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미국드라마의 준말의 융단폭격으로 21세기형 아메리카니즘의 문화정치가 성업중이다. 한국의 20대 중 45% 이상이 ‘미드폐인’미드에 극단적으로 심취한 사람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몰입하는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범죄과학수사와 관련된 서사들이다. 세계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 <CSI>원제 <Crime Scene Investigation>의 약칭는 미드의 대표주자이자 과학수사드라마의 원형으로서 수많은 ‘창조적 아류’들을 낳은, 포스트 9.11 시대 대중문화의 기린아다. 한국드라마는 미드의 스펙터클에 길들여진 대중들의 눈높이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미드의 인프라가 화려한 스펙터클과 엄청난 제작비만은 아니다. 미드의 진정한 인기비결은 서사구조의 치밀함이다. 과연 한국드라마는 미드의 치밀한 서사구조에 대적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을까.
  드라마 <별순검(別巡檢)>대한 제국 때에, 경무청이나 경위원에 속하여 제복을 입지 아니하고 비밀 정탐에 종사하던 순검은 그런 의미에서 <CSI>를 벤치마킹하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개척한 작품이다. 세계 최대의 자본을 가진 미국드라마는 가지지 못했지만 한국작가들은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한국의 역사라는 ‘평범한’ 인프라였다. <별순검>의 작가들은 한국의 역사라는 심상한 소재로 범죄수사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개화기아관파천(1896)을 전후로 한 시기 당시의 범죄수사를 둘러싼 미시사 자료들을 현재의 서사적 에너지(미드를 의식하면서도 미드를 넘어서려는 작가적 고민)와 접목시킨 것이다. <별순검>은 기존의 왕조중심 사극에서 보기 어려웠던 개화기 조선의 풍속과 장삼이사(張三李四)이름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미드적인 기법과 스펙터클을 차용하여 참신하게 그려내고 있다. <별순검>은 퓨전사극의 장점과 미드의 장점을 융합시킨 한국형 과학수사드라마다.
  <별순검>에 드러난 개화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구시대의 풍속과 근대적 풍속이 다채롭게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한쪽에서는 풍수지리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묘자리 분란으로 살인이 일어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일본의 상권이 침투하면서 토착자본을 파괴하기 위해  조선상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백정은 신분질서가 붕괴되는 사회적 변화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기차와 사진이 첫 선을 보이고 우편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는 시대이기도 했지만, ‘백정각시타기’백정의 여자를 소나 말을 타듯이 올라타고서 부리는 놀이라는 구시대의 폭력적 유물이 잔존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너도 정신 바짝 차려. 신분제도 폐지됐겠다, 이제 돈이 곧 신분이 되는 시대가 올 게야.”라는 급진적 의견이 존재하는가 하면, “담뱃대 빼문다고 백정이 백성 되냐?”라는 구시대적 견해 또한 공존한다.
  또한 <별순검>이 다루고 있는 개화기는 지금은 잊혀진 소외된 인물군과 풍속이 존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관파천 당시 ‘주인 없는 궁궐’에서 궁녀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별순검>의 흥미로운 지점은 궁녀살인사건을 통해 ‘범인’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없었던 궁녀들의 소외된 삶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고종(高宗, 재위1864∼1907)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떠나버린 궁에서 주인도 없이 하인 노릇을 해야 하는 궁녀들은 구슬픈 푸념을 읊조린다. “전하도 안 계시고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전하는 옷이고 음식이고 다 아라사(俄羅斯)러시아의 음역어공사관에서 해결하시고 저희가 만든 것은 아예 받지도 먹지도 않으신다 하지 않습니까.” 또한 <별순검>이 묘사하는 개화기의 신문물은 문명의 매개일 뿐 아니라 역사적 트라우마에 연관되어 있다. 선교사 알버트가 향원정(香遠亭)경복궁에 있는 누각에서 가로등을 살피는 모습을 보면서 별순검들은 감탄과 탄식의 대사를 읊조린다. “저것이 등불을 쓰지 않고도 불이 들어오게 한다는 그 남폿불이란 겁니까!” “을미년(1905)에 중전마마 그리 되고 밤에 불을 밝히지 않고는 잠을 못 이루신다 하여 미리견국(美利堅國)미국에서 들여온 것이지.”

  <별순검>에서 개화기의 신문물은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도 한다. 순검들은 선교사가 찍은 사진을 보며 신기해 하고, “사진이란 게 이렇게 생겼구마!” “근데, 이것이 애기들 골을 파서 만든다는 소문은 뭐야?”라는 식의 잡담을 나누는데, 바로 이 사진이 대낮 총기살인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된다. 당시 근대 과학의 세례를 아직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증거분석력은 경이롭다. 예를 들어 ‘꼭두서니’꼭두서닛과의 여러해살이 덩굴풀는 시신의 상흔을 위장하려는 자들이 사용하는 염료였는데 별순검 수사팀은 이 정도의 위장술쯤은 쉽게 감별해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개화기에는 있었던 것’, ‘<CSI>에는 없지만 <별순검>에는 있는 것’, ‘헐리우드에는 없지만 한국에는 있는 것’을 조금씩 찾아나가는 성실한 소재발굴은 <별순검>을 동시간대 케이블TV 시청률 1위에 올려놓았다. 개화기의 과학은 비록 <CSI>가 보여주는 최첨단 근대과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CSI>식의 과학과는 다른 독특한 희소성이 있다. 당시의 과학은 서구적 기준에 물들지 않은 토착적 과학으로서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봐도 감탄스럽다. 게다가 당대의 과학이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색다른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스타급 배우나 엄청난 제작비 없이 충실한 서사구조와 탄탄한 고증만으로 <별순검>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개화기’를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기억’의 서사로 복원해냈다.
  기계적으로 미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미드의 핵심적 요소를 한국적 맥락으로 응용한 재치는 <별순검>의 미덕이다. 플래시컷(Flash Cut)극적인 인상이나 충격효과를 주기 위해 삽입되는 짧은 화면으로 신원미상의 범인이 저지른 범행과정을 상상적으로 복원하는 이미지, 시체를 부검할 때 시체의 크고 작은 상처를 생체해부 그래픽화면으로 재현하는 방식 등은 <CSI>류의 범죄수사물과 비슷하다. 행동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며 흔적은 반드시 과학으로 복원된다는 믿음에 기초하는 수사방식도 <CSI>와 <별순검>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CSI>와 <별순검>의 차이는 범죄와 범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CSI>에서는 악의 기원인 어떤 특정한 ‘악한 부류’(범인)를 잡아가두는 것이 지상목표다. 그러나 <별순검>은 범인이 범죄를 만들어낸다는 공식에서 살짝 비껴난다. <별순검>은 범죄를 범인의 소유물로 귀속시키지 않는다. <별순검>은 범죄의 원인을 범인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초점을 맞춘다. <별순검>은 때로는 범인의 눈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입체적 시선을 유지하며, 범인을 잡아가두는 데 그치지 않고 범행의 진정한 동기가 역사, 사회, 정치의 네트워크가 총체적으로 이루어낸 불협화음임을 밝혀낸다. 때문에 별순검 수사팀은 범인을 잡고서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회의 무력감을 느낀다. 
  <별순검>의 감동은 바로 21세기 대중문화의 성공신화인 <CSI>와의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에서 우러나온다. 이 드라마는 범인을 그저 세상에서 도려내야할 병원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별순검>은 범죄자의 상처와 그들을 추적하는 자의 상처가 불현듯 무의식적으로 연대하며 결국 ‘그들도 우리처럼’ 존재의 한 귀퉁이가 부서져있는 허약한 존재임을 드러내며 끝을 맺기 때문에 짙은 여운이 남는다. 예를 들어 과부를 강간하고 연쇄살인했던 파렴치범을 마침내 잡았을 때, 별순검 수사팀은 범인보다 더 끔찍한 ‘이 사회의 불감증’을 깨닫는다. “과부된 지 20년입니다. 겁탈사건 때문에 찾아온 순검도 수십이었지만 범인 잡아넣었다는 말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망사건보다 겁탈사건이 한 수 아래란 말씀은 마십시오. 겁탈만큼 무서운 살인무기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개화되었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분열과 갈등을 거듭했던 시대.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과부재가가 허용되었지만 여전히 세포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차별과 억압의 습속들. <별순검>은 단지 범인잡기 두뇌게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 그 자체보다 더욱 끔찍한 당대 사회의 불합리와 불평등, 나아가 아직 완전한 근대화가 요원했기에 수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말랑말랑한’ 시대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별순검>은 미드전성시대에 한국의 드라마 콘텐츠가 도달한, 소박하지만 혁신적인 대안적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