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장〉의 원제는 투명장(投名狀)1이다. 투명장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매우 낯설기 때문에 마땅한 제목을 찾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이해는 하지만 ‘명장’은 영 마뜩찮다. 주인공 팡 칭윈(龐靑雲)리 롄졔(李連杰) 분에 대한 가치평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팡 칭윈을 명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명장〉은 청(淸) 말기의 4대 의혹사건 중 하나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량쟝(兩江)2 총독이었던 마 신이(馬新貽, 1821~1870)가 재임 중 쟝닝부(江寧府)지금의 난징(南京)에서 자객의 칼에 찔려 살해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장 원샹(張汶祥). 이 사건에 놀란 통즈황제(同治皇帝, 1856~1875)와 그의 모후인 츠시태후(慈禧太后, 1835~1908)즉 서태후가 철저한 조사를 명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조사를 벌였지만 그가 왜 마 신이를 죽였는지, 혹시 배후에 또 다른 인물이 연루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장 원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 신이가 과거 저쟝순무(浙江巡撫)순무는 청대 지방행정장관의 명칭 시절 해적들을 진압한 일이 있었는데 해적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장 원샹이 그들을 위해 복수한 것으로 이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후 마 신이에게는 여러 벼슬이 추증(追贈)되고 장 원샹은 능지처참을 당했으니, 좌우간 마 신이는 훌륭한 관료이고 장 원샹은 반역무도한 자라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샨쯔잉(山字營)의 팡 칭윈이 쿠이쯔잉(魁字營)의 허 쿠이(何魁)와 치열한 다툼을 벌이듯, 이 사건의 배후에는 파벌 간의 싸움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태평천국(1851~1864)3의 수도였던 난징을 마지막으로 함락시킨 것은 쩡 궈판(曾國藩, 1811~1872)의 동생 쩡 궈취앤(曾國筌, 1824~1890)이었다. 그러나 청 조정이 량쟝총독으로 임명한 사람은 태평군을 평정하는 데 그다지 커다란 공이 없었던 마 신이였다.(1868) 이것은 청 조정에서 쩡 궈판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사실 쩡 궈판이 난징을 함락시킨 후 태평군으로부터 막대한 금은보화를 노획했지만 조정에 보고한 것은 극히 적은 액수였다는 풍문이 있었다. 쩡 궈판이 다른 야심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어 조정에서는 마 신이를 량쟝총독에 임명하여 쩡 궈판을 견제하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자는 쩡 궈판이었다. 그가 신임 량쟝총독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사건의 배후에 쩡 궈취앤이 개입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직 고위 관료가 칼에 찔려 죽은 데다가 유명한 츠시태후, 쩡 궈판, 태평천국의 반란 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이 사건은 전기(傳奇)적 색채가 농후하다. 더구나 이 사건의 진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민간에서는 다른 해석이 있었다. 마 신이와 황 쫑(黃縱) 그리고 장 원샹은 일찍이 의형제를 맺었는데 마 신이가 황 쫑의 아내와 간통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숨기기 위해 황 쫑을 죽인 것을 알고 장 원샹이 형제간 의리를 배신한 마 신이에게 복수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비(劉備)가 관우(關羽)의 부인과 간통을 하고 발각될 것이 두려워 관우를 죽였기 때문에 장비(張飛)가 유비를 죽였다는 식이다. 강호의 논리대로 하면 장 원샹은 호인이고 마 신이는 악인이다. 이것은 청 정부의 발표와 정반대의 해석이었다. 1973년 장 처(張徹) 감독의 〈자마(刺馬)〉는 정확히 이러한 민간 전설에 기초한 작품이다. 나도 이 작품을 어렵사리 구해 보았는데 장 원샹이 붙잡혀서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된 새로운 쿵후영화였다. 이 사건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보다는 형제의 처를 유혹하고 출세욕에 불타 형제를 죽인 악인(마 신이)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제를 강조한 영화였다.

사실 〈명장〉을 볼 때 팡 칭윈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후에 〈자마〉와 비교해보니 천 커신(陳可辛) 감독이 팡 칭윈을 은근히 변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의 원제가 『수호전(水滸傳)』에 나오는 투명장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송강(宋江)을 팡 칭윈에 투사시켜 놓고 보았다. 물론 팡 칭윈은 송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무공을 지녔지만 말이다. 『수호전』에서 송강은 말단 관리였다가 양산박(梁山泊)이라는 산적 소굴에 들어가 두령이 되어, 후에 조정에 귀순해 방랍(方臘)의 난4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우지만 조정의 의심을 받아 독살된다. 〈명장〉의 스토리는 이런 『수호전』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투명장은 임충(林沖)이 양산박 멤버가 되고자 할 때 당시의 속 좁은 수령 왕륜(王倫)이 요구한 것은, 붓이 아닌 무고한 사람의 목을 베어 충성을 입증하는 ‘입회원서’였다. 영화에도 결의형제를 맺고 토비가 되기 위해 동굴 비슷한 곳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대륙판에서는 이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팡 칭윈이 청군에 다시 가담한 이후 량쟝총독이 되기까지, 다시 말해 청나라의 주류가 되기까지 그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다. 쑤저우성(蘇州城)에서는 심지어 투항한 태평천국 병사 4,000여 명을 몰살시켰다. 그는 량쟝총독이 된 이후, 군기처(軍機處)청나라 때, 군사와 정무를 맡아보던 최고 기관 대신으로부터 형제를 제거할 것을 암시받고 자오 얼후(趙二虎)류 더화(劉德華) 분를 죽인다. 이것이야말로 청 조정에서 팡 칭윈에게 요구한 또 다른 투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청 조정에 암살된다. 인물에 대한 선악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작금의 중국영화의 특색이라지만 이런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팡 칭윈은 과연 ‘명장’일까.