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문화인물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미학에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 그림에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서예에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1911~1976)과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 1925~1975) 등이다. 인천문화재단이 많지 않은 자본금으로 출범하여 인천문화 뿌리찾기의 출발점으로 우현과 검여를 선정하고 그들의 업적과 자료 및 작품들을 끈기있게 분석하고 전시, 출판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우현 사업으로 2005년 고유섭탄생100주년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과 <고유섭의 생애와 연구자료>전을 개최하였고, 현재 열화당에서 우현 전집을 출간하고 있다. 이번에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는 우현 전집 10집 중 3권이 선을 보였다. 검여 유희강 사업으로 특별전을 열어 그의 서예 세계를 조명하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검여서예관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 문제는 지난번 전시회를 통해 검여 작품의 소재가 거의 파악되었고, 유족도 시립미술관에 검여의 공간을 마련해주면 소장품을 기증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시립미술관이 생기면 우현에 관한 유물이나 그의 저술 자료들도 시립미술관에 소장하여 후학들이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인천 시립미술관은 언제 지을 것인가. 인구 몇 십만이 되지 않는 군소 도시에도 있는 미술관 하나를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고유섭은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전승문제」라는 글에서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을 무기교의 기교, 무관심성, 비균제성(asymmetry), 구수한 큰 맛, 어른 같은 아해 등으로 지적했다. 「조선 미술 문화의 몇 낱 성격」에서는 멋, 구수함, 고수한 맛안으로 응집된 풍미 또는 씹고 씹어야 나오는 맛, 맵시, 적조미(寂照美) 등을 꼽았다. 적조미는 그것이 예술적 고양을 얻었을 때 비로소 최고의 생명적 내오(內奧)의 깊이를 얻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애통한 곡조로 떨어지게 된다. 또한 비균제성, 무관심성 같이 철저함이 부족한 이유는 일찍이 도시사회나 시민사회를 이루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그리고 구수한 큰 맛도 중국의 견실한 미술처럼 철저함이 결여된, 또는 치밀하고 작은 것을 이루어 내지 못한 ‘큰 맛’이라는 것이다. 예로 봉덕사종(奉德寺鍾)771년 완성, 국보 제 29호 일명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을 그 큰 맛의 성공작으로 본다. 이는 결국 조선의 공예 등이 근대적 의미의 예술품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이르는 것이다. 또 우현은 전통의 전승에 대해, 수승(秀勝)한 것은 더욱 확충하고 열악한 면은 깨끗이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우현은 조선 고대사회의 구조가 견실하지 못하여 인위적, 계획적, 천재주의적 치밀함이 결여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완벽성의 포기 내지는 미숙함으로 인해 민예의 수준에 머물고 있으나, 그것이 오히려 하나의 특질로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고 아해의 명랑함과 같은 독특한 개성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우현의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부여는 오늘날 우리의 건축, 미술, 공예 등이 처한 현실 과 진로 모색과 관련해 깊이 음미해 봐야할 화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미술판에는 서구 중심의 미적 가치와 우리의 태생적 미감과의 간격에서 파생된 혼란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무기교의 기교, 무관심성, 비균제성 같은 자연스러움에 신뢰를 두고 자연성을 살리되 표현에 대한 과함을 억제하는 표현법은 서양의 수직적, 구축적, 제국적 공격성을 극복할 대안일 수 있다. 우리의 백자, 분청자기가 보여주는 태토(胎土)질그릇이나 도자기의 밑감이 되는 흙, 바탕흙와 유약의 상보(相補), 또 우리의 정원이 보여주는 자연과 돌담의 공존 같은 상생의 미학적 함의는 매우 크다. 그러나 「조선 문화의 창조성」에서 우현은, “종족의 혼효(混淆)와 문화의 교류가 복잡하게 유동하고 있는 지구 위에서 모방과 응용을 떠난 순수 창조란 것은 한갓 청교도적 결벽성을 가진 공상가의 추상에만 허용될 것이요……”라 하여 국수주의적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우현이 경성제국대학에서 일본 학자들과 같이 공부한 시기는 조선 미술 연구자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1867~1935),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 등이 활동하던 시기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무기교의 기교, 적조미 등 고유섭의 미관(美觀)을 야나기의 무애(無碍)의 미, 곡선의 미, 비애의 미, 무심의 미와의 유사성을 들어 비판적 분석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고유섭과 관련한 비평적 연구는 우리 미학과 미술사학의 발전을 위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우리 미술사의 불모지에서 그 귀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여 이룩한 우현의 조선미술사 초고들은, 지금의 우리 미술사를 있게 한 밑그림으로서 충분하다는 인식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미술사학자로서의 탐구정신이 없었다면, 또 미학적 해석이 없었다면, 우리 미술사는 다른 나라 학자들의 기록에만 의존해야 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창의적 삶에 대한 자부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또 수학, 물리 등 기초과학의 몰락을 염려한다. 무차별적인 개발 논리에 따른 자연파괴, 문화재 회손은 결국 삶에 대한 정신적 황폐를 가져온다. 우리는 또 삶의 가치회복과 선진국 진입을 말한다. 그러나 문화적?인문적 가치의 고양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인문학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고(故) 저술의 발굴과 체계적 정리는 그래서 의미있는 일이다. 우현 고유섭 전집이 우리 미술과 미술사학 및 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 미학자로서, 독서자로서 우현 고유섭 전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