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4·3사건이 발발한 지 60주년을 맞았다. 4·3사건으로 분열과 갈등,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상생의 논의를 새롭게 펼쳐야 할 단계이다. 직접 체험했던 세대들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의 계승과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4·3유족회를 비롯한 관련단체는 지난 해부터 어떻게 60주년을 맞을까 고민해왔다. 제주를 평화와 인권의 진원지로 각인시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아픔을 공유하는 동아시아 연대를 위한 국제학술대회, 재일동포 방문, 청소년 참여, 4·3 혼백 모시기 등을 골간으로 삼아, 단순한 기념을 넘어 기억하는 방식을 모색했다.

희생자 수가 3만 명이라고도 했고, 8만 명이라고도 했다. 심지어 몇십 명인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푸대접을 하기도 했다. 폭동이라고도 했고, 항쟁이라고도 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도 했고, 미군정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도 했다.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게 없었다.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시각이 천차만별이어서, 마을 간, 계층 간 분열로 이어졌다. 말하는 입에도, 듣는 귀에도, 보는 눈에도 자물통이 채워졌다. 그러기를 40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 ‘빨갱이, 폭도라는 누명을 벗겨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20세기 중반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특별법이 제정, 공포된 것은 21세기 벽두인 2000년 1월이었다. 1만 5천여 명이 희생자로 결정되고,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정부의 사과, ‘세계평화의 섬’ 지정 등 음지에 묻혔던 역사가 양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4·3평화공원 조성도 많은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과거사 문제해결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3사건 60주년을 맞는 올 초부터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행정자치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통·폐합을 검토한다는 소식이었다. 거기에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포함되어 있었다. 급기야 지난 1월 21일, 4·3특별법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한나라당 의원 130명이 주축이 되어 제출한 개정법률안은 4·3위원회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 통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4·3사건 관련단체와 유족들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며 분노했다. 국가폭력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 청산보다 합리화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책임자 처벌과 배상은 처음부터 배제하고 진상조사에 기초한 위령사업 위주로 마감하려고 하고 있다. 평화재단 설립, 4·3 희생자 및 유족의 추가결정, 4·3평화공원 완공 등 4·3 관련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위원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에도 서둘러 폐지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비단 이뿐만 아니다. 올해 4·3 관련예산을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종합심사의견서가 전해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부차원에서도 재단기금 출연 등 지원에 인색하더니, 이제는 4·3사건 문제해결에서 발을 빼겠다는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4·3위원회 폐지문제가 불거졌을 때, 유족들은 다시 한 번 분노했다. 두건을 쓰고 상여를 매고 궐기에 나섰다. ‘무자년(1948년)에 무자비하게 죽이더니 무자년(2008년)에 또 다시 죽인다’고 항의하며, 60주년 위령행사 거부, 총선 심판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여러 단체들 역시 성명서와 항의 방문을 통해 위원회 폐지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결국 4·3특별법 개정법률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다루지 않기로 여·야가 합의하여 가까스로 존치되었다. 그러나 4월 총선이 끝난 지금, 앞으로 정치권 재편이 이루어지면 이 문제는 또 다시 불거져 나올 것이다.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당초 4·3위원회 폐지문제에 대한 대응논리에 설득력이 모자라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조직을 슬림화하려는 새 정부의 입장과 제주도민의 정서가 어긋난다는 것이 위원회 존치 명분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4·3문제 해결을 위해서 두 가지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첫째, 위원회가 존치해야 하는 확실한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고, 둘째는 폐지문제에 대한 대안모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과거 청산의 기준으로 ‘주아네 보고서’를 거론한다. 유엔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이었던 주아네(Louis Joinet)의 최종보고서(1996)는 국민 전체가 진실을 알 권리, 조사위원회의 구성과 활동보장, 진상조사기록의 보존과 공개, 책임자 처벌, 공소시효·사면·비호권의 배제와 제한, 국가배상, 국가의 상징적 조치, 재발방지 등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4·3 문제해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주아네 보고서’에 대입해보면, 국가의 피해 배상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추념일 지정도 형평성 운운하며 난색을 표명했으며, 책임자를 처벌한 사례도 없다. 60주년을 맞는 올해도 ‘폭도’니, ‘폭도공원’이니 해묵은 이념을 내세우는 세력이 존재하는 걸 보면 아직 해결에 이르기까지는 요원하다.

바이체커(Richard F. von Weizsacker) 전 독일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40주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자는 또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 이 말은 4·3사건 60주년을 맞는 지금도 유효하며 새 정부가 귀담아 새겨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