시 대산읍 소재를 그리기 시작한 것처럼 그의 보헤미안적 여정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추체험(追體驗)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신의 체험처럼 느낌된 현실인식을 가능케 하는, 보다 사려 깊은 예술을 이루기 위한 그만의 방법으로 읽혀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