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소감인지 모르겠다. 〈평화는 힘이 세다〉를 보고 나왔을 때, 내가 느낀 것은 평화에 대한 당위적 책임감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마냥 들뜬 코흘리개 아이들이 달려들어 팔에 매달리고, 바짓가랑이를 잡아 늘이고, 등짝에 올라타며, 재잘거리듯 “삼촌, 용돈 내놔!” 또는 “아빠, 먹을 것 좀 사줘!” 하고 떼를 쓰는 느낌이었다. “돈 없다” 하고 떼어놓으려 하면 아뿔싸, 어느새 어린 조막손들이 주머니 속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런 느낌까지……. 물론 이런 아이들을 둔 삼촌과 아버지는 겉으로 귀찮아하겠지만 속내로는 흐뭇해하기 마련이다. 공연을 본 후의 느낌이 꼭 그랬다.

〈평화는 힘이 세다〉는 인천 만석동에 있는 ‘기차길옆작은학교’의 꼬맹이들, 학생들, 선생님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마련한 공연이다. 매년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이라는 주제로 공부하고 익힌 것을 발표하는데, 이번이 벌써 열여덟번째다. 이날 공연은 세 마당으로 나뉘어 영상물과 노래, 인형극, 풍물, 춤 등으로 꾸며졌다. 물론 주역은 기차길옆작은학교의 꼬맹이들과 여드름투성이 청소년들이었다. 한 해 동안 배운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점은 여느 유치원이나 학교의 학예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화는 힘이 세다〉에는 아들의 재롱을 카메라에 담느라 호들갑을 떨고, 영상물에서 아이를 확인하고 박장대소하며 느끼는 부모로서의 흡족함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노래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으로 문을 연 공연은 도심에서 소외된 삶을 사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지 전하고 있었다. 물론 노랫말은 피상적이다. 음악이란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텃밭에 마구 자란 푸성귀와 수숫단 같은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로 들쭉날쭉 구성된 노래패의 모습은 매우 재미나면서, 원형질적인 대가족을 연상케 했다. 마치 한가족 같아 보여 관객 모두를 일체화했다. 지난 5년 동안의 인형극패 모습을 담은 영상물은 한때 거북이 등딱지처럼 낮은 지붕을 맞대고 옹기종기 살았던 만석동 사람들의 일대기로 성큼 들어서게 했다. 인형극 〈아기장수 우투리와 보리〉는 지배와 착취, 탐욕이 아닌 평등과 공존의 세상을 갈망하는 내용으로, 장중하다싶은 주제를 다루었다. “처음엔 가난한 사람 이야기가 싫었는데,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다보면 순간적으로 찡해질 때가 있다”는 소녀 연하의 말에서 현실을 올바로 보지 않고선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음이 슬며시 불거졌다. 마지막 풍물패와 춤패 공연은 질주하는 바람 같았고 숲을 뒤흔드는 폭풍 같았다. 춤패 꼬맹이들의 귀여운 춤사위, 풍물패 소년소녀들의 진지함과 여유로운 미소에서 ‘꿈’이 보였다.

기차길옆작은학교는 평화란 누구나 공평하게 배우고, 즐겁게 놀며, 미래를 꿈꾸는 것임을 보여줬고, 거기서 관객들은 삶의 일체감, 가난한 자들만의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평화는 힘이 세다〉에는 아쉬운 점도 많다. 인류가 지향하는 지고지순한 가치인 평화를 어떻게 좁은 무대 위에서 온전히 보여줄 수 있겠는가? 또한 애오라지 가난을 벗어버리고 싶은 아이들에게 인형극 〈아기장수 우투리와 보리〉와 같은 당위론적 평화와 평등관이 현실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내년 이맘때 다시 만석동 아이들과 무대를 꾸밀 것이다. 성긴 나물을 반찬 삼아 세 끼 밥을 먹고, 돌무더기에서 뒹굴고 부대끼며 무르팍이 깨지면서도 서로의 귀에 화통 깨지는 소리를 맘껏 내지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