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한국과 베트남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나란히 배치한 연대기가 가장 먼저 보인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공통분모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트랜스 팝Trans Pop:한국 베트남 리믹스Remix展〉은 베트남과 한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한 전쟁, 분단, 세계화 그리고 대중문화의 시대를 작품을 통해 연결짓고 횡단하려는 시도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급속한 사회적 변화는 젊은 작가들에게 현실관의 균열을 경험하게 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역사적 트라우마(trauma), 냉전의 기억 위로 빠르게 유입된 자본과 개방의 물결, 그 속에서 야기된 정체성의 균열은 오늘을 살아가는 베트남 작가들의 자화상이다. 한국은 전쟁과 분단의 피해를 복구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택했고, 그것은 베트남 파병으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한국사회의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 베트남사회의 균열을 가져온 것이다.
전시는 이러한 사회적 경험과 역사에 대해 재현하고 발언하는 직설화법의 태도를 견지하는 작업, 대중문화와 일상적 기호를 전통적 요소와 혼합시키는 재기발랄한 작업, 그리고 개념적인 유희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사적인 경험과 재조합해낸 작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역사적 상처를 교란하는 요소들을 배치해 민족주의, 글로벌리즘과 같은 지배적 가치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딘 큐 레(Din Q. LE)는 영상설치작업 〈농부와 헬리콥터The Farmers and the Heli-copters〉에서 전쟁 당시의 전투헬기와 그것을 개조해 농업용 헬기로 사용하는 농부의 모습을 중첩시킨다. 농부는 결국 헬기를 정부에 압수당하고 전쟁의 기억을 안고 있는 이 농업용 헬기의 영상은 굉음과 함께 되살아난 전투헬기의 이미지와 교차한다. 유순미는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잔혹행위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베트남 피해주민들의 인터뷰와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을 교직한 〈씻김굿〉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직설적인 화법을 취하고 있다. 은폐된 “사회적 상처를 개별화”하고 치유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쩡 루엉(Tran Luong)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퍼포먼스 영상작업 〈위장Camouflage〉을 선보였다. 여기에 등장한 광부들은 위장한 게릴라를 연상시킨다. 작품은 갱도 안의 광부들이 검댕을 씻어내는 영상을 롱테이크(long take)한 쇼트를 길게 촬영하는 기법로 촬영해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침투로 인해 생긴 베트남의 사회적 모순과 개인적 고통을 쓸어내리는 숭고한 의식처럼 보인다.

전쟁의 상징인 전투기가 농작물들을 싣고 가는 듯 보이는 초현실주의적 회화 〈시장으로 가라Go to Market〉에서 응웬 만 흥(Nguyen Manh Hung)은 전쟁의 기억, 전통문화와 시장경제 사이의 균열상을 유머러스하게 재현하고 있다. 트랜스팝이라는 전시명에 가장 부합하는 작가, 티파니 청(Tiffany Chung)은 팝문화적 요소를 드러내며 한국가수와 한류(韓流)문화, 베트남의 인기가수와 V-POP베트남 대중가요을 병치한 영상작업을 통해 대중문화의 확산과 상호작용으로 새로워진 양국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한국과 베트남의 연결고리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도 혹은 공통의 역사적 경험에서만 찾는 것은 아니다. 그 관계의 정점에 미국이 있다. 이 지점이 중요한 이유도 미국이 단지 두 나라의 전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전시의 기획자가 한국계 미국인 민영순,1 그리고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레(Viet Le)라는 점이 중요하다. 두 기획자는 한국과 베트남, 그리고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사회인 미국에 대해 더욱 분열적인 접근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전시에 참여한 16개 팀의 작가들 중 상당수가 미국에서 출생했거나 이주 경험을 지닌 디아스포라(diaspora)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 정체성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비판했던 이전 세대 디아스포라 미술가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과 자신의 나라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담담하게 혹은 유희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들은 자기 정체성과 자신이 태어난 나라 그리고 미국이라는 이 삼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통적 가치와 지배적 가치체계의 균열을 시각화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가 태어난 해의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을 자신의 사적 생애와 함께 병치해 도표화한 권소원의 개념적 자화상 시리즈 〈동갑〉, 각색한 사진이미지와 영화를 통해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 사이의 유비관계를 그려내면서 경계선의 유희를 펼치는 안마이 레(An-My Le)의 작업에서 이러한 시각은 분명히 감지된다. 그들은 담담한 시선으로 사실과 판타지, 정치와 놀이, 공포와 진부함 사이의 경계와 이동을 탐험한다.

전시는 한국과 베트남의 연결고리와 지역적 정체성을 고정된 ‘본질’로부터가 아니라 분열적인 현실 자체로부터 찾아내려는 시도였다. 몇몇 작품이 전시주제에 부합하지 않거나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날로 과잉상업화하는 오늘날의 미술풍토에서 지배적 가치를 교란하며 지역 정체성을 탐구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순회전을 앞둔 만큼, 이 전시가 일으킬 반향이 주목된다.

이미제 제공_ 아르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