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청와대로 가다보면 삼청동으로 들어서는 작은 도로가 나온다. 이 샛길은 ‘이상한 나라’로 인도하는 통로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 도로를 메운 자동차,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한 가운데, 한 템포 느린 삼청동이 있다. 그런데 이 ‘이상한 나라’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안고 찾아간 삼청동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이정표였다. 부엉이박물관, 닭문화관, 실크로드박물관, 세계장신구박물관, 장난감박물관 등의 장소들은 이름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정표의 안내를 따라 먼저 부엉이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삼청동 카페길을 지나 삼청공원 쪽 좁은 주택가 골목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아이보리색 벽은 넝쿨로 덮여 있고, 돌로 만들어진 부엉이 조각상이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진열장은 유리로 된 부엉이인형, 조각상, 돋보기, 피리 등으로 빼곡했다. 천장과 벽면은 포스터나 시계, 그림, 벽걸이 자수 등으로 장식했고, 중앙의 나무 테이블에는 부엉이를 직접 그려볼 수 있는 색연필과 귀여운 부엉이스탬프도 준비해 두었다. 일본식 소품가게를 연상시킬 만큼 아기자기한 구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치바(千葉)현과 미야기(宮城)현의 부엉이박물관을 참고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은 부엉이 마니아인 배명희씨가 30여 년 동안 2000여 점의 수집품을 모아 2003년에 개관한 것이다. 부엉이는 지혜와 공예의 수호신 아테나(Athna)의 친구로 알려져, 지혜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왕검이 치효존()이라는 부엉이를 체제 아이콘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오는데 주인이 손수 그린 약도를 내주었다. 여기 말고도 가볼 데가 많다는 의미였으리라.

가회동 쪽으로는 닭문화관이 있다. 닭이라니,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놓은 걸까.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려 북촌방향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닭문화관을 찾을 수 있다. 1층은 닭과 관련된 수집품을 진열하는 곳이고, 2층은 상설전시관이다. 요즘 2층에서는 2006년 말 개관 이후 네번째 기획전시인 〈닭 생활문화展〉을 열고 있었다. 그림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닭 머리 형상을 나무에 그려 넣거나 새긴 작품들이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상여를 만들 때 처마 네 귀퉁이에 장식한 것이라고 한다. 이름 없는 장인들의 솜씨와 상상력에 놀랐다. 화려한 색상으로 용맹함을 강조한 것도 있고, 피카소 뺨치게 추상적인 것도 있었다. 또 어떤 것은 청동색의 인도풍이었다. 예부터 닭은 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닭의 붉은 벼슬은 관모[文]를 상징한다. 따라서 민화에는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이 닭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관직을 준비하는 선비의 방에 닭 그림을 거는 풍습도 생겼다. 또 닭은 싸움을 시작하면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이래서 닭은 무(武)를 뜻하고 용(勇)을 뜻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닭은 가족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 조상들은 인(仁)과 신(信)을 배웠다. 이런 닭을 상여의 꼭대기에 장식해 망자의 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실크로드박물관에서는 옛 총포와 그릇, 유리공예, 토우 등을 전시하고 있다. 삼청동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카페길과 멀리 인왕산이 한눈에 보인다. 언덕 아래 세계장신구박물관에서는 각국의 다양한 장신구들을 볼 수 있고 카페길의 장난감박물관에서는 사람크기만한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쏘기도 한다.

사람들이 삼청동에서 보는 것은 골목마다 아담하게 들어선 한옥들이거나 고개를 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하늘,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인왕산의 아름다움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을 찍거나 데이트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여성들이다. 대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 세대의 여성들은 자신의 취향을 위한 소비를 주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유행을 따르는 데 무작정 열을 올리지도 않는다. 전통 나염으로 만든 실크스카프를 사면서, 커피를 주문할 때는 “디카페인” 혹은 “생크림은 빼고요”하는 식의 기호와 취향이 분명하다.

‘대중화’한 보보스(Bobos)족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s)의 합성어로 부르주아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보헤미안의 감성적 자유로움을 지닌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문화시장의 강력한 소비주체로 등장한 이들이 삼청동에서 찾는 것은 무엇일까? 열쇠는 작은 박물관들의 번성에 있다. 일반적인 박물관들이 교육이나 계몽 같은 공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삼청동의 작은 박물관들은 수집가와 수집품에 얽힌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이 작은 박물관의 설립자들이 대개 PC통신의 대중화와 함께 등장한 마니아들이란 점도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사기 위해 삼청동을 찾는 것 아닐까.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2000)란 책에서 정보사회 이후에는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가 등장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머리 못지않게 가슴이 중요한 시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팔고 소비하게 된다. TV광고에서 운동화가 아닌 이야기(이미지)를 내세우고, 1980년대 LP음반이 가득한 카페가 입소문을 타는 것도 벌써 우리가 감성과 꿈을 소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청동에서 이런 드림 소사이어티를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로 가득한 부엉이박물관과 닭문화관, 어렸을 적 추억을 자극하는 장난감박물관, 걸으면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벽화,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작고 이름 없는 가게들. 삼청동은 지금 드림 소사이어티로 가는 길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