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공원조성사업의 1단계가 완료되었다. 5만m2의 드넓은 부지에 총 178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양식인 궁궐정원, 별서(別墅)정원, 민가정원 등을 조성해 놓았다. 부용정(芙蓉亭)서울 창덕궁(昌德宮) 소재과 하환정(何換亭),경남 함암군 소재 애련정(愛蓮亭)경기도 이천시 소재은 문화재 지정 건축물로 한국 정원건축의 백미들이다. 양진당(養眞堂)도 안동 하회마을의 민가 건축으로 한국의 전통적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사례이다. 한국의 전통정원을 월미도에 조성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는 여러 차례 제기되었지만 서부공원사업소와 인천시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로 단장한 공원을 둘러 본 필자의 마음은 착잡했다. 인천시와 공원 측은 한국정원이 인천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아마도 실현되지 못할 꿈일 게다. 전통정원이 독자적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콘텐츠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공원을 찾았을 때 정원을 둘러보는 관람객은 월미산을 산책하고 내려오는 등산복 차림의 십여 명에 불과했다.

한국전통정원지구사업의 기획자들이 월미도의 장소성에 대한 검토를 충실히 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 결함으로 보인다. 월미도의 장소적 가치, 역사 문화적 특성을 활용하면서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야만 했다. 한국의 전통정원을 월미도에 옮겨짓겠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용인의 민속촌을 염두에 둔 것일까? 애초에 월미행궁(月尾行宮)을 복원하려던 계획이 복원 위치 문제로 표류하게 되자 전통정원의 재현이 제시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월미도의 장소성과는 어떤 연관도 없는 시설인 것은 분명하다. 월미도는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이었다. 임오군란(1882)으로 일본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1842~1917) 공사 일행이 탈출했다가 조선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되돌아 왔던 장소이자. 청일전쟁(1894~ 1895) 때에는 일본군이 상륙했던 장소이며, 러일전쟁(1904~1905)의 서막에 해당하는 제물포해전(1904)이 벌어졌던 곳이며, 한국전쟁을 극적으로 반전시켰던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의 현장이다. 월미공원 정문에는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의 농성장이 있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대대로 살아온 삶터에서 쫓겨나 인천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다가 월미도가 군사지구에서 해제된 이후 귀향을 요구해왔다. 전통정원 조성사업으로 월미도 원주민들의 옛 터전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필자의 바람은 이 자리에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삶터에서 쫓겨난 월미도 원주민들의 반세기 한을 해소하는 동시에, 한국과 월미도가 겪은 영욕의 근현대사를 극복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문화시설, 예컨대 한국근대해전사(海戰史)기념관 같은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었다.

한국전통정원에 재현된 서석지(瑞石池)경북 영양군 소재나 소쇄원(瀟灑園)전남 담양군 소재 등은 서양의 건축물과 달리 애당초 장소를 옮길 수 없는 복합 문화자원이다. 한국의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는 휴식처이자 문인들이 풍류를 즐기고 정치와 철학을 논하던 문화적 공간이다. 한국의 이름난 누각에 즐비하게 걸려 있는 이름난 학자와 문인들의 제영(題詠)이 그런 문화적 활동의 산물이다. 전통 누정(樓亭)누각과 정자의 공통 특징은 자연과 인공의 탁월한 조응이다. 서석지의 경우 연당(蓮塘) 동북쪽 귀퉁이에 산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만들었고, 반대편의 서남쪽 귀퉁이에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만들었다.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있는 연못 안의 크고 작은 돌을 서석군(瑞石群)이라 하는데, 이 연못의 이름은 서석군에서 유래하였다. 돌 하나하나에 모두 이름이 있어, 정원을 조성한 정여방(鄭榮邦, 1577~1650)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정원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스승인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유배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지은 정원이다. 이 정원의 조성배경에는 주자(朱子, 1130~1200)가 우이산(武夷山)중국 푸졘성(福建省) 소재의 경승지인 우이쥬취(武夷九曲)우이산의 36개의 봉우리와 37암(巖) 사이로 흐르며 계곡과 양안의 절벽에 우이징서(武夷精舍)를 짓고 은둔했던 은일의 정신이 깔려있다. 소쇄원은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愛陽壇) 구역, 오곡문(五曲門) 구역, 제월당(霽月堂) 구역, 광풍각(光風閣 구역으로 구분되며, 경내에는 조선조 선비들이 즐겨 완상했던 매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목백일홍 등 식생이 조화를 이룬 숲이 있다. 이와 같이 한국 누정문화의 요체는 누각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각 주위의 자연과 인공물(건축과 식생의 조성)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키려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정원에 조성된 연못이나 개울, 숲은 인공의 흔적을 최소화하여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한국의 누각은 주위의 자연과 분리하면 그 의미도 사라진다. 그 점에서 보면 월미도에 재현된 누정들은 원문의 맥락을 배제한 채 인용된 단어인 셈이다.

한국의 누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그 자체로 완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은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누각의 사방을 열어 둔 것은 그 마루에 올라 주위의 자연을 누각 안으로 끌어들여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몰입하기 위해서다. 월미도의 전통정원 전면에 펼쳐진 풍경은 자연이 아니라 인공의 극치인 갑문식 선거(船渠)이며, 부두에는 선적을 기다리는 수천 대의 자동차와 컨테이너뿐이다. 실제로 6부두에 접안한 거대한 외항선과 양곡저장시설은 시선을 가로막고 정원의 건축물을 압도하고 있다. 누각은 남에게 ‘보이려는 집’이 아니라 그 주인이 ‘보기 위한 집’이다. 월미도의 전통정원은 한국의 누정문화를 맥락에서 분리함으로써 한갓 관찰대상으로 전도시킨 결과를 낳아 한국의 전통문화를 호도할 위험마저 안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월미도의 전통정원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공원사업소에서는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나 몇 가지 문화행사로는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문화관광의 이름 하에 이루어질 또 다른 난개발을 막을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전통정원의 문제를 진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 있는 문화시설로 재탄생할 수 있는 근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정원에 관한 자료를 모은 자료실을 설치한다든가 정기적으로 한국전통정원과 건축에 관련된 학술발표나 행사를 개최한다면 기존의 시설물의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