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과 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무덤들은 매혹적이다. 죽음을 격리시키지 않고 삶이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반대로 무덤이 둥글고 따스하게 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껴안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봉분들은 밥그릇을 닮았다. 우리 조상들은 죽어서도 산 사람들을 먹여 살릴 밥을 걸판지게 한상 차려놓는다.
  김윤식의 『청어의 저녁』은 시적 이미지로 그려진 『자산어보(玆山魚譜)』(1814)정약전이 쓴 어류학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집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출현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시집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우리나라 들판과 무덤이 떠오른다. 여기 나오는 물고기들은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아니라 저녁 찬거리로 나온 청어, 오지마을 어귀의 빈집 담벼락에 널린 자반고등어, 술안주로 석쇠에 오른 꽁치들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어족(魚族)들은 한 마디로 바다의 무덤들이다. 그러나 떨어져 나온 물방울 하나에도 대양(大洋)이 간직되어 있듯 물고기들은 축소되지 않은 생명력으로 충일하다. 어떻게 무덤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마른 새우들은 고요한 감정의 빛깔을 가지고 있다. 소리 없는, 생전의 무수한 아우성을 흐린 황혼의 광택으로 감싸고 있다./영혼을 꿈꾸는 고독한 굴장(屈葬)의 자세―궁륭(穹?)처럼 부드럽게, 빛나면서 새우들은 C자로 구부린다.”「새우들은 구부린다」부분

  죽음과 삶이 그러하듯 물과 불은 대립적 요소로 되어 있다. 하지만 물과 불은 생명에 필요한 열과 습기이기 때문에 궁극에서는 하나가 된다. 말린 새우는 죽어서도 여전히 몸뚱이에 ‘어스름한 광택’을 지니고 있다. 죽음과 삶이 한 몸이 된, 불타는 물의 흔적으로 ‘생전의 무수한 아우성’과 ‘흐린 황혼의 광택’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새우는 말라 죽어서도 파도처럼 생성과 유전(流轉)을 거듭하는 ‘C'자 속으로 말려들고 있다.

  “지금까지 몇 마리쯤 청어의 몸을 먹었을까. 내 몸뚱이는 이미 그의 살로 가득 차 내 것이 아닐지 모른다. 영혼도 허물을 씻고 어디론가 맑게 헤엄쳐 가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청어 앞에서」 부분

  식사란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한 자리에 둘러앉아 먹음으로써 삶의 외로움을 견디게 하고 죽음과 삶을, 나와 너를 하나로 묶어준다. 식사를 하는 자리는 너와 내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닫는 여행으로의 초대이다.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더라도 도시사람들처럼 빠르게 허겁지겁 먹는 것은 그만큼 영혼이 결핍된 증표이다. 옛 어른들이 음식을 꼭꼭 씹어 천천히 먹으라고 한 까닭은 건강 때문만이 아니라 식사 시간이 공동체를 깨닫는 깊은 영적 체험의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낚인 청어는 우리들의 몸속으로 들어와 우리들의 살이 되고 고립된 영혼을 해방시켜 다시 맑은 바다를 꿈꾸게 한다.

    “이를테면 바다의 살점을 굽는 것인데 그 방법은 간단하다. 배는 가르지 않고 몸 전체에 슬쩍 굵은소금을 뿌려 두었다가 얼마 후 석쇠에 올려굽는다. (중략) 머릿속에서, 뱃속에서, 그리고 가슴 속 어느 가느다란 실핏줄 그 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다 익은 것이다.”「꽁치 굽는 법」부분

  위 시에서는 연탄불 위에서 바다가 끓고 있다. 밥물처럼, 석쇠 위 꽁치의 몸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되고 있는 자연을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시간인 것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죽음이란 역설적으로 삶이 최소로 응축된 무덤임을 자각하는 행위이다. 위 시에는 그것이 바다와 물고기의 관계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물고기가 ‘바다의 살점’이라는 것은 죽음이 삶임을, 곧 바다가 물고기임을 뜨거운 상징으로 전해준다. 무엇보다 이 시집이 빼어난 것은 서해바다의 뻘물과도 같이 구체적 삶을 진득진득하게 끌어안고 있으면서 어족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는 점이다. 우주적 식사가 근엄한 자리이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삶의 한 풍경이 진”(「부두 풍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