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이 일본의 우경화나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 등에 관해 보도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소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다. 일본의 우경화나 과거 회귀에 대한 내부적 저항 세력을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그들은 한국언론에 의해 그렇게 호명됨으로써 식민주의의 부활에 저항하는 한국의 내셔널리즘에 복무하게 된다. 반일 내셔널리즘의 굳건한 동맹자로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 배치됨으로써, 그러한 ‘양심적’이라는 수사는 한국 내셔널리즘에 의해 횡령된다. 그러한 사정은 한국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한국 지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언론은 ‘양심적’이라는 수사 대신 “식민지 시대에 대한 ‘공평한’ 평가를 했다”라는 식으로 ‘공평’, ‘공정’이라는 수사를 그들에게 부여한다.

한일 내셔널리즘에 의해 횡령되어 온 ‘양심적’이고 ‘공평한’ 지식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일, 연대21〉이 그들이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그들 위에 씌어진 ‘양심’과 ‘공평’이라는 수사를 걷어내고 양국의 내셔널리즘에 의한 배치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이번에 출간된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뿌리와 이파리, 2008)의 서문과 ‘모임의 경위’에 잘 드러나 있다. 코모리 요오이치(小森陽一)는 “한국의 청중 앞에서 일본에서와 동일한 내용과 어조로”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10면)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국의 청중에게 진심이 전해지는 “극히 곤란한 언어적 실천”(같은 면)은 어떻게 가능할까.

‘양심적’이지만 ‘불공평한’ 일본의 지식인과, ‘공평’하지만 ‘비양심적’인 한국의 지식인이 연대함으로써 그러한 ‘극히 곤란한 언어적 실천’의 단초가 마련된다. 말장난 같지만 양국의 내셔널리즘에 의해 부여된 ‘양심’과 ‘공평’이라는 배치를 뒤흔드는 작업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연대21〉의 첫 시도는 그들의 담론이 가진 깊이나 폭보다도 그들의 글이 나란히 묶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본 지식인의 일본 내셔널리즘 비판은 한국 지식인의 한국 내셔널리즘 비판과 나란히 읽힘으로써 한국의 내셔널리즘으로 온전히 포섭(횡령)되지 않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식민지시대를 왜곡”(한국언론)하면서도 “식민지시대를 공평하게 다룬”(일본언론) 『대안교과서-한국 근현대사』(교과서포럼 저, 기파랑, 2008. 3)를 이끈 이영훈의 글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靖神社)를 근본적으로 비판한 타카하시 테쓰야(高橋哲哉)의 글과 나란히 읽힐 때 그 의미는 달라진다.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탈-내셔널리즘은 새로운 담론이 아니다. 그러나 양국의 탈-내셔널리즘 담론이 나란히 놓임으로써 상대방 국가의 내셔널리즘으로 흡수되지 않는 탈-내셔널리즘의 소수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한일, 연대21〉의 시도가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들의 첫 시도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라는 책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또한 〈한일, 연대21〉이 개최한 심포지엄에 나 자신이 토론자로 참석하면서, 한일 양국 지식인들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탈-내셔널리즘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관심과 사회적 맥락에 묶여 있는 독백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관심과 사회적 맥락이라는 장벽, 이것은 어쩌면 이데올로기로서의 내셔널리즘이라는 장벽보다 더욱 뛰어넘기가 곤란한 내셔널리즘적 장벽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진정한 연대란 불가능해 보인다. “극히 곤란한 언어적 실천”이란 이 장벽의 처리와 관련되어 있을 터이다.

이 점에 관해서 시마무라 테루(島村輝)는 “‘민족감정’이라는 애매한 단어의 위험성은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그런 종류의 단어로 표현될 듯한 집단적 심리나 행동의 기제를 경시하지 않고 명확히 해가는 노력”(50면)을 요구하고 있으며, 강가람은 “국가의 동원체계에 휘말리지 않고 개인이 정치적인 책임을 다하는 방식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209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벽의 존재를 또렷이 인식하면서도 거기에 갇히지 않는 언어적 실천, 진정한 탈-내셔널리즘적 연대는 여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