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본지는 이번 호부터 연속기획 ‘동아시아 장소의 시간을 찾아’를 시작한다. 동아시아 역내의 여러 장소들이 지닌 사회, 문화, 역사적 의미를 종횡으로 탐구하여 우리가 발딛고 선 ‘이곳’의 삶에 참조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한다.

니이가타(新潟)시는 뒤로는 니이가타평야에 둘러싸이고 앞으로는 동해와 접해 있는 항구도시다. 니이가타라고 하면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설국(雪國)』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소설의 무대는 니이가타현의 산골 온천마을 유자와(湯澤)로, 니이가타시는 그곳과 달리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 한겨울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동해 상공에서 대량의 수중기를 포함한 적운(積雲)이 되어 상륙해, 혼슈(本州)일본 열도 중 가장 큰 섬를 횡단하는 높은 산맥에 부딪혀 눈이 내린다. 그래서 산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지역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산간지역은 옛날에 눈이 3미터나 쌓여 고립되는 ‘육지의 고도(孤島)’가 적지 않았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교통이 불편해 근대화에 뒤쳐지면서,태평양 쪽의 ‘오모테니혼(表日本)’과 비교해  동해 쪽을 ‘우라니혼(裏日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도 어렸을 때 스스로를 우라니혼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니이가타시는 17세기에 항구마을로 정비되었다. 에도시대(江?時代, 1603~1867)에는 국내무역으로 번성하였고, 현재는 동해연안무역의 국제항으로 주목받고 있다. 니이가타와 인천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개항도시라는 점이다. 하지만 인천과 달리 니이가타는 문명개화시대의 국제항이 될 수 없었다. 쇄국정책을 펼치던 에도바쿠후(江?幕府)는 19세기 들어 러시아와 영국의 배가 근해에 출몰하고 아편전쟁에서 청이 영국에 패하자, 위기감을 갖고 해안방위에 힘썼다. 그 일환으로 1843년 니이가타항을 몰수하여 직할령으로 만들고, 동해 방위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니이가타에 한 척의 외국배도 출몰하지 않은 상태에서 1854년 에도바쿠후는 개국을 맞이했다. 4년 후 바쿠후는 서양 5개국과 수호조약을 맺으면서 니이가타항을 개항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니이가타는 요코하마(浜), 코오베(神), 하코다테(函館), 나가사키(長崎)와 함께 5개의 개항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후 서양은 수심이 얕고 겨울에 파도가 높은 니이가타항 대신 다른 항구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이미 바쿠후의 힘이 쇠하여 다른 항구를 몰수해 직할령으로 삼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개항은 1868년으로 결정되었고, 그 준비가 시작되었다.

니이가타의 개항을 결정한 것은 바쿠후였지만, 실행은 메이지 신정부가 맡았다. 1867년 천황은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천명하였고, 다음해 메이지정부와 바쿠후 사이에 보신전쟁(戊辰戰爭, 1868~1869)메이지 신정부가 에도바쿠후 세력을 일소한 일본 내전이 일어났다. 이해 7월 니이가타가 전쟁터가 된 일은 니이가타 사람들 사이에 오랫동안 전해져왔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교정에 있는 큰 소나무를 가리키며, 그 소나무가 작았을 때 학교 근처가 전쟁터가 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보신전쟁 이후에 태어나셨으니, 아마도 그 이야기는 부모님께 들었든지 아니면 책에서 읽었을 것이다. 학교 근처에 세워진 커다란 비석이 보신전쟁 때 죽은 타이쇼오 궁중 경호대장의 목을 묻은 장소라는 이야기를 듣고, 볼 때마다 무서워했었다. 그 비석은 니이가타항을 지키던 바쿠후군 타이쇼오의 기념비였다. 이로베(色部)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장군은 정부군의 공격으로 니이가타 시가지가 불타자 더이상의 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 병사들에게 노잣돈을 챙겨주고 해산시켰다. 그 후 우리 학교 근처에서 관군과 싸우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관군의 전사자는 메이지정부가 명복을 빌어주었지만(이것이 야스쿠니신사靖神社의 시초이다), 반란군 전사자는 방치되어 지역사람들이 명복을 빌어주었다.

같은 해 11월 니이가타항은 결국 외국에 문을 열었다. 곧 영국영사관이 설치되었고,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의 영사관이 차례로 개설되었다. 일본의 건축기술로 서양식 세관청사(廳)도 완성했다. 당시 현지사는 외국의 눈을 의식하여 시가지 환경정비와 위생에도 많은 힘을 쏟아 서양식공원까지 만들었다. 개항 10년 후 니이가타를 방문한 이사벨라 버드(Isabella L. Bird, 1831~1904)영국 여행가 여사는 “거리는 청결하여 그림처럼 아름답고, 마을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기록했다. 동시에 “니이가타는 개항지이지만, 작년에도 올해도 외국배는 한 척도 이 항구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무역을 할 만한 물건이 거의 없었고, 항만시설도 정비되지 않아 겨울에는 험한 파도로 배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배는 처음 1, 2년 동안 20척 정도 내항하였으나, 3년째에는 반으로 줄었고 결국 한 척도 오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영국영사관이 문을 닫은 것은 버드 여사가 니이가타를 다녀간 다음 해로, 개항한 지 12년이 되던 해였다.
현재 니이가타가 개항지였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니이가타시 역사박물관의 일부가 된 당시 세관청사 건물 정도밖에 없다. 몇 년 전 코오베시 개항자료관에 갔을 때, 개항도시를 설명한 글에서 “코오베, 요코하마, 나가사키, 하코다테 외 5개의 항구가 개항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실망했었다. 니이가타의 개항도시 이미지는 이 정도로 미비하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니이가타항이 국제항구가 되지 못한 일은 다행일 수도 있다. 만약 일본 내전이 계속되었다면, 외국인은 더욱 니이가타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한 무기상은 개항 직전에 니이가타에 들어와, 무기를 팔아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일본은 보신전쟁을 1년 만에 끝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에 착수했다. 그 무기 상인은 관군에 체포되어 재산을 몰수당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은 통상적인 무역을 기대했지만, 니이가타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니이가타는 그때까지의 경제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예전의 여유로운 생활리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려하게 발전하는 다른 개항도시에 비해 니이가타가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런 실패 경험이 니이가타 사람들의 ‘우라니혼의식’에 일조했다.

 『우라니혼(裏日本)』(1997)의 저자 후루마야 타다오(古?忠夫) 교수는 니이가타 사람들이 우라니혼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이후로, 이 무렵부터 동해 진출을 강하게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열도 내에서 우라니혼 역할을 맡은 니이가타가 동아시아에서는 ‘오모테아시아’, 즉 아시아의 현관 역할을 하려는 게 아닌가라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노예는 노예의 주인이 된다”라는 중국문학가 루 쉰(魯迅)의 말이 생각난다.

1931년 니이가타와 도쿄 간에 죠오에쓰선(上越線)이 개통되던 해 니이가타와 함경북도 청진·나진·웅기를 잇는 정기항로가 생겨, 니이가타는 만주국(滿州國, 1932~1945)1932년 일본이 중국 동북지역에 세운 괴뢰국가의 수도 신징(新京)지금의 장춘과 도쿄를 잇는 최단거리의 항구가 되었다. 이후 1935년에 국가지정 경로로, 1938년에는 만주이민의 출발항으로 정해졌다.

이 무렵 니이가타 출신인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1906~1955)가 이곳을 무대로 장편소설 『후부키모노가타리(吹雪物語)』(1989)를 집필 중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 여성이 사랑에 실패하고 신징의 숙부에게 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 여성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려고 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화려한 길”을 거쳐 신징에 가기 위해 코오베로 향한다. “어둡고 황량한 니이가타 항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뿐 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일본의 현관은 요코하마와 코오베이고, 니이가타는 뒷문 정도였다. 이 현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곳으로 가면 오모테(태평양연안지역)에서 온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우라(裏)로 규정하고 오모테(表)를 동경하는 마음은, 자신이 오모테가 되기 위해 우라의 존재를 찾게 되는 위험성을 갖는다. 당시는 일본전체가 서양에 대해 우라의식을 갖고 있던 시대였다.

이제는 니이가타에서 도쿄까지 논스톱 신칸센을 타면 1시간 40분이면 도착한다. 수도권 출퇴근도 꿈같은 얘기는 아니다. 우라니혼은 NHK일본국영방송 방송금지 용어가 되었고, 이 말을 모르는 젊은이도 많다. 높은 산맥은 여전히 동해 쪽 산골에 눈이 내리게 하지만, 도로가 정비되어 육지의 고도(孤島)는 사라졌다. 하지만 ‘오모테’와 ‘우라’에 대한 의식은 아직도 사람들 마음속에 잠재해 있다.

번역_ 金志松 번역가 / 이미지 제공_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