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3일, 금호아트홀에서는 재독(在獨) 작곡가 진은숙의 렉쳐(lecture) 콘서트가 열렸다. 2007년 뮌헨 오페라페스티발에서 초연된 그녀의 첫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ilice in Wonderland〉(2007, 이하 앨리스)의 DVD 출시를 앞두고 기획된 콘서트로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관객과 함께 감상하는 형식이다. 작품은 출시 예정인 DVD 영상으로 상영됐지만, 초연 당시 연주실황이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금호아트홀에는 진은숙의 오페라를 영상으로나마 접하고자 하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오페라 〈앨리스〉 10개의 장(章)중, 6개(Scene Ⅰ, Ⅱ, Ⅲ, Ⅴ, Ⅵ, Finale) 장과 막간극 2(Interlude Ⅱ) 일부가 공개되었다. 공개 분은 전체 공연실황의 60% 정도. 진은숙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1시간 50분 가량 콘서트를 진행했다.

사실 현대음악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순수음악계에서 진은숙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작곡가다. 24세의 나이로 1985년 가우데아무스(Gaudeamus) 작곡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고, 1993년 일본 도쿄국제작곡콩쿠르에서 공동 우승하는 등 세계 작곡계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아왔다. 그리고 지난 2004년 그라베마이어상(Grawemeyer Award) 수상으로 진은숙은 세계적인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2005년, ‘LA 오페라’의 음악감독이자 진은숙의 든든한 후원자, 켄트 나가노(Kent Nagano)의 의뢰로 〈앨리스〉는 3년여 만에 완성된다. 126년 뮌헨 페스티벌 역사상, 개막작으로 오른 최초의 현대오페라였고, 280년 바이에른국립극장 사상 최초로 공연된 여성작곡가의 오페라 초연작이었다. ‘작곡가 진은숙’, 그리고 그녀의 ‘첫 오페라’.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미 〈앨리스〉는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초연실황을 생중계했고, 독일의 오페라 전문지 〈오페른벨트Opernwelt〉는 2007년 ‘올해의 초연작’으로 〈앨리스〉를 꼽았다. 현대음악의 사각지대였던 오페라 장르에서 〈앨리스〉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진은숙은 작곡배경, 초연장소가 바뀐 사연 등에 이어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와의 작업담을 소개했다. 레지테아터(Regietheater)1가 일반화된 독일에서 이 완고한 연출가와 작업하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진은숙은 결국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이 이야기꺼리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작곡가의 의도와 괴리된 연출은 〈앨리스〉의 ‘옥의 티’였을까. 진은숙은 시종, 연출가와의 타협이 힘들었음을 강조했다.
첫번째로<꿈 ⅠDream Ⅰ>의 공연실황이 시작되었다. 화면 가득 들어찬 뮌헨국립극장의 무대는 독특했다. 객석에서 바라볼 때, 뒤쪽이 45도 들린 상태로 경사면에는 9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은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며 등장인물, 무대소품 등이 드나든다. 아힘 프라이어의 독특한 무대연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은숙에 의하면 연출가는 세 개의 차원을 무대에 구현했다. 우선 제일 아래에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2로 분장한 여러 명의 솔리스트들이 자리한다. 45도 경사의 무대는 두번째 차원으로 배우의 영역이다. 솔리스트들의 노래에 맞춰 연기하는 실재 무대인 셈이다. 물론 앨리스샐리 매튜스(Sally Matthews) 분, 소프라노는 무대에 서서 연기한다. 세번째 영역은 무대 위, 허공이다. 줄을 매달고 날아다니는 배우, 기타 이미지소품 등 독특한 연출적 요소들이 구현된다. 이러한 세 층위의 무대구조는 오페라 〈앨리스〉 연출의 핵심 포인트다.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은 생소하면서도 참신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할 만했다. 진은숙도 아힘 프라이어의 예술성만은 높이 평가했다.

막간극 2(interlude Ⅱ)의 일부와 피날레가 이어졌다. 커튼콜을 받고 무대에 올라선 검은 생머리의 작곡가 진은숙은 강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화면 속 독일관객들처럼 금호아트홀의 관객들도 환호했다. 초연 당시의 박수소리와 지금의 실제 박수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잔향을 남겼다.

오페라 〈앨리스〉는 작곡가 자신의 꿈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진은숙은 한 관객의 질문에 답하며 “실재 꿈에서 봤던 장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며 일치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앨리스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녀는 ‘현대’에 현대음악이 대접받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외면당하는 이 ‘이상한 현대’에 굴러 떨어진 앨리스일지도 모른다. 진은숙은 현대음악을 동시대와 호흡하게 만드는, 그리하여 현대음악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앨리스〉는 이러한 꿈을 강하게 상징하는 ‘진은숙표 현대음악’인 셈이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던가. “앨리스의 큰 눈동자는 청중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