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거친 입자, 강한 콘트라스트, 과감한 화면구성, 더 들어갈 수 없을 만큼의 클로즈 업, 담대한 확대, 불연속적인 의미 전개, 매우 낮은 앵글, 깊은 원근감(perspective), 심한 광각 렌즈로 인한 왜곡감, 흔들림, 불명확한 초점,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선택한 필름과 현상 태도로 인한 이미지의 부정확성, 작렬하는 듯한 무의지적 순간포착 그리고 시-지각의 모호성.

  오래 전부터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을 보면서 느껴왔던 생각의 단편들이다. 보통의 사진집보다 조금 더 큰 그의 책들을 보면서도, 여기 저기 전시장에서 보아왔던 크지 않은 사진들에서도 위에 열거한 시-지각적 느낌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 느낌들은 같은 사진을 하는 내게 늘 커다란 궁금증을 유발하곤 했다. 과연 이처럼 강한 사진들이 이십대 후반의 작가가 할 수 있는 작업인가? 아니면 이십대였기에 가능한 일인가? 나의 경우는? 그리고 우리의 경우는?
사진을 아니 모든 시각적인 예술을 보고 이해하는 일은 결국 ‘그것’에 ‘내’가 결부되어야만 확실해질 것이다. 그(작가)가 남긴 작고 섬세한 표현들이 가슴을 치려면 내 코를 통해 세세한 호흡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 호흡의 끝에서 그것과 나와의 대입이 일치하지 못하면 화합은 깨진다. 의심 혹은 좌절이 일어난다.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는 어쩌자고 이런 담대한 작업을 하였을까?

  윌리엄 클라인(Wiliam Klein, 1928~)을 세계적인 사진가로 인정하게 만든 것은 대부분 그의 이십대 후반 작업들이다. 뉴욕(1955)에서, 로마(1956)와 모스크바(1959)에서 그리고 도쿄(1961)에서, 도심을 공격하는 듯한 그의 작업들은 탄생 즉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당대의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그랬던 것처럼 긍정적인 반향만이 아니라 거부와 거절과 질시의 반향 또한 매우 거셌다. 그의 작업들 역시도 동시대인의 시각규준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기에 오히려 이해‘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역시 라이카Leica, Leitz(독일의 지방이름)와 camera의 합성어로써 35mm카메라의 대명사로 오랫동안 자리해옴를 사용했다1). 라이카! 당시의 라이카란 지금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했을 터이다. 작고 아름다워서, 그리고 대형 카메라와는 사뭇 다르게 가볍고 행동이 편리하기도 했겠지만 그 카메라로 스냅(snap)순간촬영을 하는 것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을 고스란히 사진에 덮어씌우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점이 바로 의심이 갈 만큼 위대하게 보이는 부분이다.
  문득,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이 서울로 왔다. 청담동에서 종로의 신문로로 확장해 온 뤼미에르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렸다. 갤러리니 당연히 상업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이처럼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일은 역시나 ‘대민 봉사’에 가깝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들을 일반인이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적으로 사진수업을 받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보여주는 ‘시각의 혁명성’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그의 작업(1950년대) 이전의 사진 역사를 깊이 공부해야 할 터이다. 물론 다른 경우도 그러할 수 있겠으나, 특히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에 와서 현대 사진(contemporary photography)의 문이 열렸다고 하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짧은 지면에 세세한 설명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사진을 제작하는 태도가 그 이전과 이후 사뭇 달라진 지점은 소개해야겠다. 카메라 너머 ‘대상의 형상’과 그 ‘기호성’에 의미를 두었던 1950년대 이전의 사진관(觀)으로부터 카메라를 쥔 작가의 의식이 대상의 사회적 함의나 기호성과는 관계없이 주관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부분은 강조하고 싶다. 이 점이 1950년대 전후의 사진을 구분하는 중요한 관점이며, 이러한 방식의 사진 제작으로부터 현대사진의 문이 열렸음을 여러 이론가들을 밝히고 있다.
이번 뤼미에르에 전시된 윌리엄 클라인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의 초기 작업으로 뉴욕, 파리, 로마, 모스크바 등지에서 촬영한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시기적으로 조금 늦은 패션사진이다. 하나는 매우 공격적인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며, 다른 하나는 로우 앵글(Low angle)이 강조된 실험성이 두드러지는 상업사진들이다. 모두가 다 35mm카메라로 작업한 것으로 대부분이 입자가 매우 거칠고 앵글의 각도가 과감하게 강조되었다. 게다가 광각 렌즈가 주를 이룬다. 또한 카메라를 눈에서 떼어내 손끝으로 옮긴, 소위 노 파인더(no finder)기법화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촬영하는 기법의 주관적이면서 매우 자유로운 앵글은  1950년대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에 와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다. 대상을 향한 객관적인 재현 혹은 있는 그대로의 드러냄에 큰 의미를 두었던 그 이전의 작업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인 것이다. 비슷한 작업태도를 가진 까르띠에 브레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안에 구성되어진 대상과 그 대상을 프레임으로 절단한 작가의 절묘한 솜씨는 잘 드러나 보이지만 작가의 감정전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는 철저하게 카메라 파인더 뒤에 숨어 렌즈 건너편의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관찰하였던 것이다. 마음의 손은 건네지 않으며 말이다. 때문에 사진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의 켜켜란 그 대상의 외피적 형상일 뿐 상황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아니다.
그러나 윌리엄 클라인과 로버트 프랭크에 와서 이러한 사진 또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변했다. 이 둘은 카메라를 ‘관찰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개입의 도구’로 사용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상황과의 관계에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키고 그에 따라 작업의 방식을 주관적으로 운용한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가 구사한 기울어진 화면과 포커스의 흐림, 낮은 앵글과 잦은 역광촬영 등은 이러한 방식의 한 전형을 이룬다. 동시대를 살았던 윌리엄 클라인은 한 발 더 진도를 나간 듯 보인다. 특히나 심한 광각렌즈의 사용과 과감한 클로즈업은 작가의 격렬한 감정의 발로를 순전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패션사진에 와서도 이러한 혁명성은 여전히 강조되어있다. 스튜디오 안보다는 일상의 거리에서 촬영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클라인은 패션사진 마저도 35mm카메라를 사용하였으며, 광각렌즈를 이용해 거리감이 매우 강조된 사진을 만들어낸다. 이 또한 동시대의 다른 상업 작가들과 비교해 실험성이 매우 강한 특이한 작업임을 알 수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진에 있어서 현대성이란 여타 예술의 장르와 사뭇 다르다. 신생 장르이기도 하거니와, 회화에 종속된 시각이미지의 하나로 오해?폄하되던 터이라 자체의 철학과 태도가 줄기를 이루기 무척 어렵다고 인식되어있다. 회화의 역사에서 1950년대란 2차 세계대전을 지나 이제 새로운 예술의 형식인 팝아트가 태동하던 그런 시기이다. 그러나 사진은 그 자체가 팝(popular)이었던 관계로 사진 내부 이미지로써의 팝은 따로 없다. 애써 말하자면, 오히려 사진이 가진 사진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프랭크와 클라인 같은 작가들이 나타나면서 동시에 회화나 조각을 하던 예술가들이 사진을 자신들의 표현 방식의 하나로 수용했던 시기이다. 이 부분이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을 잘 바라보아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사진으로써 사진임을 강조하여 여타의 회화와는 사뭇 그 방식과 지향점을 다르게 가지는 그런 방식 말이다. 아마도 모든 예술품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이 시점의 일차 문헌이라고 할 수 있는 원본 사진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처럼 ‘사진성/사진의 물질성’에 충실했던 터이기도 하다. 이것이 윌리엄 클라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진의 현대성이다.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