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꼬마가 백일을 맞았을 때, 녀석의 모습을 생생히 간직하고자 비디오카메라를 장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긴 했지만 수시로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대곤 했었다. 며칠 전 저녁상을 물리고 모처럼 세 식구가 모여앉아 당시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아이들 자라는 모습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화면 속 우리 부부의 모습은 ‘저런 때도 있었구나’ 할 만큼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정겨움이 느껴졌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의 외모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익숙했던 모습들도 시간이 지나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강화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사진첩을 펼치면서 어쩔 수 없는 낯섦과 정겨움을 다시 한번 느껴야 했다. 사실 강화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기에 강화의 어제 모습에서 익숙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몇몇 사진들 속의 강화 거리는 설명이 없었다면 몰라볼 정도로 생소한 모습이었다. 다만 익숙지 않은 어제의 모습과 낯설지 않은 오늘의 모습을 한 페이지에 모아둔 친절함 덕분에 요모조모 비교하며 변해버린 강화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책은 강화읍을 가로지르는 중앙로 주변의 관청리 모습과 동락천 주변의 신문리 모습, 그리고 문화재, 건물, 교육기관 등 다양했던 강화의 옛 모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옛 사진을 모은 탓에 사진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독 많다.

중앙로 주변은 군청과 경찰서 등 각종 관공서가 몰려있는 강화의 중심에 해당한다. 강화의 중심지가 강화읍으로 옮겨진 것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도읍을 옮기면서부터이다. 그 이전 강화도의 중심은 불은면 삼성리 혈구산 아래에 있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대청제방과 가릉제방을 쌓기 전까지 동쪽의 염하(鹽河)강물처럼 흐르는 바다와 서쪽의 바다가 갯골로 연결되어 있었던 지역이다. 그래서 통일신라 때는 해구(海口) 또는 혈구(穴口)라 부르기도 했었다. 혈구산 자락에 있던 강화의 중심지를 동북쪽으로 옮긴 것은 아마도 개경 환도를 갈망하던 고려왕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리라. 지금은 중앙로가 강화읍을 동서로 갈라 그 북쪽을 관청리, 남쪽을 신문리라 하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중앙로의 절반가량은 동락천이 차지하고 있었다. 동락천은 고려산에서 발원하여 강화읍을 서에서 동으로 관통한 뒤 조산포를 거쳐 염하로 흘러드는 개천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개천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남문 밖 토끼바위 곁에 있던 토교(兎橋)와 지금 파리바게뜨 건너편에 있던 천교(川橋)가 그것이다. 이제는 도로가 되어 개천의 모습도 서문 위쪽에서만 볼 수 있지만, 책에서 천교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사진만 보자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탓에 어제의 관청리가 지금보다 더 번화한 것처럼 보인다. 비포장도로를 오가는 손수레와 자전거, 옷을 맞춰 입고 도로를 행진하는 여학생들에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심도직물’1947년 故 김재소 씨가 강화읍 관청리에 세운 직물회사의 굴뚝까지,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겨운 모습들이다. 그러고 보니 무슨 무슨 상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가 유난히 많다. 네거리상회, 풍덕상회, 강화상회 등 당시만 해도 어딜 가나 볼 수 있었던 간판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찾기 힘들다. 이들을 보면서 잊혀진 기억들을 되살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중앙로 주변의 모습을 순서대로 수록하여 마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는 듯했다.
알다시피 강화도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어 일부에서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진 속의 문화재들은 화장 전후의 얼굴을 보여주듯이 확연히 대비된다. 낡고 쓰러질 듯한 옛 모습과 근사하게 단장한 지금의 모습은 흑백사진과 칼라사진의 차이를 뛰어 넘어 가슴에 와닿는다. 문틀이 빠진 채 초가집 사이에 엉거주춤 서있는 강화산성 서문과 홍예문만 남아있는 참경루(斬鯨樓)가 지금보다 더 정겹게 느껴지는 건 왠지 모르겠다.

앞부분에서 옛 사진과 오늘의 사진을 상하로 배치하여 공간에 대한 기억을 시간의 틀에 따라 배열했다면, 뒷부분은 옛 사진만을 수록하여 막연한 추억을 살펴보게 한다. 여기에는 참 많은 강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낡은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생들, 동락천(東洛川)에서 빨래하는 아낙들, 고기잡이하는 사람들까지 강화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염하를 가로지르며 강화와 육지를 연결해주던 화물선 사진이다. 강화도가 한때 진정한 섬이었음을 알려주는 사진이리라. 강화 갑곶과 김포의 통진(通津)을 잇는 강화대교가 놓이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화물선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퇴역시켰던 강화대교마저 30년 동안의 임무를 마치고 편히 쉬고 있다.

책을 덮으며 예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를 〈주말의 명화〉로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했던 것들에 대한 낯섦과 정겨움을 흠뻑 맛보았다고나 할까? 강화군에서 군민들의 사진을 더 모아 증보판을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어떤 낯섦과 정겨움이 펼쳐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